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이 한계점을 향해 치닫고 있다.」다소 과장된 표현일지는 몰라도 조만간 나타날 엄연한 현실이다.그 가장 큰 이유는 수요와 공급이 현격하게 불일치를 보인다는데있다. 월드와이드웹(WWW)이 등장하면서 폭발적으로 늘어난 이용자수는 네트워크의 발전속도를 크게 앞질러버렸다. 게다가 대용량의데이터를 필요로 하는 멀티미디어 정보의 확산은 필연적으로 전송속도의 저하를 초래했고 회선의 안정성 또한 위협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한계설」을 뒷받침하는 또 하나의 근거는 인터넷 주소인 IP어드레스가 고갈된다는데서 찾을 수 있다. 「164.124.101.2」와 같이표현되는 IP어드레스(IPv4)는 이론상으로는 2의 32제곱개까지 부여할 수 있다. 그러나 2의 몇제곱개씩 묶어서 나눠주는 할당 방식으로 인해 실제로는 천만단위 정도가 한계다. A, B, C 세등급으로 나눠 부여되는 어드레스 가운데 상위인 A, B급은 이미 고갈됐으며 현재에는 C급만이 약간 남아 있을 뿐이다. 각종 조사예측 기관에 따르면 이것마저도 오는 2000년초까지는 다 소진될 것이라는 전망이다.이처럼 인터넷이 대중화되고 자원의 한계에 직면할 것이 예상됨에따라 미국에서는 기존의 인터넷을 대신하기 위한 새 인터넷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 96년 10월 거의 동시에 발표된 대학 중심의 「인터넷 2」와 정부가 추진 주체로 나선 「차세대 인터넷(NGI·NextGeneration Internet)」이니셔티브가 그것이다. 인터넷 2는 현재의인터넷망으로서는 고도화된 기술을 연구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게될 것이라는 인식에서 출발하고 있다. 즉 기본 목적은 학술 연구망으로서의 기능 회복이다. 이에 대해 오는 2002년을 서비스 시작 시점으로 잡고 있는 NGI는 인터넷 2의 기본 목표를 수용하면서도 훨씬 더 구체적인 실천계획을 갖고 있다. 먼저 △고속 대용량의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이를 통해 미래 정보기술을 시험하고 확보하며△이렇게 해서 갖춰진 기술과 경험을 기반으로 해서 극도로 발전된형태의 정보통신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것이다.얼핏 두개의 프로젝트는 서로 상이한 것 같지만 실은 상호 보완적이면서 의존적인 양상을 띠고 있다. 그러면서도 NGI가 인터넷2를 지원하는 측면도 있어 보인다. 결국 미국의 경쟁력 강화를 겨냥하고 있다는 점에서 두 계획은 동일선상에 놓여 있는 것이다. 인터넷 2와 NGI의 태동 경위 및 추후 진행과정을 살펴보면 이 점은보다 분명해진다.잘 알려져 있다시피 인터넷은 원래 연구·학술망에서 시작됐고 이들의 노력에 힘입어 인터넷의 대중화라는 큰 결실이 맺어지기는 했다. 하지만 대중화가 된 그 순간부터 연구학술망으로서의 인터넷의기능은 사실상 잃어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상용 목적의 데이터들이 인터넷 트래픽의 대부분을 차지해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난 96년 10월 1일 미국의 주요 34개 대학 전산담당자들이 모여 인터넷 2를 구축하기로 의견을 모은다. 인터넷 2의 참여 자격은대학이나 정부 기관으로 제한하되 기업에 대해서는 기부를 할 경우에 한해 「협력자」 지위를 부여하기로 했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기부를 할 수 있는 기업의 자격은 사실상 자국(또는 캐나다)에 한정되어 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의 참여 기업들이 AT&T, 3Com,IBM, 시스코 시스템즈, 루슨트 테크, 노텔(노던텔레콤), MCI 등 미국과 캐나다 기업으로만 구성되어 있다는게 이를 웅변해주고 있다.인터넷 2는 인터넷상에서 새로운 응용기술과 서비스를 개발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대학은 이렇게 해서 개발된 기술을 협력기업에 제공할 수 있으며 기업은 필요에 따라 연구 과정에 참여한 고급기술인력을 추후에 스카웃할 수도 있다. 명분은 학술연구망의 회복이지만, 실질적으로는 민간 정보통신산업의 경쟁력을 강화시키기위한 국가 차원의 프로젝트라는 것이 여기서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NGI는 인터넷 2와 같은 달, 그러나 약간의 시차를 두고 공개됐다.NGI는 국립과학재단(NSF), 항공우주국(NASA), 국립보건원(NIH), 국립표준기술원(NIST), 고등국방연구기획청(DARPA) 등 5개 국가 기관(99년부터는 에너지부도 참여 예정)에 대해 연간 1억달러씩 5년간예산을 할당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계획으로서, 이를 통해 새로운인터넷 프로토콜(통신규약)인 IPv6, 실시간 정보전송을 위한 RSVP프로토콜 등을 개발하는 것이 주 목표다.이 가운데 인터넷 2와 관련해 특히 주목되는 것은 NGI가 추진하는제1단계의 계획, 즉 고도화된 네트워크 기반 구축이다. NGI는 연구자들에게 우선 고속 대용량의 네트워크 환경을 제공한다는 계획을세워놓고 있다. 이는 다시 두단계로 나눠지는데 하나는 현재의 인터넷보다 1백배 이상 빠른 속도(1백Mbps 이상)를 내는 사이트를1백군데 이상 NGI에 연결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지금보다 1천배이상 빠른 속도(1Gbps)의 사이트를 10개 이상 NGI에 연계시킨다는것이다. NGI는 이를 통해 차세대 초고속 통신망 운용시스템을 시험하고 관련 응용기술을 개발하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미 정부는이 과정에서 대학의 참여가 없으면 성공적인 결과를 낳기 힘들다고보고 대학에도 이 시스템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로써NGI와 인터넷 2는 사실상 하나의 조직망으로 기능하게 됐다고 할수 있다. 그렇다면 NGI를 통해 나타날 기대효과는 무엇인가. 미국 정부는 무엇보다 위기관리와 원격진료 분야에 있어 획기적 진전이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출범 1년여가 지난 현시점에서 NGI가 제시하는 몇가지 구체적인 미래 기술들은(www.ngi.gov) △날씨, 지형, 기상 조건등은 물론이고 여타 전략적 요소들을 결합해 가상전투 상황을 시험해볼 수 있는 SF 전투시뮬레이션 △십억분의 1m 단위로 원자 구조를 측정하고 이를 다시 사람 크기로 확대해서 연구할 수 있는 나노기술(Nano Tech) △인체 내부의 모습을 디지털 데이터로 저장해3차원으로 살펴볼 수 있도록 하는 투명인간 프로젝트 △인간이 인식하는 동안의 뇌의 활동상황을 원격에서 관측할 수 있게 하는 기술 △원격의료 강의 △멀리 떨어진 학자간에 3차원의 분자 구조를놓고 쌍방향으로 공동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협동작업 등이다.◆ 가전제품도 하나로 통제 가능특히 흥미를 끄는 대목은 IPv6 프로토콜을 이용한 홈 오토메이션기술이다. IPv6는 2의 1백28제곱개의 IP어드레스를 만들어 낼 수있기 때문에 거의 모든 가전제품에 어드레스를 부여할 수 있게 된다. 이는 곧 TV를 통해 인터넷 신문을 보며 필요하면 프린터로 출력도 할수 있는 등 집안의 가전기기들이 하나의 통합된 시스템으로제어되는 것을 의미한다.하지만 결코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이 기술의 진원은 미국이 독점적으로 쥐고 있다는 사실이다. 「고도화된 정보의 메카」를 구축해전세계로부터 인터넷 이용료를 받을 수도 있으며, 최첨단 기술의원천기술을 독점함으로써 이를 필요로 하는 기업으로부터 로열티를징수할 수도 있다. 물론 미국은 인터넷이나 NGI가 일반에 공개되지는 않고 폐쇄적으로 운영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종국적으로는 네트워크를 개방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으리라는게대다수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어쨌든 인터넷 2나 NGI가 표면적으로는 고상한 지향점을 내세우면서도 그 이면에는 「인터넷에 대한 미국 주도권의 유지」라는 의도가 감춰져 있다는 지적은 그래서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