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이 늘 발산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자주 억압됐다. 기독교는더욱 그랬다. 동양의 성전(性典)들 예를 들어 소녀경이나 소녀경의 원판으로 알려져 있는 황제내경 등도 알고보면 모두 성을 억압으로서 다루고 있다.사정을 하지 않고 호흡을 조절하면 기가 단전에 모여들고 척추를따라 올라가 어디서 한번 모였다가 다시 치솟아 정수리까지 뻗쳐어쩌구 저쩌구 된다는 식의 주장을 접할 때마다 필자는 고소를 금치 못한다. 성을 즐기는 것이라기 보다는 차라리 어떻게 하면 덜혐오스럽게 성을 억제하느냐에 온갖 종류의 상상력을 동원하고 있으니 차라리 불쌍하다는 생각도 든다. 정실부인과는 한달에 몇회를하고 나이 몇살의 첩과는 한달에 몇회를 하며 누구에게는 사정을해도 좋고 누구와의 섹스에서는 사정을 하면 안된다는 식의 귀신씨나락 까먹는 이야기들을 황당하다고 해야할지 아니면 차라리 코미디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성교 자세에 대해서도 무슨 황새가 내려앉는 자세니 수탉이 모이를쪼는 자세니 어미 호랑이가 새끼를 데리고 노는 형이니 기러기 날개를 펼친 형이니 하는 가당찮은 말들을 만들어 내는데는 가히 입심 하나는 기가 막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아마도 양기가 입으로만오른 노인들의 심심파적일테다.기독교는 이런 분야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엄한 계율들을 갖고있다. 규제를 즐기고 무엇이든 규율로 치환하는 버릇이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 초기 기독교 전체가 이런 류의 사고에 빠져 있었다.물론 성행위 자체를 부정하다 보니 허용되는 예외를 많이 만들게되고 수도 없는 예외 속에서 엄격한 정신을 지키려다 보니 이번에는 다시 규율 항목들이 수도 없이 불어났다. 그것은 황제내경에서도 그렇고 첩에 대한 기본 인권을 규정한 동양의 남편 덕목에서 나타나는 복잡한 규율들과도 비슷하다.예를 들어 부부도 음란한 성교자세는 안된다. 항상 남성 상위의 정상자세로만 할 것이며 또 성교가 결혼의 필수적인 요소가 아니다.참지못해 다른 죄악을 저지를 정도로 괴로울 때만 부부간에 성교가허용된다고 당시 사람들은 생각했다. 그래서 성교를 할수 없는 날도 많았다. 예수가 체포된 목요일, 성 금요일, 성녀마리아를 위한토요일, 부활일인 일요일, 또 모든 죽은 자를 위해 기도하는 날인월요일에도 성교는 허락되지 않았다. 이제 비어있는 날은 화요일과수요일 뿐인데 그것마저 단식을 하거나 교회력에 따른 축제기간에는 사전 사후에 걸쳐 일정 기간은 성교를 해서는 안된다.이래저래 빼고 나면 성교를 할수 있는 날이 사실은 거의 없다. 물론 이런 규범들이 그대로 지켜졌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초기성직자들도 모두 아내와 남편을 갖고 있었는데 아마 이들부터가 교리를 지키기 위해 육욕을 이렇듯 무참히 희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교황이 독신을 요구하자 많은 교회와 성직자들이 저항했다는기록들이 있는 것을 보면 역시 규율과 그것을 지키는 것은 엄연히다른 일인 모양이다. 괜스레 지키지 못할 규율을 많이 만들어 놓고이번에는 규율을 깨면서 죄의식을 갖게 되는 악순환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