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부 들어 숨가쁘게 전개돼왔던 금융구조조정이 지난 9월말로 제1막을 내렸다.이규성 재정경제부 장관은 9월28일 과천청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내년 상반기까지 모두 64조원의 공적자금을 투입, 망가진 금융시스템을 복원시킬 계획』이라며 『이로써 1단계 금융구조조정이 사실상 마무리됐다』고 선언했다. 이장관은 이어 『부실채권비중을궁극적으로 선진은행 수준(총여신대비 1%)으로 축소하고 합병-우량은행을 중심으로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을 선진국수준(10%이상)으로 높일 수 있을 것』이라는 내용의 비전을 제시했다.이날 이장관의 표정에는 은근한 자부심이 배어있는 듯했다. 정부가당초 1단계 구조조정의 시한으로 「약속」했던 9월말을 넘기지 않았고, 무엇보다도 지금까지 판단미스나 실기와 같은 정책적 에러를범하지 않았다는 자평때문이었다.실제로 IMF나 IBRD와 같은 국제금융기관들도 우리나라의 금융구조조정 과정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분위기다.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그동안 많은 것이 변한게 사실이다. 긴축과 내핍을 모토로 한 IMF경제체제의 도입과 맞물려 금융산업 자체가 거대한 변화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들어갔다. 하루가 멀다하고혁신적인 금융정책들이 발표됐고 수많은 부실금융기관들이 문을 닫았다. 사람들은 금융기관을 선택할 때 수익성과 함께 안전성도 따져봐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연초에 제일 서울은행을 국유화한데 이어 종합금융회사를 절반 가까이 정리한 정부는 하반기들어 은행 증권 보험쪽으로 구조조정의메스를 들이댔다. 곪은 곳을 도려내고 금융혈맥을 새로 잇는, 전대미문의 대수술이었다. 정부의 재정투입은 비교적 과감했다는 평이다. 64조원이라는 엄청난 돈을 투입키로 결정하기까지 정책당국자들의 고심은 결코 작지 않았을 것이라는 지적이다.수술도중에도 출혈은 계속됐다. 살인적인 고금리속에서 부도기업들이 속출하고, 이는 금융기관들의 부실채권 양산으로 되돌아왔다. 부도의 법칙이 금융기관에도 적용되는줄 미처 몰랐던 퇴출금융기관의직원들은 하루아침에 길거리로 내몰렸다. 「생존게임」에 나선 금융기관들은 하루하루를 피를 말리는 심정으로 보냈다. 퇴출 합병외자유치 워크아웃…. 지금껏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이런 단어들과 싸우며 밤낮을 지샜다. 새로운 도전에 성공한 금융기관들은자생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고 그렇지 않은 곳은 퇴출이라는 거센 압력속에서 여전히 불안과 초조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1단계 구조조정후 경기부양책 불거져어쨌든 구조조정이 일단락되면서 또 다른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했다. 다름 아닌 경기부양이다. 정부는 그동안 극도의 신용경색속에서중소기업 대출금의 일괄적인 만기연장과 같은 파행적인 조치들을통해 산업현장의 명맥을 이어놓았다. 그러나 이제 이런 종류의 인위적인 정책은 한계에 다다랐다. 정부는 막대한 재정지원을 빌미로금융권의 등을 떼밀고 있다. 경기부양은 금융권의 협조없이는 절대불가능한 것이다. 재무건전성을 완전히 확충하지 못한 금융기관들로서는 당연히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바로 이 부분이 1차 금융구조조정 결산의 전환점이요, 향후 금융개혁의 성패를 가름하는 잣대다.이 때문에 대다수의 금융전문가들은 1단계 금융구조조정에 대한 평가를 유보하고 있다. 오히려 불확실한 미래를 들며 비판적인 입장을 제기하기도 한다. LG경제연구원의 오문석 금융연구실장은 『당초 구조조정의 기본방향은 부실기관은 폐쇄하고 회생가능한 금융기관은 과감한 지원을통해 신속하게 정상화시키겠다는 것이었는데, 돌이켜보면 지연된느낌이 없지 않다』고 말한다. 이 정도의 작업이었다면 몇달 정도더 앞당길 수 있었다는 얘기다.자유기업센터의 공병호소장도 『가장 아쉽게 생각되는 점은 부실금융기관의 퇴출이 보다 많이, 보다 신속하게 이뤄지지 못했다는점』이라며 『정부가 은행합병에 지나치게 비중을 둬온 것 같다』고 비판한다.부실채권의 최종적인 규모도 초미의 관심사다. 정부는 64조원의 공적자금중 32조5천억원을 부실채권매입에 사용할 계획이다. 연말까지 발생할 전체 부실채권의 규모를 1백18조원으로 추정하고 있는정부는 이 돈으로 고정(이자 3개월이상 연체)이하 여신의 60.7%를정리할 수 있다고 장담하고 있다. 그러나 부실채권이 이보다 더 늘어난다면 제2차 재정자금투입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금융권 산적한 문제 많다이런 가운데 한국금융연구원의 지동현박사는 최근 충격적인 보고서를 내놓았다. 현재 국내금융기관의 부실채권 규모를 국제기준(차입자의 원리금 상환능력까지 고려)에 맞춰 계산해볼 경우 모두 1백60조원에 달할 것이라는 내용이다.이에따라 재정투입자금도 64조원에서 87조원으로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 금융시장 참가자들은 이같은 견해에 동조하고 있는분위기다. 지금과 같은 경제구조속에서 1개월이상 이자가 연체된요주의여신은 대부분 부실채권으로 간주해야한다는 분석이다.이밖에 금융권에 산적한 문제들은 수없이 많다. 우선 금융기관들의자금중개능력이 정상화되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은행들의 수익구조상 경기침체가 계속 이어질 경우 부실채권은 더 늘어나게 되고, 그에 따라 신용경색이 완화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더욱이 금융권의 인력감축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어서 대출이 활발하게 이뤄지지 않을게 뻔하다. 소유 및 지배구조, 책임경영 확립,관치금융의 청산등의 과제들도 금융권을 짓누르고 있다. 이들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서는 금융기관의 경영패턴도 변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이다.이미 국유화된 제일 서울은행의 매각문제는 두고두고 골칫거리다.부실채권이 계속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선뜻 인수하려는 곳이 없는데다 국제입찰을 위해서는 추가재정투입이 필요할지도 모른다는의견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상업+한일, 보람+하나, 국민+장기신용처럼 합병은행의 장래도 불투명하다. 합병에 따른 시너지효과를 거두기는커녕, 동반부실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합병에 합의한 국민과 장기신용은행이 상호 경영지표를 불신하고 있는데서도 이같은 위험의 일단을 엿볼 수있다.★ 국민 1인당 16만6천2백원 혈세 부담금융구조조정이 치열하게 진행되는 동안 일반 국민들은 그 심각성을 절감하지 못한게 사실이다. 금융소득이 별로 없는 서민들이나푼푼이 모은 돈으로 금융기관을 찾는 소액예금주들은 천문학적 규모의 공적자금이 투입되는 구조조정작업이 자신들의 생활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쉽게 깨닫지 못했다.그러나 막상 구조조정비용이 세금납부의 형태로 자신들에게 전가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또 그 비용이 구체적인 계수로 나타났을때 국민들은 비로소 놀라워했다.이번 1단계 금융구조조정으로 인해 국민들이 추가로 내야할 세금은1인당 연간 16만6천2백원으로 계산된다. 4인가족 기준으로는 1가구당 66만4천8백원. IMF경제 아래서 결코 적지 않은 금액이다.그 계산서의 내역은 이렇다. 정부는 금융구조조정에 모두 64조원을쏟아붓기로 했다. 이 돈은 금융기관의 부실채권을 사주거나 증자를지원하는데 쓰인다. 청산되는(파산하는) 금융기관을 대신해 고객에게 예금을 대신 지급하는 비용도 포함된다. 이 자금은 부실채권정리기금채권 예금보험기금채권등 공채발행으로 모두 조달된다. 국민들이 세금으로 부담하게 되는 비용은 바로 이 공채의 이자다. 정부는 공채금리를 연 12%대로 계산해 내년 예산에서 이자만으로 7조7천8백66억원을 배정했다. 이 돈을 올해인구 4천6백85만명으로 나누면 1인당 16만6천2백원이 된다.문제는 내년 한해만 내고 그만둘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공채의 만기가 5∼7년인 점을 감안할 때 향후 수년간은 비슷한 정도의 세금부담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물론 부실채권이 빠른 속도로 정리되고증자지원을 받은 금융기관의 주가가 상승할 경우 2000년부터 부담은 훨씬 줄어들 수도 있다. 그러나 반대로 금융기관들이 경영정상화에 실패, 또 다시 공적자금을 지원받는다면 국민들의 살림은 더욱 빠듯해질게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