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물질에서 약품을 추출하는 일은 한방뿐 아니라 양방에서도 흔한 일이다. 택솔과 아스피린이 대표적이다. 둘 다 나무껍질에서 추출한 것으로 택솔은 주목에서, 아스피린은 버드나무에서 추출했다.또한 페니실린과 시클로스포린(거부반응 방지제)은 곰팡이에서 추출했다. 콜레스테롤 저하제로 유명한 로바스타틴 역시 곰팡이에서추출했다.그러나 양방은 90년대초 들어 자연물질에서 약품을 추출하는 작업을 구태의연한 것으로 몰았다. 화학물질을 실험실에서 결합하면 수많은 새로운 화학물질을 만들어 낼수 있기 때문이었다. 보통 하나의 화학물질에서 4만종류의 새로운 화합물을 만들어 낼수 있다.양방의 이런 분위기가 바뀐 것은 최근 2년 사이의 일이다. 신약을만들어 내는데는 역시 자연과 밀착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현재 수십여개의 소규모 생명공학 전문기업들이 대형 제약회사들과 함께 수십만 종류의 미생물과 식물에서 새로운 약품을 찾아내기 위해 협력관계를 맺고 있다. 미국 매사추세츠의 워세스터에 소재한 파이테라 역시 이들 생명공학 전문회사중 하나다. 이 회사의회장인 말콤 모빌박사는 화학물질로 만드는 약품에는 한계가 있기마련이라고 지적한다. 그것은 연구원들의 제한된 상상력과 실험도구의 한계 때문이다. 실험실에서 만들어진 화학약품들이 기초적인테스트조차 통과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반면 식물이나 곰팡이들은 이미 35억년이란 오랜 기간을 통해 진화한만큼 유용성이 충분히 검증됐다는 것이다.파이테라는 이미 바이러스와 곰팡이 감염에 효력이 있는 두가지 약품을 분리해내는데 성공했다. 이 회사는 5월초 덴마크의 뉴로서치사 및 미국의 갈릴레오사와 계약을 체결하고 신경계질환이나 심장병치료에 도전하고 있다.그런데 자연에서 약재를 구하는 생약생산은 기본적인 대량생산체제를 갖추는 문제를 안고 있다. 한방의 전통적인 방법은 약초잎 나무껍질 뿌리 등을 통째로 말리고 갈거나 찌는 번거로운 과정을 거쳤다. 파이테라는 시험관에서 식물의 세포에서 유용한 부분만 분리해내는 방법을 찾았다. 이 회사가 전세계에서 수집한 약재는 5천종류나 되는데 이 약재들은 모두 뜨거운 약탕기 대신 차가운 유리시험관에서 가공될 것이다.파이테라가 개발한 서닐린(sunillin)이라는 곰팡이성 질환 치료제는 흔히 구할 수 있는 식물(파이테라측은 식물명을 밝히려 하지 않는다)이 칸디다효모나 아스퍼길러스곰팡이에 감염됐을 때만 배양할수 있다. 서닐린은 식물세포에서 추출한 다음 시험관에서 배양했는데 곰팡이성 질환을 치료하는데 탁월한 기능이 있다. 쥐를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 80%의 치유율을 보였다. 반면 현재 널리 쓰이는 곰팡성질환 치료제인 플루코나졸(fluconazole)로는 한마리도 살리지못했다.서닐린의 우수성은 플로코나졸보다 단지 약효가 뛰어나다는데 있지않다. 이제까지 나온 화학약품과는 전혀 다른 치료 메커니즘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바이러스나 곰팡이들이 화학약품에 내성이 생겨 치료가 어려웠다.파이테라는 생약원료를 식물 뿐 아니라 바다속에 사는 미생물에서도 찾고 있다. 수천종류의 박테리아와 곰팡이를 하와이나 버진군도근처의 바다에서 채취해놓은 상태다. 이미 캘리포니아 해안에서 채취한 박테리아에서 마리노빌이란 신약을 분리했는데 실험결과 포진(herpes)치료에 상당한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약재의 보고는 바다 뿐 아니다. 생명공학 전문기업인 테라젠은 토양에 우글거리는 박테리아와 곰팡이의 0.1%만 이용해도 유용한 약품을 만들어낼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보통 미생물은 대량으로 배양하는게쉽지 않은데 테라젠은 미생물에서 DNA를 추출해 대량으로 복제하는데 성공했다.「Biotech’s secret garden」 The Econimist June 5 정리·안도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