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까지 이뤄진 제반 금융개혁조치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습니까.아직 평가하기에는 이르다고봅니다. 그야말로 정신없이달려왔기 때문에 시간적 여유를 갖고 잘한 점과 미흡한 부분을 가려내야 합니다. 지금까지는 외환위기를 초래한 부실금융시스템을 정비하는데역점을 뒀다면 앞으로는 금융산업의 건전성과 경쟁력을 높이는데 힘을 쏟을 계획입니다. 특히 국제금융시장에서국내금융기관의 신인도를 높여 외국자본을 끌어들이도록하겠습니다.▶ 그러면 지금까지 진행된 구조조정 속도에 만족합니까.개인적으로 진행속도는 적당하다고 봅니다. 물론 단기간에 모든 문제가 해결되길 바라는 국민들의 기대에는 다소미흡할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외국의 예를 보더라도진행속도가 결코 늦은 것은아닙니다. 미국도 80년대초부실 저축대부조합(S&L)을처리하는데 3년이상 걸렸습니다. 이것을 보면 나름대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상당수 외국인투자자들은 부실은행들간의 합병에 대해 우려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또정부가 부실기업을 퇴출시키는데 소극적이라는 지적도 제기합니다.저도 여기저기서 구조조정에대한 의견을 듣습니다. 부정적 시각도 있고 이에 못지 않게 잘한다는 칭찬도 들립니다. IBRD(세계은행)는 지금까지 진행된 금융구조조정에 대해 만족스럽다는 의사를 밝혔습니다. 특히 지난 9월말의은행인력구조조정에 대해 후한 점수를 줬습니다. 별다른마찰없이 인원감축에 대한 합의를 도출했다는 평가를 듣습니다.반면 부실은행들끼리 합병이진행된다며 부정적 평가를 내리는 외국투자자들도 있는줄압니다. 이들 주장중 경청할만한 것도 있지만 한국의 현실을 모르고 원론적인 수준에서 문제를 제기하는 경우도많다고 봅니다.▶ 1차구조조정이 끝난 뒤에도신용경색이 쉽게 해소되지 않을 것이란 우려가 나옵니다.정부의 경기부양책이 성공하기 위해서라도 신용경색을 빨리 풀어야 하는데 특별한 해결책을 갖고 있습니까.지금은 극심한 신용위기상태라고 할수 있습니다. 은행이어느 기업에 여신을 제공해야할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대출기업의 과잉투자를 사전에점검해야 하는 고유업무에 충실하지 못한 결과입니다. 특히 외환위기를 겪으면서BIS(국제결제은행)기준 자기자본비율을 충족하기 위해 대출을 꺼리면서 상황은 더욱악화됐습니다.그러나 9월말로 완료된 1차금융구조조정이 가시적 성과를나타낸다면 신용경색은 상당부분 해소될 것입니다. 또 기업 재무구조개선작업(워크아웃)이 순조롭게 진행된다면은행을 포함한 금융권의 자금이 기업체로 흘러들어갈 것입니다. 국내기업들중 옥석을가려내는 작업이 끝난다면 정부가 금융권에 자금을 대출해주지말라고 해도 돈을 빌려줄것입니다. 또 5대그룹에 편향된 자금시장도 정상적으로 작동할 것으로 봅니다.▶ 대기업들이 최근 자체적으로발표한 「빅딜」에 대해 정부가 불만을 나타내고 있다는얘기가 들립니다. 앞으로 대기업 구조조정을 어떤 방향으로 끌고 나갈 계획입니까.현재 정부가 추진하는 대기업구조조정은 김대통령과 그룹총수들이 합의한 5개원칙에따라 진행되고 있습니다. 즉투명성 독립성 재무건전성 경쟁력 책임성 등에 입각해서추진중입니다. 이런 연장선상에서 결합재무제표 도입, 계열사간 상호지급보증해소, 소액주주들의 권한강화장치 등이 마련됐습니다. 앞으로는재무구조의 건전성과 국제경쟁력을 높이는데 무게중심을둘 예정입니다.재무건전성 제고방안중 대표적인 것이 IBRD와 합의아래추진중인 워크아웃입니다. 여기에는 대출금의 출자전환이나 이자감면 부채탕감 등 다양한 방법이 동원되고 있습니다. 최근 5대그룹간 「빅딜」도 이같은 작업의 하나이고김대통령과 재벌총수들이 합의한 원칙아래 진행될 것입니다.▶ 재계일각에서는 정부의 개입을 내심 못마땅하게 생각하고있습니다.충분히 있을 수 있는 얘기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현재 정부는 기업들에특정 사업을 하라, 말라고 강요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금융기관과 국민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예상될 때에만 구조조정을 유도하고 있습니다. 가령 현대와 LG의경영주체선정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고 있는 반도체도 그렇습니다. 두기업이 합병하지않고는 현상태로는 현대와LG 어느 한곳도 국제시장에서 살아남기 힘듭니다.잘못될 경우 국가경제에 심대한 악영향을 미칠수도 있습니다. 이를 사전에 방지하는 차원에서 대기업들간 빅딜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향후 언제쯤 한국경제가 회복될 수 있다고 국민들에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까.내년초부터는 우리경제가 회복세로 돌아설 것으로 보입니다. 대내외 여건이 유리한 방향으로 작용하고 있어 충분히가능합니다. 무엇보다 추가적인 금리인하를 시사하는 등미국이 세계경제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발벗고 나서고 있습니다. 이것은 중국의 위안화 평가절하 압력을 상당부분해소시켜 줄 것입니다.일본도 이에 상응하는 조치를취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같은 노력은 한국을 포함한 동남아 각국에 유리하게 작용할것입니다. 여기다 국내기업과금융기관의 구조조정노력이꾸준히 진행된다면 조만간 국제자본시장에서 신인도를 회복할 것입니다. 그럴 경우 외국인투자자들이 다시 몰려올것이고 한국경제는 한층 성숙한 단계로 진입할 것입니다.▶ 태국 인도네시아 등도 외국자본 유치에 발벗고 나섰습니다. 이들과의 경쟁에서 이기려면 차별화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봅니다.물론입니다. 국가적 차원에서동남아 각국과 경쟁할 수 있는 차별화전략이 요구됩니다.무디스나 S&P 등이 한국의신용등급을 상향조정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해야 합니다.가령 과거 외환금융위기를 겪었던 멕시코나 스웨덴보다 한국정부가 훨씬 강도높게 구조조정을 진행중이라는 모습을보여줘야 합니다. 그래야만외국자본이 들어오거나 국제자본시장에서 자본을 유치할수 있습니다.▶ 금감위위원장으로서 조직을어떻게 이끌고 나갑니까. 급조됐기 때문에 팀워크를 이루기가 쉽지 않을텐데요.내부불만이 상당히 많은 줄알고 있습니다. 은행감독원증권감독원 등 4개금융감독기구가 하나로 통합됐기 때문에미래에 대한 불안감도 대단한걸로 알고 있습니다. 개개인에 대해 미안하지만 지금은그들의 편의를 봐줄 상황이아닙니다. 개개인의 불만에귀를 기울이면 금융구조조정이라는 당면과제를 달성할 수없습니다.▶ 구조조정이 일단락되면 앞으로 금감위를 어떻게 끌고 나갈 계획입니까.금감위를 전문가집단으로 키우면서 동시에 금융기관에 군림하기 보다는 금융감독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으로 탈바꿈시키고 싶습니다. 기존의은행 증권 보험등 분야별 감독기능에서 인허가 감독정책소비자보호 등 기능별로 특화된 전문가집단으로 양성한다는 얘기입니다. 또 기존 금융감독기관과 달리 건전성감독이란 서비스를 제공하는 조직으로 발전시킬 계획입니다.금감위의 서비스는 투명성과공정성이란 잣대로 평가될 것입니다.다소 융통성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듣더라도 원리원칙대로감독하는 체계를 구축할 계획입니다. 예를 들면 A라는 사태가 발생하면 금융기관이나투자자들이 당연히 B라는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예상할수 있는 일종의 자동격발장치(Automatic Trigger System)를 마련중입니다.▶ 위원장께선 IMF사태를 예견한듯이 지난해 9월 본지에 기고한 칼럼에서 「정부는 금융위기가 발생하면 즉각 개입해서 피해를 최소화하는 조치를취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당시 주장에 근거해서 금융개혁작업을 추진하고 있습니까.물론입니다. 정부는 금융시장의 개방과 자율이란 미명아래건전성규제를 방기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금융시장이나 실물경제에 교란이 발생하면 즉각 개입해서 피해를최소화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이것이 진정한정부의 위기관리능력입니다.또 정부는 시장개입에 대한사회적 동의를 얻으면 가능한모든 수단을 동원해야 합니다. 현재상황을 「뻘겋게 달궈진 솥」에 비유한다면 바가지로 물을 부어서는 식힐수가없습니다. 큰 양동이로 물을퍼부어야 합니다. 부실기업과금융기관을 회생시키는데 수십조원의 공적자금을 단기간에 투입해야 한다고 주장한것도 이같은 맥락입니다. 물론 정부조치는 반드시 투명해야 하고 공정해야 합니다.▶ 풀기 어려운 일에 직면했을땐 어디에서 지혜를 얻습니까.주로 역사소설과 금융관련 서적을 통해서 입니다. 위원장으로 취임하고 나서는 뜸하지만 책을 많이 읽는 편입니다.또 명상을 자주 합니다. 아침저녁으로 30분 정도 명상에잠깁니다. 비서한테 전화를연결하지 말라고 한뒤 테이블위에서 가부좌를 틀고 생각을정리합니다. 그러면서 평상심을 유지합니다.정리·박영암 기자 사진·안도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