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부터 시작된 국내은행들의 위기는 방만한 여신관리에서 비롯됐다. 여신심사나 신용평가를 제대로 하지도 않은채 마구잡이로 돈을퍼주다가 대량의 부실채권을 양산하고 말았다. 더욱이 정경유착이라는 우리 사회의 악성고리는 정상적인 여신의사결정 시스템을 완전히 무력화시켜 버렸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모든 은행이 비슷한 사정이었다. 이에따라 부실채권을 감당하지 못한 제일 서울은행이 먼저 무너졌다. 이어 대동 동남 동화 경기 충청등 5개 은행이퇴출됐다. 그리고 상당한 시일이 지났다.◆ 그동안 은행들은 얼마나 변했을까.표면적으로 보면 새로운 리스크관리시스템을 만들고 여신관리위원회를 합리적으로 운영하는데 역점을 두고 있다. 그러나 그 내부를보면 여신심사역들의 상대적인 약진이 돋보인다. 은행장이나 임원들이 암묵적으로 틀어쥐고 있던 의사결정권한이 심사업무에 전문성을 쌓은 차장급 중견간부들로 옮겨졌다는 것이 과거와 실질적으로달라진 모습이다.그 변화의 양상을 알아보기 위해 국민은행 본점을 찾아갔다. 이 은행의 여신심사역은 모두 12명. 지난 95년에 불과 2명에 불과했던점을 감안하면 놀라운 변화다. 여기에다 대리급 예비심사역 50여명이 뒤를 받치고 있다.◆ 여신자산 건전성 높이는게 주임무이 은행은 작년부터 종전 기업규모별 심사체계를 폐지하고 산업별전문심사체계를 도입하고 있다. 심사역들은 자신이 맡은 업종의 흐름과 개별기업들의 재무상황을 집중적으로 점검한다. 자신이 맡은분야에서 부실이 발생하지 않도록 온갖 채널을 동원해 자료를 모으고 분석한다. 이어 여신대상기업의 현금흐름을 파악하고 상환능력을 예측하는 업무는 핵심중의 핵심이다.송달호행장은 최근 임원회의에서 『여신시스템에도 구조조정이 필요하다. 이른바 「론 워크아웃」의 개념을 철저하게 도입하고 외부의 우수한 인력들을 적극적으로 영입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상대적으로 기업여신비중이 낮은 국민은행의 이같은 변화는 향후 도매금융기관인 장기신용은행과의 합병과 연관시켜볼 때 상당히 시의적절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김동필 여신심사부장은 『심사역들은 이제 은행 흥망의 열쇠를 쥐게 됐다. 각자 맡은 분야에서 최고가 되지 않으면 개인은 물론 은행도 생존을 장담할 수 없다』고 강조한다.이에따라 보다 체계적인 여신심사역 양성코스도 만들었다. 해마다예비심사역 50명을 선발, 6개월과정으로 금융연수원등에서 훈련을시키는가 하면 연간 20여명을 대상으로 해외유학을 지원해주기도한다. 이들 예비심사역의 인사파일은 따로 관리된다. 언제 어떤 자리에 가있더라도 즉시 투입이 가능토록하기 위해서다. 공기업과 은행자회사를 대상으로 심사업무를 맡고 있다는 김종익차장은 『심사역들의 공통된 특징은 철저한 전문성이다. 나이와 학벌도 불문한다.그러다보니 우리 은행에는 다양한 분야에서 밀도있는 경력을 쌓은심사역들이 많다』고 귀띔한다.이 은행은 그래도 모자란다 싶었던지, 연간 수천만원의 수수료를지불하고 전문 신용평가기관들과 제휴를 맺고 있다.오는 10월부터는 심사역들의 「하방」이 시작된다. 체계적으로 훈련을 받은 심사역들을 각 지점에 파견, 실제로 여신심사업무를 보면서 본부에서 익힌 여신심사업무를 전파하는 것이다. 안정적인 여신운용처를 확보하고 합리적인 사후관리를 통해 여신자산의 건전성을 높이는 것도 이들의 주요 임무다. 이를위해 수도권지역 5곳에「기업금융센터(BLC)」를 시범적으로 설치할 예정이다. 여신기획부의 김용신차장은 『기업금융센터는 여신취급에 있어서 독자적인결정권한을 갖고 있으며 중소기업을 직접 방문해 발로 뛰는 금융서비스를 제공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한다.금융 격변기를 맞아 그 비중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여신심사역들은 이제 은행원이라기 보다는 또 하나의 전문가그룹으로 부상하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