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및 금융기관의 구조조정과 관련해 벌처펀드(Vulture Fund)라는 용어가 자주 등장한다. 지난 3월 우리나라의 한라그룹이 미국의 투자은행인 로스차일드가 운용하는 펀드로부터 10억달러의 브리지론(Bridge Loan)을 차용하는 거래가 이뤄진바 있다. 로스차일드는 자금난에 봉착한 한라그룹에 돈을 빌려주면서 한라그룹 기업의 주식과 자산을 외국인 투자자에게 매각해서 투자자금을 회수한다는 조건이다. 브리지론이란 자금의 소요시점과 자금유입시점이일치하지 않을 경우 그 공백기간동안 잠시 빌려쓰는 단기자금을 말한다. 다시말하면 한라그룹은 기업이 팔릴 때까지 돈을 빌려 쓰되기업의 주식이나 자산의 매각은 로스차일드에 위임한 형태다. 한라그룹은 차입한 돈으로 우선 기업을 정상화시킬 수 있고 그렇게 되면 로스차일드 입장에서도 외국인에게 매각이 용이해 빌려준 돈을쉽게 회수할 수 있어 서로에 도움이 되는 경우다. 한라그룹의 이같은 외자도입방식은 우리나라에서 벌처개념을 적용해 대규모 구조조정을 추진한 첫 사례로 꼽히고 있다.벌처펀드란 이같이 부실한 자산을 저가에 인수해 상황이 호전된후고가에 되팔아 차익을 내는 기금 또는 회사를 말한다.벌처(vulture)는 원래 「동물의 시체를 파먹고 사는 대머리 독수리」를 의미한다. 어려움에 빠진 기업을 인수해 돈을 버는 회사인벌처펀드에 무척 잘 어울리는 비유다. 대머리 독수리의 역할은 시체를 먹고 살기 때문에 너무 냉혹하다는 생각도 해볼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깨끗하게 청소해줌으로써 생태계를 유지해주는 순기능도있다고 한다. 벌처펀드가 부실기업을 정리해줌으로써 경제구조의건전화를 촉진시키는 것과 다를바 없다.물론 부실기업을 인수해서 경영을 정상화시키고 이를 되팔아 이익을 남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만큼 위험부담이 높고 힘든일이 아닐 수 없다. 부실기업과 자산을 회생시키고 매각하는 노하우와 정보분석력 등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나 성공하게되면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기 때문에 투기성이 매우 강하다. 따라서 벌처펀드는 고수익을 지향하는 헤지펀드나 투자신탁회사, 투자은행 등이 주로 설립해 운용하고 있는데 영업형태도 직접 경영권을 인수해서 기업을 회생시켜 되파는 방법, 부실기업의 주식 또는채권에 투자해 주주로서의 권리행사를 통해 간접참여하는 방법, 부동산등 자산만을 인수해 되파는 방법등 여러가지다.현재 우리나라에는 약 20여개의 미국계 벌처펀드들이 진출해 활동하고 있으나 실제 투자가 성사된 것은 많지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내자본들도 외국의 컨설팅회사들과 제휴해 이같은 벌처방식의 투자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 정부출자에 의해 정책적으로 설립돼 상업성보다 공익적 기능이 강하긴 하지만 우리나라의성업공사가 벌이고 있는 사업이 벌처에 속한다. 금융기관의 부실자산과 기업부동산을 인수해 개발하거나 수요자가 원하는 형태로 개조해 비싼값에 되팔아 투자자금을 회수하기 때문이다.벌처펀드 형태는 80년대 중반 미국경제가 어려움을 겪기 시작하면서 번창하기 시작해 90년대 초반까지 급성장해왔다. 그러나 90년대중반이후 미국경제가 장기호황에 접어들면서 다소 위축돼가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우리나라에 대한 벌처펀드들의 관심이 고조되고 있으면서도 실제투자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은 우리 경제의 자산디플레가 더 진행되리라는 판단과 함께 경제전망이 너무 불투명해 투자결정을 내리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 관계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그러나 마무리단계에 와있는 금융 및 기업의 1차적인 구조조정이 실행되고 나면 벌처형태든 합작투자든 외국자본의 진출이 꽤 늘어날 것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