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0월14일 경기도 화성의 한동기계. 직원들이 생산활동을 중단한채 삼삼오오 모였다. 이들은 근심어린 표정으로 회사가 오늘을넘길 수 있을 것인지를 걱정하고 있었다. 애꿎은 담배를 몇갑씩 태우며 초조한 심정을 달래는 직원이 있는가 하면 체념상태에 빠진사람도 있었다. 30여억원의 자금을 마련할 가능성은 없어 보였다.너무나도 억울했다. 직원들 대부분은 10여년간 동고동락해온 사람들. 식품가공 자동화라인으로 세계를 제패하자며 의기투합한 사이다. 성수동 임차공장에서 벗어나 3년전 근사하게 지은 화성공장으로 옮길 때 한사람도 떠나지 않고 내려온 것은 세계시장 제패라는공동의 목표가 있었기 때문. 열심히 기술을 개발,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 올려놓고 수출도 활발히 하던 차에 부도위기를 맞은 것이다. 이유는 단 하나. 국내업체에 납품하고 받은 어음이 부도가 나서 연쇄부도의 위기에 처한 것이다. 일본 중국 동남아시장을 석권하며 승승장구하던 한동기계는 그날로 결국 부도를 냈다.다음날 전 직원은 노희윤 영업부장(41)을 중심으로 모였다. 이미선수금을 받고 계약을 맺은 업체에 대한 납품문제를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해 논의하기 위한 것. 자신들의 월급이나 퇴직금에 대해선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한동기계를 사랑해온 많은 거래선들을 실망시켜선 안된다고 입을 모았다. 영업과 수출을 총괄해온 노부장은더욱 책임감을 느꼈다. 자신이 앞장서 수주해놓고 납품을 못한다는것은 자존심이 허락하질 않았다. 직원들은 출국한 사장 대신 노부장이 주도해 별도회사를 창업해 한동기계의 기술력과 거래처를 이어받는게 어떠냐고 제안했다. 또 일본 중국의 바이어와 국내거래선들도 노부장을 믿고 그동안 주문을 해온만큼 만일 회사를 창업, 제품을 생산하면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주문을 하겠다고 제안했다.고심을 거듭하던 노씨는 결단을 내렸다. 집안에 어느 정도 재력이있던 노씨는 별도회사를 창업키로 했다. 한동기계의 설계도면과10여건의 특허권및 영업권을 양수하고 창업에 동참하는 직원을 모아 부천에서 새 회사를 설립했다. 간판은 나래기계공업. 다시한번세계를 향한 웅비의 나래를 펴보자는 뜻이다. 70명의 한동기계 직원중 35명이 회사설립에 참여했다. 고영일 공장장을 비롯, 신영도차장 김주효과장도 들어있다. 이들은 기계제작과 설계분야에서15년 이상 잔뼈가 굵은 베테랑들.◆ 수주 위해 전직원이 발벗고 나서이들은 직장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뼈저리게 체험한 사람들이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수주를 위해 발벗고 나섰다. 사장으로 취임한 노씨는 가장 먼저 국내외 거래처에 한동기계출신이 모여 창업했음을알렸다. 국내영업담당자들도 기존 7백여개 거래선에 새로운 카달로그를 보내고 일일이 방문했다. 나래기계라는 생소한 이름에 시큰둥하던 거래처들은 한동기계 출신이 만든 회사라는 얘기에 반갑게 맞아줬다. 한두건씩 수주가 이뤄지기 시작했다. 생산직원들은 야간과휴일없이 기계를 돌리고 있었다.노사장은 앉아서 지시만 하고 있을 수 없다며 직접 필리핀 중국등지로 뛰었다. 때마침 국제통화기금(IMF)사태가 터지면서 원화가치가 급락하자 수출은 호기를 맞았다. 필리핀 에이전트를 통해 식품업체인 메트로랍이 한국산 자동화라인에 관심을 보인다는 얘기를듣고 즉각 비행기에 몸을 싣고 마닐라로 떠났다. 마닐라에서 다시남쪽으로 차를 타고 1시간반을 달려 캐비타에 도착했다. 상담에 들어간 그는 그동안 메트로랍이 사용해온 이탈리아제보다 품질이 뛰어나면서도 가격은 40%나 싸다는 점을 강조했다. 메트로랍 관계자들도 곧이어 내한, 기계를 일일이 점검한 뒤 주문을 했다. 첫 오더는 생수라인. 생수병을 정렬하고 세척한뒤 생수를 담고 마개를 막는 자동화라인이다. 용기정렬기 워셔 필러 캐핑기 등으로 구성된1개라인을 주문한데 이어 식용유라인과 또 다른 생수라인을 추가로주문했다. 이는 첫 주문분의 성능이 뛰어난데 따른 것이다. 총 오더는 90만달러.노사장은 이번엔 중국에이전트의 얘기를 듣고 선양으로 날아갔다.선양시정부와 4개월동안 줄다리기를 한 끝에 캔자동화라인을 따냈다. 선양시정부는 한동기계가 중국에 설치한 라인의 성능판정을 끝낸 상태여서 비교적 짧은 기간내에 주문을 했다. 이 라인은 캔정렬에서 세척기 액체주입기 봉합기 잉크제트프린터에서 케이스포장기에 이르는 풀라인. 1백만달러에 이르는 것이다. 일본 미야타공업에서 후속오더를 준비중이라는 귀띔을 받은 노사장은 도쿄로 날아가간장생산라인 주문을 따냈다.한달의 절반을 이같이 해외로 뛰며 노사장이 창업후 8개월동안 따낸 오더는 모두 2백50만달러. 또 2백만달러 이상의 후속오더를 상담중이다. 건국수맥 호세아식품 등 국내업체들의 주문도 이어지기시작했다. 창업후 5월말까지 계약한 금액이 수출을 포함, 47억원에이른다. 연말까진 1백억원을 넘어설 것으로 보고 있다.노사장은 해외수주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기로 하고 올 가을엔 도쿄팩전시회와 태국전시회에도 출품하는 등 공격적인 시장개척에 나서기로 했다.또 중국 필리핀 말레이시아 태국 싱가포르 일본등 7개인 해외대리점을 10개 이상으로 늘리기로 했다. 수출지역은 30개국 이상으로다변화할 계획. 중국 동남아 중남미 등 개도국 뿐 아니라 미국 일본 등 선진국시장도 얼마든지 개척할 수 있는만큼 시장을 넓혀 나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궁극적으로는 독일의 클로네스를 꺾고 세계정상의 기업으로 도약한다는 전략이다. 현재 기술면에서 90% 이상에 달한만큼 앞으로 3년내에 충분히 정상에 올라설 수있다는 분석이다. 또 회사의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 식품기계설계과해외영업 생산분야의 경험자 10명을 연내 채용키로 했다.나래기계의 애로는 금융문제. 수출오더는 쇄도하는데 신설업체라무역금융을 비롯한 금융기관 대출과 신용보증을 받기가 어렵기 때문.◆ 최고 애로사항은 금융문제이미 자신이 출자한 10억원 이외에 10억원 정도의 자금이 들어오면회사운영이 성장가도를 질주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에따라 희망하는 사람의 출자를 받아 자본금도 늘리기로 했다. 노사장은 『아직 부채가 한푼도 없다』며 『탄탄한 기술력과 자본력을 바탕으로 세계시장에서 날개를 활짝 펴보일 생각』이라고 포부를 밝히고있다.노사장은 동고동락하는 직원들을 위해 회사 주식의 10%를 직원들에게 분배할 계획이다. 우리 사주를 통해 애사심을 더욱 고취시키고 도약에 나선다는 구상이다. 또 기업이윤의 1%를 사회사업에 내놓기로 했다. 자신이 사업을 하는데 삼육식품의 도움을 많이 받은만큼 이 회사의 재단을 통해 불우이웃돕기에도 앞장선다는 생각이다. (02)859-53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