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소리나 영화 등 모든 예술분야에서 춘향전은 3백여년간 서민들에게 큰 감동을 준 작품입니다. 하지만 춘향전에 대한 연구는 아직그 정도의 성과에 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고전문학을 연구하는 학자로서 연구를 게을리한 점을 스스로 「반성」하는 의미에서 감옥에 들어가 있기로 한 것입니다.』서울 서초동 국립중앙도서관 1층 전시실의 한 귀퉁이에 마련된 「감옥」에서 인터뷰때문에 잠시 풀려난 「죄인」의 말이다. 죄인은다름 아닌 설성경교수(54, 연세대 국어국문학과). 우리나라 국학연구를 이끌어온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과 국립중앙도서관이 주최한「춘향전 특별자료전」의 「연출가」인 설교수가 특이하게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로 감옥을 택한 이유다. 감옥에 대한 설교수의설명이 이어진다.『감옥은 춘향이 혹사를 당하는 장소이자 갈등을 순화해 「춘향=정절」로 대표되는 감동을 잉태해내는 장소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연구자인 저와 관객이 함께 작품속의 세계로 보다 가까이 다가가 고통을 「체험」하며 다시 해석하고 창조하는 곳이 감옥이기도합니다.』고전문학작품의 내용을 갖고 독자가 직접 체험하고 다시 해석하고재창조하는 것. 설교수는 이를 생소한 「문학응용학」이라고 불렀다. 『문학작품의 내용, 책속의 세계에 몰입하고 해석하는 연구가아니라 현실속에서 재해석·재창조하며 「열린 세계」 「현장속의문학」으로 만드는 작업』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 행사도 『전시회나 연구발표회가 아니라 「자료전」, 「나들이」라는 말을 사용했다』는 것이 설교수의 말이다. 자료를 보며 체험을 하며 「마실가듯」 춘향전의 세계를 체험한다는 것이다.유난히 「체험」을 강조하는 설교수의 말처럼 전시회장은 색달랐다. 입구 한편은 동아줄을 얼기설기 엮어 천처럼 드리웠으며 한쪽은 검은천으로 춘향과 이도령간의 애틋한 사랑이 이어지지 않는 상황을 표현했다. 감옥으로 이어지는 광목천 위에는 춘향의 일편단심을 나타내는 붉은 줄이 숨은 채 이어진다. 감옥은 절대고독의 공간. 춘향은 감옥에 있는 동안 수청을 들라는 월매 등의 유혹으로갈등이 끊이지 않는다. 그러나 갈등은 잠시. 춘향이 목숨을 포기하면서 모든 것을 얻는 해탈과 정화의 공간이 감옥이다. 고통과 갈등을 뛰어넘은 춘향의 마음은 곧 죽음을 앞에 두고도 일편단심을 지키는 마음으로 나타난다. 감옥 옆에 음산하고 오싹한 모습으로 자리잡은 해골이 바로 이런 마음의 표현이다. 해골은 곧 「경계」다.경계를 넘어서면 형형색색의 밝고 환한 색깔의 천들이 물결친다.춘향의 정화된 마음이다. 이어서 춘향과 이몽룡이 처음 만남을 가졌던 광한루의 축소된 모형물이 나타난다. 『광한루에 오작교를 만들지 않았습니다. 춘향의 부활은 곧 21세기를 앞두고 남과 북이 통일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 점에서 오작교는 남과 북이 하나로만나는 다리여야 합니다. 그 오작교는 아직 세워지지않았습니다.』이러한 설치물들이 춘향전의 줄거리라면 전시실 중앙에는 정화되고고양된 춘향의 부활과 해원을 의미하는 청색과 붉은색의 천들이 넘실대고 있다. 태극의 원리에 다른 조화의 표현이다. 『모두 받아들이고 기다리는 마음을 가지면 그만큼 통일이 빨리 온다는 것이 결국 춘향의 부활이 주는 시사점』이라는 것이 설교수의 설명이다.결국 관객이 작품내용과 전시물을 갖고 자신의 마음속에서 녹이고만들어내는 것이 문학응용학으로 이번 자료전의 취지라는 뜻이다.그러나 아무리 봐도 전위예술가들의 퍼포먼스같은 분위기가 강하게느껴짐을 어쩔 수 없다. 설교수도 이를 부인하지 않는다. 대신 문학응용학의 기치를 걸고 처음 소재로 택했던 구운몽과 지난해에 연구했던 홍길동전을 예로 들며 문학응용학에 대한 이해를 보탰다.◆ 문학응용학은 ‘문화운동 한 방법’구운몽의 주인공은 육관대사로 양소유로 환생해 선녀들과 인생의환락을 모두 즐긴다는 것이 줄거리. 설교수는 주인공인 승려로서의상징성을 갖는 체험과 연구자로서 자신의 마음을 다잡기 위해 삭발을 했다. 바닷바람이 칼날 같은 2월 엄동설한임에도 작가(서포 김만중)의 출생지인 강화와 죽음을 맞은 경남 남해를 찾는가 하면 육관대사의 출생지인 인도를 찾아 직접 현지인들 앞에서 연구발표를했다. 연구발표 뿐만이 아니라 현지주민들에게 역사적 사실을 주지시키고 기념관 기념비 기념거리 등의 조성을 건의했으며 문화제와같은 축제도 제안했다. 『결국 문학응용학은 문화운동의 한 방법이기도 하다』는 것이 설교수의 지나는 말이다.지난해에 벌였던 홍길동전 연구는 학계는 물론 일반인들로부터 많은 관심을 끌며 연구결과가 단행본으로 나오기도 했다. 『은행이나관공서에 가면 견본서류에 항상 적혀 있는 이름으로, 3인칭 대명사의 대표적 고유명사인 홍길동이란 이름에 흥미를 가졌다』는 설교수는 홍길동의 정체를 찾아 떠났다. 이를 통해 『민중을 위한 공동체를 만들어 이상국가를 꿈꾸었던 홍길동은 실존인물로 결국 오키나와로 가서 1백년 이상을 유지됐던 이상국가를 만들었다는 사실을알수 있었다』는 게 설교수의 말이다. 홍길동이 단순히 실존인물임을 밝히는데에서만 그치지 않았다. 홍길동의 출생지인 전남 장성에가서 홍길동과 관련된 다양한 문화행사를 건의했다. 지금은 홍길동로도 조성되고 홍길동의 캐릭터를 이용한 상품도 만들어지고 있다.『홍길동을 고전문학의 주인공에서 현세에 재생한 영웅으로 만들었다』는게 설교수의 자부심이다. 이렇게 문화운동의 한 방법이자 다양한 장르의 어느 한 부분으로 되살려 현재화 구체화시키는 것이문학응용학이라는 것이다.이번에 자료전을 갖는 춘향전은 설교수의 문학응용학의 세번째 소재. 『조선왕조실록을 뒤져보니 춘향이라는 이름이 자주 나와 흥미를 가졌다』는 설교수는 『춘향이 허구의 인물이거나 이도령을 위해 정절을 지킨 기생의 딸이 아니라 자신이 사랑하고 모시는 사람을 위해 죽은, 후세에 알려지지 않았지만 흔히 접할 수 있었던 「다수의 여인」들』이라고 말한다. 짧은 면회를 마친 설교수가 1평남짓한 감옥으로 들어가면서 던진 말.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입니다. 고전문학이 먼지를 뒤집어쓴 고리타분한 것이라는 인식을 벗어나 현재에 많은 깨우침을 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필요합니다. 춘향전이나 홍길동전 등과 같은 빼어난 고전문학은 새로운 해석과 창조를 통해 지식이 아니라 「지혜」를 줍니다.』연구자로서의 부족함을 자성하면서 스스로 감옥에 들어간 설교수가다음에 어떤 고전문학의 인물을 먼지 덮인 서가에서 빼어내 생생히혈기도는 인물로 되살려낼지 궁금해지게 만드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