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곤두박질치는 일본 엔화가치, 그에 따라 휘청거리는 아시아경제, 그러나 식을 줄 모르고 가열되는 미국 경기」.요즘 돌아가는 세계경제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엔화가치가 수직하락을 지속하면서 아시아 경제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그나마 잘 나간다는 미국경제엔 언젠가부터 버블 붕괴에 대한 경고등이 켜졌다. 나라별 지역별 경제구조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있고서로의 통화나 금융시스템이 촘촘히 엮여 있는 세계 경제. 그 어느한 구석에선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의 시계바늘 소리가 재깍재깍 들리는 듯한 인상이다. 일부에선 1930년대 세계 대공황이70년만에 다시 재현될 것이란 비관론마저 대두하고 있다.실제로 대우경제연구소는 「세계 디플레(대공황) 발생할 것인가」라는 제목의 내부 보고서를 최근 작성, 이목을 집중시켰다. 대우그룹 계열사 최고경영자 등에만 제한적으로 전달된 이 보고서는 『국제적 예측기관들이 금년을 포함한 중장기 세계경제 성장률을 재차하향 조정하는 가운데 세계적 대공황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점증하고 있다』며 그 위험 징후로 5가지를 들었다. 엔화약세 등 일본경제 침체, 미국경제의 버블붕괴, 아시아 금융위기, EU(유럽연합) 경제의 버블경계론, 밀레니엄 버그 등이 그것이다. 보고서는 이들5가지 요소의 폭발력과 상관관계를 분석해 세계 대공황에 대한 일반인들의 막연한 불안감을 구체화시켰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보고서는 결론으로 국제사회가 세계경제의 교란요인들을 적극적으로 해결하지 못한다면 지난 30년대와 같은 대공황이 발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보고서 내용을 간추린다.◆ 최근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IMF(국제통화기금) 등 국제기구들은 세계경제성장률을 계속 수정 전망하고 있다. 물론 수치를 낮추고 있다.IMF가 작년 9월말 4.3%로 내다봤던 98년 세계경제성장률을 그해12월 3.5%로 하향조정한데 이어 지난 4월초엔 다시 3.1%로 낮췄다.OECD도 회원국 전체의 금년 경제성장률 전망을 지난해말 2.9%에서2.3%로 고쳤다. 영국의 대표적인 경제분석기관인 EIU도 향후 2년간세계경제가 침체에 빠질 것이라며 성장률을 IMF보다 낮은 2.9%로예측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 경제가 안개 속을헤매고 있고 미국경제의 버블에 대한 논쟁이 뜨거워지고 있다. 세계 대공황의 공포가 엄습하고 있는 것이다. 대공황을 촉발할 수 있는 요인으로 다음 5가지를 들 수 있다.● 일본경제의 장기침체일본정부는 작년 11월 이후 다섯 차례에 걸쳐 경기부양책을 내놓았지만 경제를 침체의 늪에서 건져내는데 실패했다. 일본경제는 올해도 마이너스 성장이 예상된다. 일본이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7.7%.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다. 이런 나라의 경제부진은 다른아시아 국가의 수출부진을 유발, 세계 대공황을 초래할 수 있다.실제로 최근의 엔화가치 하락으로 한국과 중국을 포함한 주변 아시아 국가들엔 수출비상이 걸렸다. 게다가 엔화의 급격한 하락을 막고 자기자본을 확충하기 위해 일본의 금융기관들이 미국 국채 등해외자산을 본격적으로 매각한다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이 경우 달러강세가 흔들리며 미국의 주식 및 채권시장이 대혼란에 빠질것이기 때문이다.● 미국경제의 버블최근 미국 주식시장을 중심으로 한 금융자산의 급격한 팽창은 지난80년대 일본에서 생성된 버블과 유사하다는 지적이 많다. 이는 향후 미국경제 전체에 엄청난 후유증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미국 주가지수인 다우존스지수는 지난 2년동안 65%나 상승했다.그러나 기업수익의 증가속도 등에 비하면 이런 주가상승 속도는 지나치게 빠른 것이다. 증시외에 대규모 M&A(기업인수합병)붐과 부동산 가격의 급상승도 미국경제의 버블 근거로 제시된다. 부동산 가격의 경우 샌프란시스코 보스턴 댈라스 등 주요도시의 사무실 임대료가 지난해 20%이상 올랐다. 뉴욕의 땅값은 지난 6개월 동안 거의두배 이상 뛰었다. 만약 이런 거품이 일시에 꺼진다면 세계경제는핵폭풍 이상의 타격을 받을 것이다.● 아시아 금융위기작년 7월 태국 바트화 폭락을 계기로 촉발된 아시아 금융위기는90년대 들어 과잉 공급된 국제유동성이 급작스럽게 수축되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세계경제의 커다란 교란요인이되고 있다. 특히 세계 금융시장이 하나로 통합된 상황이어서 어느한 지역의 금융시스템 붕괴는 전체 시스템을 마비시킬 수 있다. 아시아 금융위기가 전세계적인 금융혼란의 가능성을 내재하고 있다는얘기다. 또 아시아 각국이 해외차입 등을 통해 과잉투자해 놓은 자동차 전자 철강 화학 등의 산업도 세계경제를 위협하고 있다. 예컨대 아시아 국가들이 폭락한 통화가치를 수출가격에 완전히 반영한다면 미국 등 선진국들의 수입가격을 크게 떨어뜨려 세계적인 디플레를 유발할 가능성이 있다.● EU경제의 버블논쟁버블에 대한 우려는 미국 뿐 아니라 EU경제에서도 제기되고 있다.그동안 위험분산 목적의 투자대상으로 여겨졌던 EU주식시장의 규모가 채권과 다른 금융상품 시장을 급속히 추월하고 있어서다. 일부에선 버블주장의 근거로 △EU각국의 전반적인 저금리 정책 △사회복지정책으로 인한 민간의 과도한 증권보유 △아시아에서 이탈한투기자금의 EU주식시장 교란 가능성 등을 들며 내년 EMU(유럽통화동맹) 출범시점을 버블붕괴의 시발점으로 보고 있기도 하다.● 밀레니엄 버그컴퓨터가 서기 2000년을 인식하지 못하는 밀레니엄 버그도 대공황을 촉발할 수 있는 복병이다. 국제결제 흐름에 혼란을 야기하는 등세계 경제활동에 장애를 초래할 수 있어서다. 밀레니엄 버그를 최초로 경고한 도이체 모간 그렌펠의 한 이코노미스트는 2000년 1월부터 최소한 12개월 이내에 지난 73∼74년의 경기침체와 같은 극심한 불황이 전세계를 강타할 가능성이 40%이상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또 밀레니엄 버그를 해결하기 위해 미국의 전 컴퓨터를 수리하는 데 드는 경제적 비용만 따져도 아시아 경제위기에 따른 미국경제의 손실과 맞먹는다는 분석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