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비오스·맥스터사 등 기업가치 높인 후 되팔아 경영위기 타개

현대전자의 외자유치는 해외법인을 인수한 뒤 경영을 정상화시키거나 내재가치를 올려 이를 좋은 값에 되팔아 이뤄졌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사실 국내 대기업들은 IMF사태가 터지기전 너나할 것없이 해외투자에 나섰다. 세계화, 글로벌화가 명분이었다. 현대전자도 이 대열에 가세했다.그러나 현대전자와는 달리 이들 대기업의 해외투자는 좋은 결과를얻지 못해 IMF사태가 터지면서 지금 모기업에 엄청난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에반해 현대전자의 해외투자는 지금 경영위기 타개의 「일등공신」이 돼있다. 해외투자법인 경영을 성공적으로 이끈뒤 이를 국내 경영위기 타개에 시의적절히 활용했다. 「밖에서 벌어(해외법인 매각) 안을 살찌우고(재무구조개선)」 있는 셈이다.95년 미국 AT&T-GIS사의 비메모리 사업부문을 인수, 설립한 심비오스사 매각이 대표적인 사례다. 현대전자는 3억4천만달러에 이사업부문을 인수한 뒤 기업내재가치를 상승시켜 지난 6월말 7억6천만달러를 받고 LSI 로직사에 팔았다.심비오스 매각을 통해 현대전자는 4배이상의 수익(배당수익금 및환율변동분 포함)을 남겼지만 매각과정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현대전자가 심비오스처분을 통해 외자유치에 나선 것은 지난해 12월.당시 방침은 매각이 아니라 나스닥에 상장을 해 신규자금을 유입한다는 것이었다. 어렵게 비메모리분야에 진출한데다 잘 나가는 회사를 굳이 팔 이유가 없어서였다.방침이 결정되자 현대전자는 미국현지법인(HEA) 박종섭 법인장을팀장으로 공개준비에 들어갔다. 본사에서는 일절 관여치 않고 박법인장에게 전권을 주고 진두지휘토록 했다. 박법인장과 미국현지법인 직원들은 크리스마스휴가를 반납하고 공개에 따른 서류준비에박차를 가했다.미국증권거래소에 제출할 서류초안이 완성된 12월중순 전혀 예기치않은 상황이 발생했다. 주간사은행에서 심비오스 경영상태와 무관한 IMF사태에 따른 한국경제의 전망, 모기업의 장래 등에 대한 답변을 요구하며 공개에 난색을 표시했다. 갈피를 못잡는 정부정책이공개에 악영향을 미친 것이다.이 문제는 박법인장이 답변할 성질이 못돼 올 1월 귀국, 고위경영진의 최종재가를 요청했다. 고위경영진회의에서는 상당한 논란 끝에 당초 방침에서 선회, 매각쪽으로 결정이 났다. 공개를 한다고 해도 일부 자금밖에 쓸수없고 6개월동안 주식 또한 매각을 할수 없어유동성확보에 도움이 안돼 매각키로 결정했다.박법인장은 고위경영진의 결정이 내려지자 곧바로 미국으로 다시날아가 준비에 들어갔다. 미국 뉴욕에 소재한 M&A전문회사인 레만 브러더스사와 계약을 체결하고 인수회사 선정작업에 들어갔다.매각작업은 순탄하게 진행됐다. 매각과 관련된 서류는 공개준비를하면서 만들어 놓았던 서류를 약간 각색만 하면 됐다. 심비오스사에 눈독을 들이고 있는 회사 또한 많아 오히려 어느 회사에 파는것이 좋은지 저울질할 정도였다. 박법인장은 레만 브러더스사와 협의를 거듭한 끝에 비메모리부문과 반도체부문 모두를 인수하겠다고나선 어댑텍사에 심비오스사를 매각했다.계약서에 최종사인까지 마쳤으나 엉뚱한 곳에서 다시 문제가 발생했다. 이때가 6월중순. 우리나라 공정거래위원회에 해당하는 미국FTC가 어댑텍의 심비오스사 인수에 따른 독과점을 문제삼아 제동을 걸고 나선 것이다. HEA 자문변호사를 통해 매각승인 여부를FTC에 사전확인해본 결과 승인이 날 것 같지 않았다.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FTC가 최종결정을 내리기 바로 전날밤 어댑텍관계자가 먼저 계약파기를 요청해왔다. 박법인장으로서는 싫을 이유가 하나도 없었다. 계약파기사유는 현대전자에 있지않았고 설사 계약을 파기한다고 해도 점찍어 놓았던 회사가 있었기때문이었다.◆ 협상중 비밀지키기가 최대 관건박법인장은 어댑텍사와 계약을 파기한 뒤 곧바로 점찍어 놓았던 회사에 연락을 취했다. 이 회사는 다름아닌 LSI 로직사였다. LSI로직사는 이미 1차 매각협상 당시 어댑텍사와 경합을 벌였으나 반도체부문만을 인수하길 희망, 최종결정과정에서 탈락했다. 이후에도 이회사는 심비오스사에 대한 짝사랑은 변함이 없었다.LSI 로직사와의 연락은 쉽게 이뤄졌다. 박법인장이 어댑텍사와 계약을 파기한 날 LSI 로직사 최고경영진의 연락처를 사전에 파악해놓았기 때문이다. 박법인장은 영국 출장중이던 이 회사 윌프레드코리건회장에게 전화를 걸어 인수의사를 타진했다. 물론 OK였다.이미 적절한 매각금액과 회사경영상태는 서로간에 잘 알고 있어 매각은 전격적으로 3일만에 이뤄졌다. HEA 박법인장은 『외자유치성공여부는 협상과정에서 어떻게 비밀을 유지하느냐가 최대 관건』이라며 최근 이같은 룰이 지켜지지 않아 다른 국내기업들의 외자유치협상이 중도에 깨진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심비오스사 매각으로 힘을 얻은 박법인장은 컴퓨터보조기억 저장장치인 하드디스크드라이브 제조·판매사인 맥스터사를 미국 나스닥에 지난달 31일 상장, 신주발행을 통해 3억3천만달러의 외자를 유치했다. 맥스터사의 나스닥 상장은 현대전자가 적자기업을 인수, 경영을 흑자로 돌린 뒤 상장을 해 뉴욕 월스트리트 관계자들을 놀라게 했다. 이외에도 현대전자는 글로벌스타지분(8천2백만달러)을 매각하는 등 지금까지 모두 12억6천2백만달러를 유치했다. 단일기업외자유치로는 국내 최대규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