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부문에 대한 대대적인 구조조정은 기존의 금융시장판도를 완전히 바꿔놓고 있다. 상승과 퇴조, 흥하고 망함이 교차하면서 지도가다시 그려지고 있는 것이다.우선 금융기관의 숫자부터 살펴보자. 지난 9월말 현재 국내 금융기관수는 모두 1천9백60여개. 지난해만 해도 2천76개에 달했으나 1백6개 가량이 사라졌다. 22개 금융기관은 인가취소됐다. 사실상 강제퇴출을 당한 셈이다. 71개 기관은 영업정지상태다. 영업을 못하고있는만큼 더 이상 금융기관이라고 할수도 없다. 이밖에 13개기관은더 이상 생존할수 없다는 판단아래 자진해서 간판을 내렸다. 기관별로는 △은행 5 △종금사 16 △증권사 5 △보험사 4 △리스사 10△투신사 2 △상호신용금고 22 △신용협동조합 39개 등이다.그런가하면 한일 보람 장기신용 현대종합금융 등은 조만간 등기가없어진다. 합병을 앞두고 있어서다. 대한보증보험과 한국보증보험도합병을 결의한 상태다. 그동안 꾸준히 늘어나기만 하던 금융기관수가 줄어들었다는것 자체가 획기적 변화다. 이제 「살아남지 못하면죽는다」는 생존의 법칙을 각인시켰다는 점에서 금융기관 숫자는앞으로도 유동적이다.◆ 합작금융기관으로 질적 변화 보여금융기관의 규모가 달라졌다는 점도 새로운 금융지도의 특성이다.지금까지 금융기관은 「도토리 키재기식」 이었다. 은행만해도 조흥 상업 제일 한일 서울 외환등 6대시중은행이 각각 총자산 50조여원을 바탕으로 「내가 최고입네」 하고 뽐냈었다. 종금사도, 보험사도, 증권사도 마찬가지였다. 주어진 「파이」를 잡음없이 나눠먹는데 만족했을 뿐, 한 금융기관이 파이의 절반을 차지하는건 도저히용납할수 없었다.그러나 이제는 달라졌다. 은행의 경우 총자산 1백조원 은행이 탄생했다. 내년 1월 출범예정인 상업+한일은행과 국민+장기신용은행은 총자산이 1백조원을 넘는다. 세계 1백대은행에 해당하는 규모다.이들 은행을 조흥 외환 서울 제일은행등과 비교하는건 말도 안된다. 이들 은행은 명실상부한 슈퍼뱅크로 자리잡아 은행산업을 선도하는 리딩뱅크로 떠오를게 분명하다. 도쿄미쓰비시(일본, 96년),UBS+SBC(유럽, 97년), 시티코프+트래블러스(미국, 98년)가그랬듯이 대형은행간 합병을 통한 「규모의 경제」가 가진 위력을발휘할게 틀림없다.합작금융기관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는 것도 새로운 금융지도의 질적인 변화다. 합작금융기관의 탄생은 금융기관의 세계화를 뜻한다.세계적인 경영노하우를 가진 국제자본이 국내금융기관의 경영에 참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내자본들끼리 경쟁하던 시대하곤 사뭇다르다.외국자본의 상륙은 이미 가시화되고 있다. 외환은행은 이미 독일코메르츠은행을 대주주로 영입했다. 제일 서울은행은 해외매각을 앞두고 있다. 아직 입찰절차가 진행중이지만 입찰이 성사될 경우 시티 체이스맨해턴 홍콩상하이 ABN암로 등 세계적인 거대은행일 공산이 크다. 조흥은행도 5억달러의 외자유치가 성사단계에 접어들었다. 상업+한일은행, 국민+장기신용은행, 하나+보람은행, 주택은행 등도 외자유치를 추진중이어서 합작형 은행으로 변신할 가능성이 높다.제2금융권도 마찬가지다. 증권계에선 쌍용증권이 외국투자자에게매각되는 등 이미 합작붐이 일기 시작했다. 보험권에선 대한생명이메트로폴리탄생명과, 국민생명이 뉴욕생명과 각각 외자유치 협상을진행중이다. 또 동아 태평양 한덕 금호 등도 해외합작선을 적극 모색중이다.새로운 금융지도가 이전과는 가장 다른 부분은 뭐니뭐니해도 업무영역의 파괴다. 지금까지 국내금융기관은 이른바 「칸막이식 영업」에 안주해 왔다. CP(기업어음)할인은 종금사, 단위형 펀드는투신사, 보험은 무조건 보험사 하는 식이었다. 다른 금융기관이 이들 영역에 침범하는건 꿈도 꾸지 못했다. 때로는 정부에 대한 로비를 통해, 때로는 끝없는 출혈경쟁을 통해 각 금융기관은 자기 영토지키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 성과도 대단했다.그러나 이제는 달라졌다. 정부의 영업파괴에 대한 명시적 선언이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생존게임을 벌이다보니 어느새 그렇게 됐다.은행 종금사 증권사 투신사가 비슷한 상품을 개발, 경쟁을 벌이게됐다. 종금사의 전유물이었던 CP 중개업무만 해도 그렇다. 증권사와 은행신탁계정에 CP할인이 허용되면서 순식간에 전세는 역전됐다. 증권사가 CP할인시장의 70%를 점령해 버렸다. 땅짚고 헤엄치기식 장사를 해왔던 종금사로선 다른 자구책을 모색해야 하는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리고 있다.투신사 수익증권을 둘러싼 게임도 마찬가지다. 증권사가 수익증권판매대행을 맡으면서 은행신탁계정의 돈을 무더기로 끌어갔다. 은행들도 이에 질세라 마침내 수익증권과 같은 단위형펀드를 판매할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냈다. 보험사도 더 이상 안전지대가 아니다. 하나은행과 보람은행은 합병기자회견에서 『보험, 뮤추얼펀드, 자산관리 및 투자은행 등을 인수하거나 별도로 설립해 2002년까지 총자산 1백조원 이상, 자기자본4조원 이상의 종합자산관리기관(Total Asset Management Group)으로 자리잡겠다』고 선언했다. 보험시장까지 잠식하겠다는 선언이다.◆ 유사금융기관도 속속 등장여기에 지금까지 보지못했던 유사금융기관도 속속 등장, 금융권 지도를 송두리째 바꿔놓을 전망이다. 정부는 어음할인 전문회사인 팩토링회사를 집중 육성할 계획이다. 회사형 투신사인 뮤추얼펀드도선보이고 있다. 그런가하면 농·축·임 등 삼협의 신용부문 통합(협동조합은행)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이같은 금융지도개편은 금융권간, 금융기관간 세력판도를 뿌리째흔들어 놓을게 틀림없다. 단순히 「앞으로」가 아니다. 현재진행형이다. 금융기관 퇴출및 합병, 예금보호제도, 업무영역파괴 등으로고객들에 의해 새로운 판이 짜여지고 있는 것이다. 금융기관 이익의 터전인 수신이 대표적이다. 구조조정과정의 전리품을 가장 많이챙긴 곳은 투신사와 은행고유계정이다. 반면 종금사와 은행신탁계정은 궤멸적인 타격을 입고 말았다.지난 9월말 현재 투신사의 공사채형 수익증권잔액은 1백48조5천7백74억원. 작년말(75조9천3백72억원)보다 무려 72조6천4백2억원이나 늘었다. 배 가까운 수준이다. 은행저축성예금도 마찬가지. 작년말 1백62조4천4백27억원이던 저축성예금잔액은 지난 9월말 1백97조4천2백56억원으로 34조9천8백29억원 증가했다.반면 종금사와 은행신탁의 몰락은 초라하기만하다. 지난 9월말 현재 어음매출 자발어음 CMA(어음관리계좌)등을 합친 종금사 수신은 37조4천5백42억원. 작년말(81조7천5백12억원)에 비해 44조2천9백70억원이나 감소했다. 특히 CP할인은 49조7천20억원에서 14조2백46억원으로 감소, CP할인전문기관이란 자리를 내놓아야 했다.비록 절반이 넘는 16개 종금사가 퇴출당했다 하더라도 생존의 기반을 흔드는 변화가 아닐 수 없다.은행신탁도 처지는 마찬가지다. 작년말 1백93조2백39억원으로 고유계정예금(1백82조7천1백59억원)을 능가했던 은행신탁은 지난 9월말엔 1백60조8천7백48억원으로 쪼그라들었다. 이런 추세라면 조만간 투신사의 공사채형 수익증권잔액보다 적어질 공산이 크다.상황이 이런만큼 금융기관들이 생존전략을 다시 짜야 하는건 당연지사다. 종금사와 증권사들은 투자은행으로의 변신을 모색하고 있다. 회사채인수업무, 투자대행, M&A(인수합병)중개 등의 틈새시장을 공략해 수익을 극대화한다는 전략이다. 그렇지 않고 대형금융기관과 양적인 경쟁을 지속하다간 망할수 밖에 없다는게 그동안의경험이다. 은행신탁의 경우 투신사의 단위형펀드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일정기간동안 돈을 받아 별도로 운용하는 것만이 신탁이 존립할 수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판단에서다. 은행고유계정과 투신사들도 마냥 안심하고 있을 처지는 못된다. 돌발변수가 발생하면 순식간에예금판도가 바뀌는게 요즘이다. 만일 투신사에 대해 정부가 손을대기 시작하면 투신사의 존립도 장담할수 없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