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환방정식(MV=PT)으로 유명한 어빙 피셔(Irving Fisher,1867~1947)는 20세기초 미국의 대표적인 신고전파 경제학자중 한사람이다. 교환방정식이란 통화유통속도(V)와 물자거래량(T)이일정하다면 물가(P)는 통화량(M)에 따라 결정된다는 이론모형.피셔교수는 예일대 재직시 학자로서 뿐 아니라 기업자문 활동은 물론 경제예측가로서 명성을 얻고 있었다.그런 그가 세계대공황의 시발점인 1929년10월 미국의 주가대폭락사태 직전, 주식투자자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에서 『주가는 앞으로도더욱 높은 수준에 도달할 것』이라는 낙관론을 피력한 것은 큰 실수였다. 강연후 불과 2주일이 지나지않은 10월28일 미국증시 주가는 하루에 12.8%가 떨어지는 폭락세를 보였고 다음날인 29일에도11.7%가 하락했다. 한치앞을 내다보지 못한 결과로 그의 명성이곤두박질친 것은 물론이고 지금까지도 20세기 최악의 예측으로 기록되고 있다. 그 자신도 1천만달러에 가까운 거액의 주식투자손실을 입었다고 한다.어쨌든 그렇게 시작된 미국의 1929년10월의 주가대폭락 사태는 경제 각 부문으로 급속도로 파급되면서 전반적인 물가폭락, 생산위축, 재고급증으로 나타나 경제활동이 사실상 마비상태에 이르렀다.기업도산이 늘고 실업도 급증했다. 이같은 불황은 미국에 국한된것이 아니라 세계로 파급돼 유럽과 남미등지에서는 농산물 가격폭락 사태가 일어났고 유럽에서는 오스트리아의 은행도산을 시발로유럽전역의 금융공황으로 발전됐다.세계대공황 기간은 보통 1929년 가을부터 1933년말까지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그 여파는 1930년대말까지 지속된 것으로 보고 있다. 당시의 불황심도가 얼마나 심각했는가는 몇가지 통계만 보아도쉽게 알수 있다.1933년 미국의 실업자수는 전체근로자의 30%에 해당하는 1천5백만명을 넘어섰고, 공업생산도 공황이전에 비해 44%나 감소해 1908년수준까지 후퇴했다. 국민총생산(GNP)은 1929년 1천38억달러였던것이 30년에 9백8억달러, 31년 7백59억달러, 32년 5백83억달러,33년 5백57억달러로 거의 절반수준까지 떨어졌다. 세계무역도 극도로 위축돼 1933년1월의 세계교역규모는 29년1월의 3분의 1수준으로줄었다.물론 세계경제는 30연대 이전에도 여러차례의 경기침체를 겪었지만파급범위와 지속기간에 있어서 그 어느때보다 두드러졌다는 점에서대공황으로 규정하게 됐다.이같은 대공황은 세계 경제학에도 변화를 가져와 자본주의의 자동조절기능을 믿었던 고전파이론이 퇴조한 반면 유효수요창출을 위해정부개입을 주장하는 케인즈의 적극적 재정정책이 각광을 받는 계기를 마련했다.최근들어 아시아 경제가 위기에 직면해 있는데다 일본 엔화가치의불안정을 계기로 세계적 공황발생 우려가 대두되고 있다. 우선 일본을 포함한 아시아의 금융위기가 지속되면서 세계금융시장의 불안도 증폭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고, 수년째 호황이 지속되고 있는 미국경제도 거품이 많은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다시말해 1930년대와 같이 미국의 주가거품이 꺼지면서 세계경제가장기침체에 빠지는 상황이 재연될 우려도 없지않다는 걱정들이다.더구나 개도국들의 과잉투자로 인해 자동차 철강 석유화학 전자등세계의 주요산업들은 과잉설비상태를 보이고 있어 30년대와 같은주요상품의 가격하락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세계원유가격이 계속 약세를 보이고 있는 것도 디플레, 즉 세계적인 경기침체와 무관치 않을 것같다는 걱정까지 해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