한국의 수출이 제대로 풀리지 않는 요인은 상당히 복합적이다. 안팎으로 악재가 지뢰처럼 깔려 있어 수출활로를 가로막고 있는 것.안으로는 금융경색이 해소되지 않고 있는 가운데 수출용 원자재 수입 애로로 발목이 잡힌데다 수출 채산성도 날로 악화되고 있다. 밖으로는 한국기업의 주력 수출시장인 아시아 경제가 침체의 수렁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고 선진국들의 반덤핑 제소 등 무역마찰도 걸림돌이 되고 있다. 수출기업 입장에선 한마디로 사면초가에몰려 있는 꼴이다. 제아무리 원화가치가 떨어져 가격경쟁력이 생겼더라도 수출이 본격적인 상승세를 탈수 없는 환경이란 얘기다. 수출 한국호의 발목을 잡고 있는 요인들을 좀더 구체적으로 짚어보자.◆ 금융이 막혔다수출관련 금융의 위축은 현재 수출기업의 가장 큰 애로로 꼽힌다.국내 금융시스템의 불안정으로 은행들이 수출기업에 대한 무역금융제공을 기피하고 있어 수출 오더를 받아 놓고도 물건을 내보내지못하는 사례마저 발생하고 있다. 실제로 현재 수출환어음 네고실적은 외환위기 이전의 80% 수준에 불과하다. 무역어음의 할인도 마찬가지다. 작년 7월 1조3천억원에 달하던무역어음인수액(월간기준)이 올들어선 5천억원을 밑돌고 있다. 정부가 수출금융의 지원확대 정책을 발표는 하고 있지만 실제 은행창구에선 수출금융이 돌지 않고 있다는 게 수출업계의 하소연이기도하다.이처럼 은행들이 수출환어음 등의 매입을 기피하자 수출기업들은해외 바이어에게 현금거래를 요구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바이어들이이탈하는 사태까지 번지고 있다. 무역협회 조사에 따르면 수출기업중 35%가 이같은 바이어 이탈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은행들이 BIS(국제결제은행)기준 자기자본비율을 맞추기 위해 외환매매수수료 등을 올린 것도 수출기업들의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수출기업 입장에선 외환위기 이전에 비해 외환매매수수료와 환어음매입시 가산금리 부담이 4∼5배 정도씩 늘어났다고 호소한다. 외환매매수수료의 경우 은행들은 지난해 11월까지는 0.4%를 뗐지만 지난 4월엔 이를 1.5∼2.5%씩 받고 있다. 환어음 매입때의 가산금리도 같은 기간중 1∼1.5%에서 5.5∼7%로 올랐다.◆ 수출단가가 너무 낮다원화가치가 크게 하락했음에도 불구하고 수출이 화끈하게 늘지 않고 오히려 수출채산성이 악화되고 있는 것은 수출제품의 단가가 너무 낮아졌기 때문. 한국은행 분석에 따르면 지난 1∼3월중 한국 수출품의 단가는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무려 19.4%가 떨어졌다. 품목별로는 반도체가 48.6%나 인하됐고 △전자제품(-38.5%)△완구(-27.0%) △정밀기계(-25.9%) △화공품(-19.5%) 등의 하락도두드러졌다.실제로 반도체의 경우 지난해 이맘때 개당 50달러였던 64메가D램값이 공급과잉으로 올 1월 14달러로 내려갔다. 최근엔 11∼13달러선까지 떨어졌다. 이로인해 반도체 수출은 작년보다 10%이상 늘었지만 업체들의 채산성은 오히려 나빠진 상태. 석유화학 제품은 한국업체의 밀어내기 수출로 최고 40%까지 국제가격이 폭락해 수출을할수록 적자가 커지는 상황이다. 예컨대 작년말 t당 7백50달러선이던 폴리프로필렌(PP) 아시아 수출가격이 5백20달러로 내려갔고 저밀도폴리에틸렌(LDPE)은 같은 기간중 t당 8백80달러에서 6백10달러로 떨어졌다. 이처럼 수출단가는 크게 떨어졌지만 원유가 인하 등으로 인한 수입단가 하락은 14.7%에 그쳐 지난 1/4분기중 상품교역조건(수출입단가 비율)은 작년 동기보다 5.5% 정도 악화된 것으로분석됐다.◆ 원자재 조달도 차질최근 국제 원자재 시세는 하락세를 지속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기업들은 원자재 수입에 차질을 빚어 수출물량을 소화해내지 못하고있다. 특히 원자재 수입난은 자금부족에 시달리는 중소기업들에서심각하다. 이에 따라 품목별로는 동광석과 원피 등의 재고가 적정수준의 60%에도 못미치고 있다. 알루미늄은 이 비율이 80% 미만이다.원자재 수입이 차질을 빚고 있는 것은 수출입 금융이 불안하기 때문. 국내기업들은 원자재의 50% 이상을 3∼6개월의 외상수입에 의존해 왔다. 한데 최근 금융기관들이 이를 보증하기 위한 유전스 제공을 기피하고 있다. 유전스 기피로 외상수입이 곤란해지자 현금결제 비율을 높일 수밖에 없고 이는 기업들의 자금난을 가중시켰다.수입대금을 현금으로 결제하는 비중은 작년 10월 32.7%에서 지난2월 70.7%로 높아졌다는 게 중소기협중앙회의 조사결과다. 게다가각종 수입부대비용도 늘어 알루미늄을 수입하는 한 중소기업의 경우 수입대금을 포함한 수입관련 비용이 외환위기 이전보다 3∼4배증가했다는 게 산업자원부 관계자의 설명.◆ 생산기반 붕괴기업들의 부도확산으로 생산기반이 망가지고 있는 것은 수출을 근원적으로 막는 장애요인. 외환위기 이후 월 평균 부도업체수는 무려 3천3백개사. 수출이 잘 되느니, 마느니를 따지기 이전에 제조업기반 자체가 흔들리고 있는 셈. 업종별로는 자동차 업체들의 경우공장가동률이 대부분 50%이하로 떨어졌고 부품업체의 도산은 확산일로다. 기계산업도 제조업 전체 부도의 22%를 차지할 정도로 심각하다. 한라중공업과 대동조선이 부도를 맞은 조선업계에선 부도 여파가 조선기자재 제조업체로까지 퍼지고 있다. 문제는 앞으로가 더욱 심각하다는 것. 올들어 4월까지 자본재 수입이 36%나 감소하는등 설비투자가 위축돼 생산기반의 침하는 더욱 가속될 전망이다.경제연구기관들은 올해 제조업체의 설비투자 감소폭이 30%를 넘어설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주력시장인 아시아경제 침체올들어 4월까지의 수출을 지역별로 분석해 보면 가장 두드러진 게동남아 중국 일본에 대한 수출의 급감이다. 이들 지역은 대부분 금융위기로 경제가 침체의 늪에 빠져 있다. 실제로 올들어 4월20일까지 아세안국가에 대한 수출은 42억달러로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30.3%가 줄었다. 일본에 대한 수출도 15.6% 감소했다. 지난해 연간으로 19% 넘게 증가했던 대중국 수출도 올들어선 소폭이나마 감소세(마이너스 0.2%)로 돌아섰다. 특히 국산 자본재와 중간재의 주요수출지역인 동남아 경제의 침체로 국내 기계류 수출업체들은 큰 타격을 입고 있다. 지난해 기준으로 아세안에 대한 수출중 중간재와자본재가 차지하는 비중은 82%에 달했다.◆ 아시아 각국간 경쟁도 심화한국과 마찬가지로 태국이나 인도네시아도 외환위기 탈출을 위해수출에 총력을 기울임에 따라 선진국 시장 등에서 이들 국가와의경쟁이 날로 치열해지고 있다. 특히 이들 나라는 원화보다 환율절하 폭이 큰데다 덤핑수출마저 서슴지 않아 한국기업엔 큰 골칫거리이다. 삼성물산 관계자는 『태국과 인도네시아는 중국 인도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필리핀 등 동남아 시장에서 전자 철강 화학제품을중심으로 출혈수출에 나서고 있어 한국의 시장점유율이 급격히 떨어졌다』고 말했다. 태국과 인도네시아가 최근 인도시장에 TV를 수출하면서 가격을 최고 30%까지 낮춘 것이 대표적인 예. 또 필리핀말레이시아 시장에서는 태국산 스테인리스 스틸과 인도네시아산 열연강판 파이프 등이 저가로 수출됨에 따라 한국의 철강제품 수출이피해를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