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밀양은 아리랑과 얼음골로 유명하다. 여름에도 얼음이 어는얼음골은 신기함 때문에 찾는 발걸음이 끊이질 않는다.밀양에 있는 한국화이바에도 신기한게 많다. 회사를 처음 찾는 사람은 의자에 앉은 사람이 25m 상공에 매달려 있는 것을 보고 깜짝놀란다. 가까이 가서 살펴보고 마네킹인 것을 알고서야 가슴을 쓸어내린다. 이 설비는 자유낙하충격시험장비. 헬리콥터가 추락할 때인명을 보호하는 의자를 시험하는 장치다.또 하나 재미있는 장치는 조류충돌시험장비. 일명 닭대포다. 닭을넣고 포열처럼 생긴 기다란 관을 통해 발사한다. 관끝엔 비행기조종석 덮개인 캐노피가 있다. 초고압의 압축공기에 의해 펑하는 굉음과 함께 발사되는 닭으로 캐노피에 구멍이 뚫리는지를 테스트한다. 고속으로 나는 비행기가 새와 충돌할 때 캐노피가 뚫리면 조종사 목숨이 위태롭기 때문이다. 시험장비만 흥미로운게 아니다. 생산제품들 가운데도 재미있는게 많다. 예컨대 탄소섬유로 만든 헬리콥터 동체, 대형여객기 날개, 초경량 철도차체, 카보넥스, 풍력발전시스템, 태양광 자동차 등.얼핏보면 서로 연관성이 전혀 없는 제품들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하나의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복합재료를 소재로 쓴다는 점이다. 복합재료는 탄소섬유 유리섬유 등 신소재를 결합해 만든 21세기 첨단소재. 제품을 가볍고 튼튼하게 만드는 것은 연료절감이나주행성능 향상을 위해 필수적이다. 따라서 자동차는 물론 철도차량컨테이너에서 비행기에 이르는 다양한 제품이 철이나 스테인리스알루미늄에서 복합신소재로 점차 대체되고 있다.◆ 아버지 도우며 실전 경영수업이중 유리섬유와 탄소섬유로 만든 8인승 비행기 동체는 항공기제작사에 납품돼 지난해 성공적으로 시험비행을 끝냈다. 대형항공기의꼬리날개에 붙어 각도를 조절하는 미익승강타(항공기용 엘리베이터)는 스페인의 카사로부터 1천2백60만달러어치의 주문을 받았다.카보넥스는 교각의 균열 부위에 바르는 보수보강재다. 마치 다친다리에 파스를 붙이듯이 카보넥스를 발라주면 철판보다 우수한 강도를 유지한다. 탄소섬유에 망직물체를 대고 가열 융착시키면 하중변화에 따른 적응력이 우수하기 때문이다.한국화이바는 첨단기술력 때문에 불황을 모른다. 지난해의 불경기에도 8백80억원의 매출을 기록, 96년보다 1백억원이 증가한 것이이를 말해준다.한국화이바를 이끄는 조문수사장(40)은 나이에 비해 최고경영자경력이 긴 편이다. 올해로 15년째를 맞는다. 창업주인 조용준 회장의 아들인 그는 어려서부터 회사일에 관여해왔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도 공장에서 잔심부름을 했고 대학교(동국대 화공과)재학중엔학교갈 때보다 회사에서 일할 때가 더 많았다. 주말과 방학 땐 반드시 밀양으로 내려와 아버지를 도왔다.83년 가을 기획실 사원으로 정식 입사한 그는 이듬해 한국화이바의소재사업부를 떼내 출범한 한국카본의 사장을 맡았다. 회사래야 직원 10여명의 소기업이었다. 이때가 약관 26세.한국카본을 맡아 경영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84년 가동 첫해매출액 제로에 손실이 발생한 업체를 85년 20억원 매출에 흑자로돌려놨고 86년엔 53억원 매출에 10억원 흑자를 기록했다. 이어 1백30억원 2백50억원 등으로 해마다 매출을 2배로 신장시켰다. 당시생산품목은 카본프리프레그. 낚싯대 골프채와 보수보강재의 소재로쓰이는 제품이다. 국내에 진출해 있던 일본업체들이 한국카본과의경쟁에서 이기지 못하고 줄지어 철수했다.그는 경영을 하면서 독특한 전략을 구사했다. 수읽기는 깊이 하되일단 결정된 사항에 대해선 배짱으로 밀어붙였다. 일본업체가 철수하고 난 국내시장은 대기업과 양파전을 벌이게 됐다. 이 와중에서상대업체가 가격인하전략으로 밀어붙였지만 그는 눈하나 깜짝 하지않았다. 가격을 내려달라는 대리점들의 요청이 줄을 이었다. 하지만 그는 몇달뒤 틀림없이 가격이 다시 오를 것으로 봤다. 그러면가격을 올려야 하고 잦은 가격변동은 소비자들로부터 불신을 사게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따라서 가격을 내리지 않는대신 연말에 가격을 올리지 않겠노라고 약속했다. 예상은 적중했다. 이런 경영은자사제품에 대한 자신감과 시장을 넓고 깊게 내다보는 안목에서 비롯된다.『대기업이라고 정보가 빠르고 정확한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대기업은 사업분야가 많아 특정제품에 관한 정보는 전문업체에 훨씬 뒤질수 있다.』 이런 상황판단능력은 어릴 때부터 공장을 드나들며몸으로 익힌 경영노하우와 감각이 도움이 된 것은 물론이다.◆ 미래지향 제품 개발 … 2~3년후 결실그는 경영자가 갖춰야할 가장 중요한 덕목은 시장의 흐름을 정확히읽어내는 것이라고 단언한다. 공장관리 품질향상 판매증대와 자금관리도 중요하지만 시장을 읽고 방향을 정하는 일만큼 중요한 것은없다는 것이다. 첨단성능을 지닌 거대선박도 조그만 키를 잘못 틀면 좌초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설명이다. 이를위해 끊임없이 해외전시회를 참관하고 외국기업을 방문해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한다. 앞으로 21세기 유망분야는 무엇이고 이런 전망속에서 회사가나아가야할 방향은 무엇인지를 알아내려 고심하는 것이다.91년 한국카본을 전문경영인에게 물려주고 한국화이바 사장으로 취임한 그는 이런 시각을 토대로 복합소재제품의 다양화에 발벗고 나섰다. 8인승 비행기동체, 탄소섬유 헬리콥터동체, 헬기 방탄의자,여객기 날개 등이 탄생했다. 이어 유리섬유 냉동컨테이너, 초경량복합재료 열차차체, 방사성폐기물 고화(固化)장치, 풍력발전시스템, 태양광 자동차 등이 속속 개발됐다.이들 제품은 2∼8년동안 연구끝에 탄생한 제품이다. 또 매출이 생기는 제품도 있고 앞으로 3년 이상 지나야 본격적으로 팔리기 시작할 제품도 있다. 미래지향적인 첨단제품들이 많아 성장가능성도 크다는 얘기와 통한다. 예컨대 8년동안 실험끝에 개발한 풍력발전시스템은 대관령에 이어 올 2월 국토 최남단인 마라도에 설치되는 등이제부터 결실을 맺기 시작했다. 21세기엔 이미 개발된 제품의 열매를 속속 딸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이에 대비, 한국화이바는 올들어 20명의 인력을 뽑는 등 연구와 해외영업 강화에 나섰다. 지난해 40%에 머물렀던 수출비중을 올핸50% 이상으로 높여 달러획득에 적극 나설 계획이다. 복합신소재분야만 집중 공략하고 있는 한국화이바는 전문화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하나의 모델기업이라고 할수 있을 것같다. (0527)359-2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