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위기 설명은 가능...현상황 지켜보는 역할에 만족

투자은행들은 산뜻한 안내책자와 그럴듯한 문구들을 내세워 고객들에게 새로 개발한 투자기법들을 선전한다. 이른바 통화위기를 미리 알 수 있다는 모델들이다. 크레딧퍼스트보스턴은행(CSFB)은「개도국시장 위험지수」라는 모델을 개발했다. 또 「이벤트 위험지수」, 「통화급등 가능성」 등 JP모건과 리만브러더즈가 각각 개발한 모델들도 있다. 주로 신흥 개도국들에 적용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런 모델은 투자자들에게 언제, 어떻게 대상 국가의 통화가 붕괴될지를 알려 줄 목적으로 고안됐다. 경제학자들도 이 분야에서비슷한 시도를 하고 있다. 지난 수년간 위기를 일으키는 원인과 그원인을 예측할 수 있는 지표와 지수를 찾기 위한 내용을 담은 많은경제학 보고서들이 나왔다.투자자와 정책담당자들도 앞으로 닥칠 문제를 예견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을 찾고 있다. 진동폭이 큰 시장에서 위기를 정확하게 예측한다면 큰 재미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정부 당국도 장차 닥칠 재앙을 피해갈 수 있다면 골칫거리를 많이 덜게 될 수 있다. 하지만경제위기는 아직도 예측하기 어렵다. 1년전만해도 아시아 위기가이렇게까지 심각해지리라고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경제위기를 초래한 원인이 여러 가지로 얽혀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예측모델을 고안한 사람들은 복잡한 가운데서도 정확한 예측방법을 찾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그렇지만 이는 그들의 주장일 뿐이다. JP모건은 지난 10여년간 자신들이 개발한 지수가 90% 정도의 적중률로 일이 벌어지기 한달전에 투자자들에게 경고를 보냈다고 선전한다. 92년∼97년 사이에 이지수를 이용해 25개국에서 투자가이드로 활용한 한 투자자는 그렇지 않은 투자자들에 비해 연간 평균 2.24% 더 많은 돈을 벌었을것이라고 주장한다. 감에만 의존해 돈을 굴리는 투자자들보다는 물론 더 만은 이윤을 남겼다는 설명도 한다.대부분의 이런 모델은 비슷한 방법으로 만들어진다. 우선 모델창안자들은 통화의 실질가치가 10% 이상 급락하는 것을 통화위기라고정의하고 지난 10년간 이런 일이 벌어진 국가들을 연구샘플로 삼는다. 경제학적 이론이나 경험칙을 바탕으로 위기를 초래한 요인과관련있는 많은 이론적·실물적 변수들이 추출된다. 여기에는 대상국가의 과대평가된 환율, 경기침체, 부채증가 등이 포함된다. 그리고 나서 각 변수들을 여러 나라에 적용해 추이를 관측한다. 통계학자들은 복잡한 계량경제학을 이용해 이 지수들과 과거의 경기폭락사이의 관계를 면밀히 조사해 변수들이 어떤 형태로 폭락과 연결돼있는지를 알아 본다.물론 이것은 복잡한 것이다. 그러나 진짜 의문은 이것이 지금 투자자들이 사용하는 것보다 나은가 하는 것이다. 이 모델들은 지나간위기에 대해서는 과정과 결과를 잘 설명하고 있다. 이미 일어났던통계수치들을 이용했고 벌어진 현상에 대해 한발짝 떨어져 볼 수있었기 때문이다. 모델창안자들은 자신의 모델들이 앞으로의 위기를 예견하는 데도 적합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것이 미래의 혼란을 예측하는 데도 잘 들어맞을지는 의문이다.결과는 그렇지 않을 것같다. IMF의 앤드류 버그와 캐서링 패틸로가 이 모델들에 대한 첫번째 연구결과를 내놨다. 두 경제학자는 아시아 위기가 터지기 전에 만들어진 세가지 모델을 비교하고 과연그것들이 위기를 적절히 예측했는지를 조사했다. 답은 노(No)였다.하버드대학의 제프리 삭스가 고안한 모델과 미 경제자문위의 제프리 프랭클이 연구한 또다른 모델은 아시아 위기를 예측하는 데는별로 쓸모가 없었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미 연방준비이사회의그래셜라 카민스키 등이 만든 두번째 모델도 단순히 감에 의존하는것보다는 나은 것이었지만 별로 신통치 못하기는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세번째 모델은 통화붕괴로까지는 떨어지지 않은 브라질과 필리핀의 경우에는 통화붕괴 가능성에 대해 아주 강한 경고를 계속보냈지만 실제로 통화붕괴가 일어난 태국과 한국에 대해서는 그렇지 못했다.모델들이 모두 아시아 경제붕괴가 터진 이후 개발됐기 때문에 실제적 유용성을 엄밀히 판단하기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이론적으로는모델들의 샘플 선택방법, 연구기간, 사용된 통계학적 방법 등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 옆의 도표는 세 모델이 96년∼97년 사이 태국위기의 조짐을 어떻게 측정했었는가를 보여준다. 샘플이 너무 작으면 편향될 우려가 있고, 너무 크면 위기가 각각 다르게 진행된 국가들이 한꺼번에 포함돼 별로 정확하지 않을 염려가 있다.리만브러더즈처럼 단기간만을 분석한다면 적용할 지수가 너무 적어써먹을 수 없다. JP 모건처럼 긴 시간을 분석대상으로 한다면 아주넓은 범위에서 서로 다른 환경에서 일어났던 위기들이 단일 지수로포함되는 위험이 있다. 또 모든 모델이 경고신호와 실제위기와의관계가 항상 일정하다는 가정을 하기 때문에 생기는 부정확성의 위험도 있다.또다른 성격의 위험도 있다. 분석가들은 변수가 붕괴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을까를 알아보려는 노력없이 단순히 변수 자체만을 바라보는 경우가 많다. 한부분의 변수가 제대로 적용되지 않으면 전체모델이 현실과는 동떨어진 것이 된다. 이와 반대되는 위험은 「모델편향」이다. 모델이 어느 특정한 한 붕괴사건에만 집착한다는 얘기다. JP모건 모델은 경제학적으로 정립된 이론보다는 동일지역에서 지난 6개월간 벌어진 붕괴횟수, 리스크에 대한 투자자의 욕구정도 등의 변수가 가장 큰 고려대상이다. 이런 모델은 아시아에서는잘 들어맞을 수 있다. 따라서 이론적으로 따져본다면 어느 투자자가 97년에 JP모건의 지수를 이용해 얻을 수 있었던 이득은 아주큰 것이다. 하지만 94년∼96년 사이에는 은행의 충고를 따르는 것보다 돈을 그대로 묻어둔 사람이 더 많은 돈을 벌었을 것이다.데이터나 변수가 계속 움직이기 때문에 생기는 위험도 있다. 리만브러더즈 모델은 과거의 데이터 사용을 가급적 피하려 하지만 최근의 금융시장 데이터의 영향에서는 벗어나지 못한다. 다른 모델들도시장변화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자본의 흐름 등을 지표로 포함하고 있다. CSFB 모델이 그 사례다. 이 모델의 러시아 위기가능성지수는 올 3월부터 5월 사이에 급상승해 어려움이 있는 가운데서정확한 예측을 과시한 경우도 있었다.결국 이미 일어났던 위기에 적용해 봐도 틀리지 않고, 닥쳐올 위기의 조짐도 정확히 집어낼 수 있는 모델을 만드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이때문에 많은 전문가들은 모든 조기경고 지수에 대해회의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지금까지 나온 모델들은 실제에 적용하기에는 허점이 많다. 모델들은 단지 상황을 주의깊게 지켜보도록 하는 역할 이상은 하지 못한다. 메릴랜드 대학의 라인하트가 고백한 것처럼 『이런 것들이 위기의 정확한 시기를 예측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순진한 일』일 것이다. 이 모델들은 투자자와 무역업자들이 국가분석과 시장판단을하기 위한 대체물이 될 수는 없다. 모델개발과 관련된 어느 경제전문가도 『그것들은 환상적인 방법이긴 하지만 나는 그것을 이용해거래를 하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고백하고 있다.「The perils of prediction」 Aug. 1, 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