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자동차 산업이 물량 측면에서 높은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는 점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비록 역사는 짧지만 각 산업분야에서의 고도성장에 힘입어 생산대수에서는 자동차 강국으로서의 입지를 굳혀가고 있다.하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사정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겉으로는 세계 자동차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수준에 다다른 것 같지만 내용은 그렇지 않다. 이는 다름이 아니라 생산성이 자동차 선진국에 비해 상당히 낮기 때문에 외화내빈의 모습을 하고 있다는사실이다. 잠깐 그 실상을 살펴본다.국내 자동차산업의 경쟁력이 취약하다는 점을 거론할 때 가장 많이등장하는 것은 낮은 노동생산성이다. 세계적인 컨설팅 기관인 맥킨지의 자동차산업 관련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95년 기준으로 미국업체들의 노동생산성을 1백으로 했을 때 한국업체들은 고작 48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국내 자동차업체들이 경쟁국의 하나로꼽고 있는 일본업체들은 1백44로 한국의 3배나 됐다. 결국 똑같은일을 하더라도 한국에서는 3명의 근로자가 필요한데 비해 미국은 2명, 일본은 1명이면 충분하다는 계산이 나온다.노동생산성과 함께 생산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자본생산성도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미국을 1백으로 치면 한국은 48, 일본은99를 기록하고 있다. 세계 자동차 시장을 주무르는 미국이나 일본과 비교해 절반 수준에 머무르고 있는 것이다.◆ 불랑률·재작업률 높아 품질저하 초래그러나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자동차업체들의 낮은 생산성은 부품업체들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형」의 경쟁력이 처지다보니 「아우」의 경쟁력 역시 내세울 것이 없는 형편이다. 역시 맥킨지가 분석한 자료에 의하면 95년 기준으로 국내 부품업체들의 생산성은 미국 업체들을 1백으로 했을 때 자본생산성이 66, 노동생산성이 47 수준이었다. 이에 비해 우리의 이웃인 일본 업체들은 자본생산성이 116, 노동생산성이 164로 국내 업체들을 크게 앞서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불량률과 재작업률이 높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보통 불량률은용접 도장 조립부문에서 나타나는데 국내 업체들의 경우 미국이나일본의 업체들에 비해 2배 가까운 불량률을 나타내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IMVP(미국 MIT대 교수 중심의 자동차 연구모임)가 내놓은 자료에 의하면 94년 일본업체들의 평균불량률은 1백대당 용접6.6건, 도장 12.7건, 조립 25.7건 등 총 44.4건이었다. 또 미국업체들은 용접 11.5건, 도장 13.2건, 조립 36.3건 등 모두 61건이었다. 반면국내업체들은 이를 훨씬 넘어 1백대당 불량건수가 용접 16.3건, 도장 21.1건, 조립 63.8건 등 총 101.2건이나 발생한 것으로 집계됐다.특히 높은 불량률과 재작업률은 자재비용의 상승, 작업시간의 증가를 초래하고 궁극적으로는 품질의 저하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에서문제의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렇듯 생산성에 차이가나는 구체적인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자동차업계 관계자들은 먼저 업체들의 전체적인 업무시스템이 효율적이지 못하다는 사실에서 그 이유를 찾는다. 미국이나 일본의 업체들에 비해 기능 및 업무조직의 효율성이 뒤떨어진다는 설명이다.일각에서는 생산성 저하의 근본적인 원인으로 조립과정에서 LeanProduction(기업의 다양한 산업활동에 들어가는 모든 요소투입의최소화를 강조하는 생산철학) 방식을 제대로 실행하지 못하는데 있다는 주장을 펴기도 한다. 이 방식은 일본에서 시작된 것으로 현재세계적인 자동차업체들의 대부분이 채택하고 있는 반면 국내에서는아직 도입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제품설계 면에서 뒤처져국내업체들이 제조 및 조립을 고려한 설계(DFMA) 면에서 처진다는 점도 주목할만하다. 제조를 쉽게 하는 제품설계야말로 생산성차이를 설명하는 또 다른 주요 변수로 꼽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내 업체들은 이 분야에서 낙후돼 있다는 평을 받는다. 이에 비해GM이나 도요타 등 세계 톱클라스의 업체들은 복잡성을 줄여 생산성을 떨어뜨리지 않으면서도 모델의 고유특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설계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경영활동 측면에서 생산성 차이를 설명하는 사람들도 적잖다. 대표적인 것이 제품이 너무 다양하다는 점이다. 모든 차종의 차를 크기별로 전부 생산하다보니 경쟁력을 높이는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90년대 들어 플랫폼(차대) 다변화를 통해 모델 수를 급격히 늘린 까닭에 단일 플랫폼으로 모델의 다양화를 꾀하여 투자효율을 높이기보다는 플랫폼 수만 늘어났다는 지적이 많다. 또한 국내업체들끼리 지나치게 경쟁하다보니 상대방의 모델을 따라가는데 급급해 제품차별화에 실패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외부요인도 간과할 수 없다. 그 가운데 하나가 국내 자동차업체들의 경우 후발주자라는 사실이다. 자동차산업은 특성상 하루 아침에선진국의 기술수준을 따라가기가 힘들다. 시간적인 여유를 갖고 서서히 쫓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또 정부가 초기부터 규제 위주의정책을 폈던 점도 생산성 저하를 불러온 이유의 하나로 꼽힌다. 다행히 최근 들어 정부가 규제를 완화하는 방향으로 자동차 정책을추진하고 있어 경쟁력을 높이는데 다소나마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보인다.뒤떨어진 생산성을 정상으로 끌어올리기란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다. 그 차이가 의외로 크고, 또 앞서 지적했듯이 당장 손을 쓸 수도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길은 있다는 사실이다. 김준규 대우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생산성이 뒤떨어지는 요인을 정확하게 파악한다음 이에 적절하게 대응한다면 얼마든지 따라갈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김위원은 『업체와 정부, 그리고 노조가 힘을 모아생산성 향상에 진력해야만 문제를 효율적으로 풀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내 업체 가동률40%대....내수 70만대 겨우 넘을 듯국내 자동차업체들이 내수부진에 깊은 한숨을 짓고 있다. 업계에따르면 현대 대우 기아 삼성 등 국내 주요 자동차업체들은 계속되는 경기부진으로 자동차판매가 예년에 비해 크게 떨어지면서 채산성이 급격히 악화되는 등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히 최근 폭발한 현대자동차와 만도기계의 파업사태는 가뜩이나 좁아진 자동차업체들의 입지를 더욱 궁색하게 만든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지난해 국내 자동차시장에서 팔려나간 자동차대수는 총 1백51만3천대였다. 하반기 이후 경기가 크게 나빠지면서 판매량이 많이 줄어사상 처음으로 마어너스 성장을 했다. 더욱이 연말에 터져나온IMF사태는 내수시장을 꽁꽁 묶어버렸다. 이에 따라 연간 공장가동률도 68%로 내려가 자동차업체들의 목을 죄었다.그러나 올해 들어서면서 사정은 더욱 악화됐다. 특히 시간이 흐를수록 상황을 예측하기 힘들 정도로 나빠지고 있어 업계 관계자들을애타게 만들고 있다. 업계는 올해 초까지만 해도 내수판매량을 지난해보다 40% 정도 줄어든 88만대 수준으로 잡았다. 하지만 4월들어서 이 수치를 82만대로 다시 한번 수정했다. 그러다가 최근에는 급기야 72만대 수준으로 다시 한번 낮춰 잡았다. 이대로 가면70만대 수준을 겨우 넘을 것으로 판단한 결과다.업계 전체의 상태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공장 가동률 또한 50%로 떨어질 것으로 예측된다. 한국자동차공업협회측의 한 관계자는『올해 평균 공장가동률은 40% 수준에 이를 것』이라며 아주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고 있다. 이는 최근 들어 극심한 내수부진에다 현대자동차 사태에서 보듯 파업이 격렬하게 이어지면서 공장가동률을크게 떨어뜨렸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하지만 더욱 큰 문제는 앞으로 상황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자동차업체들의 고민도 바로 여기에 있다. 현대자동차의 한 관계자는 『경기사정이 워낙 나빠 내수가 예전의 모습을되찾을 여지가 거의 없을 것』이라며 크게 걱정하는 모습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