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정부가 취임전부터 공을 들여온 재벌그룹간 빅딜의 성사 가능성이 높아진 듯하다. 재벌그룹들이 정부의 강권(jawboning)에 못이겨 내키지 않는 합의를 하게 되는 것인지 또는 각 그룹의 이해타산이 맞아 떨어져서 내심 반기고 있는 지는 알수 없다.빅딜과 같은 대형 거래가 시장에서 당사자들간의 자발적 협상과 합의에 의해 이뤄진다면 이는 당사자들에게만이 아니라 경제 전체에도 실보다는 득이 더 많을 가능성이 높다. 지금 빅딜로 지칭되고있는 기업간 사업교환에서는 자신보다 상대방에게 더 큰 전략적 가치를 지닌 사업을 양도하고 자신에게 더 큰 가치를 지닌 사업을 양수하는 두개의 사업양수도 거래가 동시에 일어난다. 예컨대 지난92년 미국의 듀퐁은 영국의 임페리얼 화학회사와 합성섬유 산업분야에서 서로 다른 성숙사업을 주고 받음으로써 세계시장에서 각자의 위치를 강화했다.기업간 거래는 쌍방의 자발적 협상과 합의에 의해 성사시키는 것이중요하다. 작은 규모의 M&A거래일지라도 성공을 기약하기 위해서는철저한 전략적 분석에 따라 인수대상을 선정하고 사후통합과 관리를 위한 치밀한 계획을 사전에 마련해두지 않으면 안된다. 이런 과정을 거쳐 성사된 M&A거래중에서도 실패로 귀착된 사례는 너무도많다. 빅딜이라 할만한 대형거래일수록 실패 가능성은 더 높기 때문에 당사자들의 체계적 분석과 사후관리 계획에 입각해서 실행돼야 할 필요성은 더욱 커진다.최근 회자되는 빅딜의 내용은 현대가 삼성자동차를 인수하고 삼성이 LG반도체를 인수하며 LG는 현대석유화학을 인수하는 것이다. 관련된 업종이 모두 우리나라 산업경제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현재로선 모두 공급과잉을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이들 거래는산업합리화 차원에서도 바람직해 보인다. 또 재벌들의 쟁력 강화와수익성 회복도 기대할 수 있을 듯하다. 뿐만 아니라 더 많은 재벌그룹간의 빅딜 또는 인수합병 거래에 물꼬가 트이고 구조조정에 가속도가 붙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우리 기업과 경제에 대한 국내외의 신인도도 크게 향상될 것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방향제시와 여건개선 수준을 넘어 특정거래를 강요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기업 입장에서는 빅딜 뿐 아니라 해외매각, 전략적 제휴, 기업분할, 다운사이징 등 많은 전략적대안들이 존재한다. 강요된 빅딜로 인해 예컨대 LG반도체가 외자도입의 기회를 상실하게 되고, 현대자동차가 자신의 경쟁력제고에 전혀 도움이 안된다고 믿는 삼성자동차를 인수하게 되며, 삼성자동차가 포드와의 제휴를 통해 기아자동차를 인수할 기회를 박탈당하게되는 것은 아닌지 모를 일이다. 양도대상 사업들 가운데 어떤 것은당장 해외매각이나 청산을 통해서 퇴출시키는 것이 국민경제에 더도움이 될 수도 있을 법하다. 설사 이런 예들이 사실이 아니라 할지라도 당해기업들은 정부의 요구에 마지 못해 응하는 척하면서 금융지원이나 시장개방 연기 등의 특혜를 요구하고 독과점 이윤을 추구할 수도 있다.정부는 한걸음 물러나서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 그래서 재벌그룹들이 스스로 빅딜이나 사업양도 등 구조조정을 기피하려 한다면 그이유가 무엇인지를 파악하고 시스템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구태의연한 「기업 제국건설」 동기 때문이라면 한계기업을 퇴출시키도록하는 압력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계열기업간 자금지원이나 금융기관들의 끌려 들어가기식 대출을 중단시켜야 하며 좀더 엄격한 공정거래법 적용, 외부주주들의 경영감시 강화, 금융기관 경영진의 책임 강화 방안을 즉각 실천에 옮겨야 한다. 반대로기업들의 구조조정 추진 의지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신속하게 진행되지 못한다면 장애가 되는 제도의 개편에 박차를 가하고 결과는인내심을 갖고 지켜봐야 한다.지금과 같은 위기 상황에서 정부는 과감히 나서야 하되 시장메커니즘의 복원에 나설 일이다. 시장 메커니즘이 작동되지 않고 있다는것은 자가당착적 구실에 지나지 않는다. 설사 강요된 빅딜이 한번은 성공적인 결과를 가져온다 해도 그것은 시장경제의 성숙을 저해하고 또다른 부작용을 잉태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시장경제의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