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8년 폴 사뮤엘슨이 <경제원론 designtimesp=8402>을 출간했을 당시, 책의 전반부는 거시경제학으로 장식되었고 미시경제학은 후반부에 밀려나 있었다. 정부가 적절한 재정정책과 금융정책을 채택함으로써 불황을 극복하고 호황을 지속시킬 수 있다는 케인즈류의 거시경제정책은 초심의 경제학도를 매혹시키기에 충분했다. 이에 비해 개인이나 기업등 개별 경제주체들의 행동양식을 다루는 미시경제학은 지루하기짝이 없는 분야였다. 이른바 거시경제학의 전성시대는 1970년대초까지 지속되었다.이에 반해 오늘날의 신간 경제학 교과서들은 거의 예외없이 미시경제학을 전반부에서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고, 후반부의 거시경제학에서는 전통적인 거시경제정책에 대해서는 가급적 함구하면서 고용성장 인플레 등과 같은 일반적인 거시경제 현상에 대한 설명으로일관하고 있다. 왜 이러한 위치전도가 발생한 것일까?사실 돌이켜보면 거시경제학의 패망은 미시경제학의 적극적 공세에의해 이루어졌다기 보다는 거시경제학자들간의 파벌싸움에 의해 초래되었다고 보면 맞다. 케인지안과 통화주의자간의 이념대결이 바로 그것이다. 제1파전은 1970년대초에 발생한 스태그플래이션을 두고 벌어졌다. 밀튼 프리드만을 위시한 통화주의자들은 실업률의 인하를 의도한 케인지안의 경기부양책이 인플레 기대심리를 만연시킴으로써 소기의 성과를 거두기는 커녕 고실업과 일플레라는 최악의상황을 연출했다고 혹평했다.제2파전은 1980년대 미국 레이권 정권하에서 이루어진 인플레없는고도성장을 놓고 벌어졌다. 적극적인 감세정책을 통해 작은 정부를추구했더니 이상향이 구현되었다고 떠들썩했다. 이는 정부에 대한시장의 승리를 의미했고 곧이어 시장만능주의를 표방하는 신자유주의의 물결을 전세계로 확산시켰다. 제3파전에서는 미국의 유력 경제평론가인 로버트 사뮤엘슨과 MIT의 폴 크루그만이 격돌했다. 사뮤엘슨은 90년대 미국의 약진을 찬양하면서 「신은 작은 것을 지지한다」라는 비유를 들어 미시경제학의 승리를 선언했다. 유럽은 반시장적인 실업수당정책으로 인해, 일본은 고질적인 연고주의로 인해 인센티브를 살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실업과 불황의 늪에 빠져 있다고 진단했다. 아무리 재정지출을 확대하고 초저금리 상황이지속되어도 일본의 경기가 살아나지 않는 것은 다름아닌 「큰 그림」의 거시경제학에 내재된 한계를 여실히 입증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이에 대해 자칭 케인지안인 크루그만은 거시경제학의 변호를 맡고나섰다. 『자동차가 잘 굴러가지 않는 것은 반드시 엔진이 마모되었거나 부품이 고장났기 때문만은 아니다. 가스가 제대로 공급되지않기 때문일 수도 있다.』크루그만은 다소 궁색하게 유럽과 일본의 불황을 총수요부족이라고진단했다.이상의 논쟁에 비추어볼 때 거시경제학은 위기임에 틀림없다. 크루그만 자신도 거시경제학이 지나치게 추상적인 미시적 가정에 입각했음을 문제로 지목했다. 합리적 행동가설에 빠져 일정수준 관성에의해 움직이고 있는 인간군상을 외면했다는 반성이다.그러나 외환금융위기가 동아시아에 이어 급기야 러시아를 강타하고중남미마저 혼돈속으로 몰아넣으면서 제4파전이 전개될 조짐이다.사태를 낙관해왔던 미국도 이제는 세계대공황의 가능성을 우려하기시작했다. 미국 일본 독일이 나서서 공동으로 금리를 인하함으로써지구적 차원에서 총수요를 부추겨야한다는 소위 케인즈류의 거시경제적 처방이 다시 관심을 끌고 있다.이는 지난 1년간 철저히 위기당사국 차원에서 미시경제적 처방에의해 문제를 해결해야한다고 외쳐왔던 미국과 IMF의 기존입장과크게 상충되는 것임에 틀림없다. 미국과 IMF는 줄곧 각국이 시장원리에 저촉되는 방향에서 산업조직과 금융시스템 및 노동시장을관리해왔기 때문에 위기를 맞은 것이라고 진단하지 않았던가? 과연미시경제학의 패권시대가 종언을 고하고 거시경제학이 복권될 수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