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학시절 첫 해외여행시 한국방문으로 인연...한일 역사 공부 필요 느껴

『대학 4학년때인 89년에 처음으로 해외 여행을 했는데그게 한국이었습니다. 그 때농촌을 지나가다 사람들이 소를 몰며 일하는 모습을 봤어요. 그 시골 풍경이나 사람들살아가는 모습이 일본과 많이비슷하다고 느꼈고 그게 너무인상적이었어요.』일본경제신문(니혼게이자이신문)의 서울지국 특파원으로활약하고 있는 하시모토 류스케(34)씨는 이렇게 한국과 첫인연을 맺었다. 하시모토씨는『그때 한국에 대한 인상이너무 좋아 다시 찾게 됐다』고 말한다. 그와 한국의 두번째 인연은 93년에 이뤄졌다.『93년에 회사에서 해외연수기회가 주어졌습니다. 미국으로 가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한국 여행때 받은 느낌이너무 강해서인지 마음이 한국쪽에 더 끌렸습니다. 그래서한국을 선택했지요.』하시모토씨는 당시 1년간 한국에 머무르며 연세어학당에서 한국어를 배웠다. 그 1년간의 한국 체류기간이 그에게는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시간』이었다고 한다. 다른나라에서 생활해 본다는 경험그 자체가 좋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일에서 해방돼 자유롭게 공부하며 여행을 다닐 수있어 더 즐거웠다고 한다. 대학때는 돈이 없어서, 회사 다니면서는 시간이 없어서 못했던 여행을 한국에서 지낸 연수기간 동안 마음껏 할수 있었다.그리고 한국과의 세번째 인연은 바로 현재, 특파원으로 맺어진 인연이다. 하시모토씨는지난해 9월 특파원으로 한국땅을 다시 밟았다.『일복이 많은지 한국에 오자마자 큰 사건들이 연달아 일어났습니다. 경제 위기와 함께 IMF체제가 시작됐고 대통령 선거가 있었고 북한하고사이에서도 크고 작은 사건들이 많았습니다. 한국이 격변기인만큼 저에게는 한국을 배우고 여러 가지 경험을 쌓을수 있는 더없이 좋은 기회라고 생각합니다.』일본경제신문은 일본 최대의경제신문으로 2천여명의 기자를 보유하고 있다. 일본경제신문 한국지국에는 하시모토씨를 포함해 일본인 기자 두명과 한국인 기자 두명이 일하고 있다. 취재는 일본 기자와 한국 기자 두명이 한 조를이뤄 하는 경우가 많다고 그는 설명한다. 「한국어가 서툴러 취재에 어려움이 있기때문」이다. 기사는 하루에보통 2∼3 꼭지씩 쓰고 있다.하시모토씨는 『한국은 일본에 외교와 안보면에서뿐만 아니라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기사거리를 꼼꼼히 챙겨야 한다』고덧붙인다.하시모토씨가 한국에서 취재하며 가장 어렵다고 느끼는점은 『정부 정책이 너무 자주 바뀌고 결정되지 않은 일도 결정된 것처럼 알려지는경우가 많아 혼란스럽다』는것이다. IMF 이후 외국계 언론사 기자들에 대한 태도가조금 친절해지긴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정부쪽은 접근하기가 어렵다는 점도 적지 않은어려움이다.올들어 한국에서 일어난 일중에 하시모토씨에게 가장 흥미로웠던 사건은 경영 부실로5개 은행이 퇴출된 일이었다.『일본에서도 금융 구조조정문제가 핵심 이슈가 되고 있어 일본과 한국의 방법론을비교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기 때문이다. 그가 5개 은행의 퇴출 과정을 지켜보며한국과 일본의 차이점이라고느낀 점은 크게 두가지였다.첫째는 일본이 이리 저리 모든 사정을 고려하면서 너무신중한데 비해 한국은 정부주도로 구조조정 과정을 일사천리로 힘있게 진행시킨다는점이다. 둘째는 한국에서는퇴출 은행 직원들이 크게 반발했는데 일본에서는 이런 모습을 거의 찾아 보기가 힘들다는 점이다. 『일본에서는기업이 도산하거나 해도 직원들이 정부나 회사측에 뭐가잘못 됐다며 항의하는 일이거의 없다』며 『한국과 일본의 기업 문화가 비슷한 점도많지만 이런건 정말 다르구나하고 느꼈다』고 말한다.◆ ‘신문기자에게’시 읽고 기자되기로 결심하시모토씨는 또 『결과적으로 머뭇거리되 신중한게 좋은지, 아니면 일단 빨리 처리하고 보는게 좋은지는 아직까지판단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서도 『단지 한국의 경제개혁은 정부 주도로 너무 급하게 서두르는 감이 있다』고조심스럽게 덧붙였다.하시모토씨는 게이오대 경제학과를 졸업, 90년에 일본경제신문에 입사했다. 기자가되고 싶다고 생각한 것은 재수할 때 「신문기자에게」라는 시를 읽고 나서였다고 한다. 이 시는 일반 국민들이기자에게 「세계 어디든 달려가서 우리에게 사실을 알려달라」고 부탁하는 내용의 시였다. 하시모토씨는 『당시에그 시를 읽으며 신문기자가자유롭게 쓸 수 있는 사회라면 그 사회는 살만한 곳이겠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고말한다. 물론 그 시를 읽으며품었던 기자에 대한 이상은현실 속에서 많이 깨져 나갔다. 그럼에도 그는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는 일을 파고들어사실을 파악, 대중에게 전하는 기자의 역할에 대해 애착을 가지고 있다.그가 서울 특파원으로 앞으로가장 하고 싶은 일은 「한국을 깊이있게, 전문가적인 식견을 가지고 이해하는 것」이다. 서울에서 활동하는 특파원이라면 단순히 표면적인 현상에 대해서만 이것 저것 지적할 것이 아니라 한국 사회와 역사의 이면까지도 볼 수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주위에서 한국의 특정 사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질문을 자주 받습니다. 이런질문에 대해 「뭐가 좋고 뭐가 나쁘다」라고 간단히 대답할 수도 있겠지만 최소한 서울 특파원이라면 좀 달라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사건은 어떤 역사적인 배경을 가지고 있을까, 이 일은 어떤과정을 거쳐 표면화된 것일까등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특히 한일간의 미묘한 역사문제일 때는 더욱더 한국의역사와 한일 관계사를 공부해야할 필요성을 느낀다고 그는말한다. 공부에 대한 필요성을 많이 느끼는만큼 바쁜중에도 한국어 학습은 빼먹지 않으려 노력한다.『한국과 일본은 비슷하면서도 다르고 가까운 것 같으면서도 아주 멀죠. 예를들어 밥먹는 습관도 아주 다른데 한국에서는 밥그릇을 상에 놓고먹고, 일본에서는 밥그릇을들고 먹어요. 한국에서 지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이런차이점은 어떻게 생긴 것일까하는게 궁금해지고 그러다 보면 한국에 대한 관심과 애착도 더 커지는 듯한 느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