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일본 구로다사의 간부가 천안에 있는 한국코아를 방문했다.그는 조심스럽게 한가지 제의를 꺼냈다. 한국코아 공장을 자기 직원들에게 보여달라는 것. 그러면 자기 공장도 한국코아 임직원에게개방하겠다는 것이었다. 구로다는 일본 최대 금형업체. 규모나 기술력 정밀도면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의 업체일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꼽히는 업체이기도 하다. 이 회사가 한국의 중소기업을보고싶어하는 것은 왜일까. 불과 몇년전만해도 구로다는 한국코아가 자사 기술의 90%수준에 이르려면 10년은 걸릴 것으로 장담했었다. 하지만 3년만에 95%수준에 도달했고 지금은 거의 대등한 수준에 와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도대체 남들이 1백년씩 걸려 쌓은기술을 어떻게 그 짧은 기간안에 터득할 수 있는지 궁금한 것이다.구로다는 한국코아 직원이 방문하면 절대 공장을 보여주지 않는게불문율처럼 돼 있다. 실제 라인을 보여준 적이 없다. 그런 상황에서 자존심을 꺾고 사람을 보내 상호 공장견학을 제의해온 것이다.여기엔 불안감도 서려 있다. 구로다는 금형전문업체. 금형을 만들어 수요자에게 납품한뒤 문제가 생기면 이를 받아들여 품질개선에나선다. 반면 한국코아는 코어업체이면서 동시에 금형도 제작한다.금형을 만들어 코어를 찍어내면서 여기서 생기는 문제를 금형 개선에 반영한다. 품질개선 속도가 훨씬 빠를 수밖에 없다.천안의 북쪽에 있는 군서리 야산밑에 자리잡은 한국코아는 일반인들에겐 생소한 업체다. 만드는 제품은 전자제품용 트랜스포머의 코어와 소형모터용 코어. 또 자동차에 들어가는 소형모터의 코어도만든다. 얇은 규소강판을 가공,수십겹을 붙여 만드는 제품이다.강판 자체에 요철을 만들어 접착제없이 수십장을 결합시킨다. 요철의 오차는 3미크론. 이 범위를 벗어나면 포개지지 않는다. 그만큼정밀성을 요하는 제품이다. 소형모터는 가전제품과 자동차의 와이퍼 창문자동개폐장치에도 쓰인다. 소형모터 자체가 부품인데다 코어는 모터의 부품이다보니 일반인들이 이 회사를 알리가 없다. 하지만 이 회사가 어떤 저력을 갖고 있는지 전자나 자동차업체들은금방 안다. 예컨대 한국코아가 며칠간 가동을 중단하면 전자및 자동차업체중 상당수가 공장을 세워야 한다. 실제 이런 일이 87년에발생했었다. 노사분규가 극심하던 당시 한국코아 공장은 수원의 삼성전자 부근에 있었다. 삼성전자의 분규를 꾀하던 일부 노동운동가들이 삼성전자에 직접 들어가기가 쉽지 않자 협력업체인 한국코아에 취업했다. 이로인해 분규가 발생했다. 한국코아의 생산이 중단된지 3일째 되던날 삼성전자와 금성사의 라인이 서기 시작했다. 한국코아의 공장 재가동을 위해 상공부장관까지 중재에 나섰을 정도였다. 한국코아가 생산하는 제품중 가전제품의 트랜스포머에 쓰이는 EI코어는 국내 시장의 40%,가전제품 모터용 코어는 10%,자동차 모터용 코어는 80%를 차지하고 있다.◆ 중소기업이지만 기술력은 세계수준지난해엔 이들 제품을 2천만달러어치 수출하기도 했다. 코어를 만들기 위해 금형도 제작한다. 당초 자가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만들었으나 이제는 금형기술이 세계적인 수준에 오르면서 또 하나의주력사업으로 자리잡았다. ? 한국코아의 유광윤사장(46)은 두가지 측면에서 청출어람을 일궈냈다. 첫번째는 부친이 경영하던 종업원 80명 규모의 업체를 국내 최대,세계 4대 코어업체로 도약시킨것. 한국코아는 종업원 2백90명에 연간매출이 7백60억원인 중소기업이지만 기술력은 이미 세계수준에 도달했고 생산규모도 단일공장으론 아시아에서 가장 크다. 또 하나는 일본의 기술력을 최대한활용,일본을 따라잡는 성과를 만들어냈다. 한국코아는 74년 유사장의 부친이 창업했다. 유사장이 경영에 참여한 것은 80년 생산기술부장으로 입사하면서부터. 유씨는 서강대 물리학과를 나와 삼성전자에서 근무하던중 부친의 건강이 나빠지자 가업을 이어받기 위해 한국코아에 들어왔다. 몇년동안 생산과 기술분야를 총괄하던 그는 도저히 그런 기술로는 코어의 품질을 향상시키는데 한계가 있다고 판단했다. 코어는 금형이 생명이다. 금형의 정밀도(오차)가밀리미터 수준이어선 고급 코어생산이 불가능했다. 이를 미크론수준으로 끌어올려야겠다고 마음먹었다.하지만 국내는 금형기술이 낙후돼 기술을 이전받을 수 없었다. 일본으로 건너간 것도 이때문이다. 백방으로 수소문한 끝에 현역기술자를 데려오는 것은 힘들다고 판단,퇴역기술자와 접촉했다. 술을사주고 자주 만나면서 인간적으로 친해졌다. 어렵게 유대관계를 맺은뒤 한국으로 초빙했다. 퇴역기술자는 한국코아 공장을 며칠동안둘러봤다. 하지만 유사장이 원하는 기술에 관한 얘기는 일언반구없었다. 며칠만에 입을 연 그가 한 말은 『청소 좀 깨끗이 하시오』였다. 유사장은 기가막혔다. 이 얘기를 들으려고 그동안 공을 들였단 말인가. 항공료 숙박비등 비용생각도 났다. 일부 종업원들은이런 기술자를 도대체 왜 데려왔느냐며 노골적으로 반발하기도 했다. 일본인 기술자는 설명했다.『정밀도를 높이려면 공장이 청결해야 한다. 기계 주변뿐 아니라심지어 천장까지도 깨끗이 해야 한다. 이같이 청결해야 종업원의마음가짐이 정돈되며 미크론의 경지에 오를수 있다.』마지못해 그의 의견에 따랐지만 결과는 뜻밖이었다. 제품의 품질은 금형기술이좌우하지만 금형기술이라는게 결국 사람의 마음자세에 달린 것이었다. 특히 미크론단위로 들어가면 기계보다는 마음이 품질을 결정하는 경지에 이른다. 이 일본인의 기술지도는 한국코아가 3미크론대의 초정밀 금형기술을 터득하는데 밑바탕이 됐다. 한국코아가 급성장하면서 동남아 시장을 석권하자 이 시장에서 격돌하던 일본업체들이 경쟁력을 잃어갔다. 일본업체 대부분이 자국내 공장문을 닫고동남아로 생산기지를 옮긴 것도 한국코아 때문이다.한국코아는 해외시장개척에 일찍 눈을 돌렸다. 90년대 들어 말레이시아와 멕시코에 공장을 설립하고 홍콩에 판매법인을 만들어 시장개척에 나섰다. 이중 말레이시아 공장은 대표적인 해외진출 성공사례로 꼽히고 있다. 멕시코공장은 샌디에이고 현지법인과 연계,북미시장 공략의 교두보 역할을 하고 있다. 한국코아는 그동안 코어수출에 힘을 쏟았으나 올해부터는 금형수출에도 적극 나서기로 했다. 또 매출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을 작년의 35%에서 올핸50%로 늘리기로 했다. 94년 계열사로 설립한 미래통신은 PCS단말기 통신부품등을 생산하며 해마다 1백%이상 성장하고 있기도 하다.한국코아는 87년 분규이후엔 단한번의 노사분규를 겪지 않았다. 노조도 없다. 감봉이 유행하는 요즘에도 전혀 감봉을 하지 않았다.종업원들이 10% 감봉을 자청하자 오히려 사장이 이를 만류하기도했다. 또 올들어 18명의 대학졸업자를 채용하는등 고급인력 보강에나서고 있다. 유사장은 『코어는 앞으로도 최소한 50년은 유망한사업분야』라며 『코어와 금형을 양대축으로 세계시장의 주역으로도약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