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7일 뉴욕 증시에서는 극단적인 희비의 쌍곡선이 교차했다.주식시장이 붕괴 일보 직전의 폭락세를 보인 반면 채권시장은 사상최고의 거래량을 기록한 것이다. 이날 다우존스 지수의 낙폭은 3백50포인트로 사상 세 번째의 큰 폭이었다. 반대로 채권시장의 간판종목인 미 재무부 채권은 만기 구조를 불문하고 일제히 최고치를갱신했다. 30년 만기물의 유통 수익률은 연 5.33%로 지난 77년 거래가 시작된 이래 최저치(채권값으로는 최고치)를 기록했다. 10년물은 연 5.06%로 67년 이래 가장 낮은 수익률을 나타냈다.미 채권의 「독주」는 다른 나라들의 국채 폭락과도 극도로 대비됐다. 한국 정부가 지난 3월 발행한 달러 표시 외국환평형기금채권(외평채)은 5년물의 수익률이 14.8%를 넘을 정도로 폭락했다. 발행당시에 비해 수익률이 6% 포인트 이상 상승(채권값 하락)한 것이다.미국 증시, 그 중에서도 채권만의 독야청청과 다른 나라 증시의 붕괴는 정확하게 서로 맞물려 있다. 아시아발(發) 경제 위기가 중남미와 러시아를 거쳐 유럽까지 강타하면서 각국의 뭉칫돈들이 미국 채권시장으로 다투어 몰려들고 있기 때문이다. 뭉칫돈은 채권이나 주식의 형태로 잠겨 있게 마련이다. 따라서 뭉칫돈이 대거 빠져나가는 나라의 채권 및 주식시장이 대폭락이라는 타격을 입게 되는 것은 불가피한 현상이다.세계의 뭉칫돈이 미국 채권으로 몰려드는 것은 그만큼 미 채권에대한 신뢰가 높기 때문이다. 「설마」하던 일본 경제마저 여지없이무릎을 꿇고 있는 상황에서 「믿을 곳」이 그 밖에는 더 이상 없다는 투자 심리까지 가세하고 있다.국제 경제가 불안해지면 불안해질수록 기축통화인 달러 표시 채권에 돈을 맡기려는 심리가 확산되는 것은 불가피하다.미 채권에 대한 수요는 결국 달러에 대한 수요로 나타난다. 올들어미국의 무역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는데도 달러값이 강세를보이고 있는 까닭 역시 「채권 독주」에 있는 것이다. 미 투자자문회사인 프린스턴 이코노믹 인터내셔널사의 마틴 암스트롱 회장은현재 달러당 1백40엔대를 형성하고 있는 달러 환율이 내년 이맘때쯤은 2백엔을 넘어서 있을 것으로까지 전망하고 있다. 독일 마르크화에 대한 환율 역시 현재의 달러당 1.8마르크선에서 1년 뒤에는2.85달러로 폭등해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이처럼 전문가들이 당분간 달러의 초강세가 지속될 것으로 내다보는 이유는 역시 미 채권이 「대체재(代替材) 없는 투자 수단」으로서의 독주를 계속할 것이란 판단 때문이다. 특히 일본이 연금기금의 해외 투자를 허용키로 한 내년 1월1일 이후에는 더욱 엄청난 자금이 미 채권시장에 몰려 들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여기에다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러시아의 채무 상환 불능 사태 역시 미 채권의 독주를 더욱 부추기는 재료로 작용할 전망이다. 일본이 몰락한 상황에서 그나마 미국에 필적할 수 있는 존재인 유럽 국가들이 러시아 사태로 가장 큰 타격을 입고 있어서다.내년부터 유럽 단일 통화로 출범할 유러화 체제도 당분간은 미 채권 시세를 한층 더 떠받치게 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유러화가보편적인 통화로 자리를 잡기까지는 일정한 기간이 소요될 수밖에없고, 그 때까지는 상대적으로 안정세가 더욱 돋보일 달러 표시 채권이 헤지 수단으로 인기를 끌 것이기 때문이다.세계 자본의 「블랙 홀」로 주목을 받고 있는 미국 채권시장이 도처에서 긁어 모으고 있는 뭉칫돈을 어떻게 소화할 것이냐가 또 다른 관심사다. 다행스럽게도 미국 경제계와 정부에서는 이 돈을 국내 수요 진작에 돌려 써야 한다는 여론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미국을 제외한 대부분 나라들이 공황에 가까운 경기 침체에 빠진 상황에서 「세계 동시 공황」의 악몽을 재현하지 않으려면, 미국이세계 상품의 소비처로서 보다 큰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는 것이다.「최악」으로 불리는 경제 위기 속에서 수출로 탈출구를 찾을 수밖에 없는 한국에는 그나마 위안을 주는 얘기임에 틀림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