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으로 원유가격이 낮게 형성되고 있는 가운데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들은 수주일동안의 논쟁 끝에 유가에 관해 비교적 만족할만한 합의에 도달했다. 유가가 회원국들이 생각하는 심리적 마지노선인 배럴당 10달러 이하로는 떨어지지 않을 것이란 확신을 어느 정도 가질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적어도 당분간은 OPEC 회원국들이 안심할 수 있는 상태가 된 것이다. 그러나 겨우 일년동안에기름값이 절반으로 떨어져 지난 73년 오일쇼크 이래 실질적으로는가장 낮은 수준을 보이고 있는 것에서도 산유국들의 영향력이 약해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유가 하락행진은 지난 3월 23일 일단 멈췄다. 생산량 조절문제로서로를 비난하던 사우디아라비아와 베네수엘라의 석유관리들이 발등에 불이 떨어지자 어쩔 수 없이 한자리에 모인 결과였다. 이보다앞서 3월초, 베네수엘라의 에너지 장관 어윈 호세 아리에타는 OPEC회의 결과에 관계없이 석유생산량에서 단 1배럴도 감산할 수 없다고 선언했다.원유가격은 97년 1월 이래 55%가 떨어졌다. 지난 3월말에는 배럴당11.27달러로 최저가를 기록했다. 그러자 다급해진 것은 산유국들이다. 베네수엘라는 비OPEC국가 중 가장 큰 라이벌인 멕시코가 주선한 협상을 통해 생산량을 줄이기로 했고 사우디는 두 중남미 생산국과 보조를 맞추기로 했다. 다른 산유국 10개 나라도 이에 동조하기로 결정했다. 산유국들은 세계시장에서 감산규모가 하루 1백10만∼2백만배럴이 되도록 하여 가격이 안정되기를 기대하고 있다.이런 조치에 OPEC는 만족했다. 협상내용이 발표된 날 유가는 2달러가 올라 상승폭이 15%를 상회했다. 이 상승률은 90년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이후 가장 큰 폭이다. OPEC가 위기를 관리하던 예전의솜씨를 과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전처럼 이제 세계 원유시장이 배럴당 10달러선에서 오르내리지는 않겠지만 산유국들은 유가가 다시배럴당 20달러 정도로는 뛰어야 완전히 안심할 수 있을 것이다.73년, 79년, 86년, 90년 등 지난 네차례 전쟁이 가져온 오일쇼크의경우 86년 한번만 산유국들에게 타격을 입혔지만 이 경험은 OPEC국가들에게 유가는 비회원국을 포함한 모든 산유국들이 최대 시장점유율을 갖겠다는 개별적인 행동을 자제할 때 안정된다는 사실을 일깨워 줬다.◆ 유가하락은 원유수입국의 이익가져와올들어 터진 오일쇼크는 앞서의 경우와 비교할 때 규모가 적은 석유파동이다. 이 미니 쇼크는 86년때만큼 산유국들에게 타격을 주지는 않았다. 가격도 그렇게 떨어진 편이 아니다. 그러나 회원국간의상호협조, 비회원국에 대한 설득 등 OPEC의 기본적인 어려움은 더커졌다. 1조배럴쯤 되는 전세계 석유매장량의 거의 80%는 OPEC 국가에 묻혀있다. 가장 정확한 추측은 전세계에서 생산되는 원유가 적절히 조절되더라도 2005년을 전후해 비OPEC국가들의 원유가 바닥이 나기시작할 것이라는 게 정확한 추측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점 때문에OPEC 산유국들은 각자 세계시장에서 점유율을 높이려 애쓴다.회원국들이 더 많은 석유를 팔려는 정책을 지속시키다 보면 필연적으로 OPEC 조직은 손상을 받는다. 유류가격이 낮으면 산유국들은고통을 줄이기 위해 서로 협력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석유경기가회복되면 회원사들간의 협력은 자취를 감춘다. 가격이 높으면 시장점유율에서 가장 선두에 서고 싶다는 유혹을 뿌리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산유국이 OPEC과 비OPEC 국가들로 나눠진 이래 비산유국의 석유생산몫이 계속 커져 왔다. 지난 73년 OPEC는 세계 석유수요의 54%를담당했었지만 오늘날에는 그 비율이 41%로 떨어졌다. 세계 시장의절반에 못미치는 점유율속에서 OPEC의 영향력은 당연히 감소하고있다.유가하락은 산유국들에 큰 타격을 입혔다. 석유거래에 대한 내용을전문으로 싣는 <페트롤륨아르구스 designtimesp=7930>지는 배럴당 14달러라면 20달러일 때와 비교해 연간 1천6백억달러를 산유국이 손해보는 것이라고계산한다. 감질나긴 하지만 소비자들은 이익을 본다. 물론 석유를수입하는 개별국가들은 엄청난 돈을 버는 셈이다. 전체적으로 지난해 10월 이후 유가가 거의 40%나 하락한 것은 원유수입국들에게는거의 노다지가 굴러오는 격이다.뉴욕의 투자회사 살로몬스미스바니는 3월 초순 만약 기름이 올 내내 배럴당 12달러선에서 머문다면 일본의 인플레를 1/4 감축시키고미국의 경우는 절반으로 줄일 수 있는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계산한 바 있다. 그리고 이렇게 되면 미국과 유럽의 경제성장률은 현상황에서 1/4이 더 늘어날 것이라고 얘기했다.하지만 아시아에서는 사정이 좀 다르다. 이 지역의 통화가치가 하락함에 따라 기름값이 달러로는 싸지만 원이나 바트 링기트로 계산하기에는 여전히 아주 비싼 가격이다. 기름값이 하락했다고는 해도단지 어려운 처지를 좀 조금 덜 나쁘게 만들었을 뿐이다.◆ 선진국들 유가 영향받지 않는 경제체질로 개선서구에서 유류가 변동의 영향이 즉각 나타나지 않는 것은 70년대이래 선진국들은 유가의 변동에 별로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 경제체질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OECD 국가들은 1달러어치의 석유를 생산하는데 드는 기름은 지난 73년보다 42%나 줄었다. OECD국가들이석유를 수입하는 데 드는 비용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85년의1/3 수준인 0.8∼1.7% 정도다. 석유는 미국과 유럽에서 생산되는전기 중 얼마 안되는 부분만을 생산한다. 미국은 73년 이래 전기생산에 드는 석유량을 80%정도 줄였다. 그래서 유가가 변화해도 전기가격은 별로 영향을 받지 않는다.대부분의 기름은 도로위에 뿌려진다. 유럽은 어떤 급격한 가격변화에도 산지 원유가의 80% 이상에 해당하는 세금을 부과함으로서 유가변동으로부터의 충격을 흡수해 왔다. 유럽의 자동차 운전자들은연료로 쓰는 석유 1배럴에 대해 2백달러 가량을 지불한다. 이 정도선에서 가격은 거의 변하지 않는다.기름이 아주 싼 미국에서는 가격 변동폭이 비교적 눈에 잘 띈다.작년 이맘때 갤런당 1.2달러 정도 하던 석유가 지금은 1달러 정도한다. 이 가격은 기록이 시작된 지난 59년 이후 가장 싼 소매가격이다. 기름값이 싸지면 그들의 주머니에 더 많은 돈이 머물게 된다. 메릴린치는 석유가격이 일년 내내 배럴당 15달러 이하에 머물면 3백억달러를 절약하는 효과가 있고 이는 미국인이 연간 소비하는 돈의 0.5%에 해당한다.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원유의 생산과 가격 예측과는 전혀 반대되는의견도 있다. <사이언티픽아메리칸 designtimesp=7941> 봄호에 게재된 칼럼이 그것이다. 둘 다 석유전문가인 이 칼럼의 저자들은 지구상에 있는 재래식원유의 절반은 이미 사라졌고 매장량도 매우 과대평가되어 있다고주장한다. 그들은 2030년까지 원유생산이 2/3 늘어날 것이라는 미국의 공식적인 예측에 의문을 제기한다. 그 대신 그들은 생산감소가 2010년부터 시작될 것이라고 단언한다.석유생산이 감소할 것이라는 예언이 최초로 나온 것은 20년대였다.그러나 이런 생각에는 어딘가 불순한 뜻이 숨어 있다. 전세계의 원유매장량이 거의 바닥이 났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말이 맞다면 앞으로 기름값은 OPEC 회원국들이 꿈속에서나 생각할 수준으로 치솟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현물을 가지고 있는 현재 산유국들만이 환호성을 지를 것이고 자신들의 땅속에 원유가 매장돼 있다고 생각하는 나라들은 헛물을 켜게 되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