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은 공기업 개혁의 모범 사례로 꼽힌다. 「영국병의 본산」으로치부되던 공기업을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갖춘 민간 기업으로탈바꿈시키는데 성공했다고 인정받기 때문이다.마거릿 대처 행정부가 출발하던 79년에 영국의 공기업들은 GNP의10.9%에 달하는 1백80억4백40만파운드의 생산을 책임지고 있었으며전체 노동력의 8.1%인 2백6만5천명을 고용하고 있었다. 총투자의15%는 공기업의 몫이었다. 그러나 공익의 극대화를 목표로 했던 공기업은 만성적인 적자와 서비스 및 품질 저하, 공기업을 둘러싼 이해 당사자들의 이익 추구 행위 등으로 인해 영국병의 근원으로 지목되게 됐다.대처 총리는 영국병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공기업부터 개혁해야 한다고 판단, 79년부터 대대적인 민영화를 추진했다. 대처 총리는 총리실 직속으로 공공 관리실(Office of Public Service)을 설치하고공기업 민영화를 손수 챙겼다.영국 정부는 공기업의 민영화를 다음의 4단계를 거쳐 추진했다. 제1단계에서는 공무원과 투자은행 담당자, 경영 컨설턴트 등으로 구성된 팀을 통해 특정 공기업에 대한 민영화 가능성과 민영화가 미칠 영향 등을 연구하도록 했다. 이들은 각종 자료를 검토한 뒤 민영화 가능성과 민영화에 앞서 이뤄져야할 선행조건 등을 정리, 주무부서의 장관에게 보고하고 장관은 이를 바탕으로 의사 결정을 내렸다.2단계에서는 투자은행과 회계법인, 법률회사 등으로부터 민영화를올바른 방향으로 추진하는데 도움을 줄만한 전문가들을 선정했다.또 해당 공기업이 민간기업으로 탈바꿈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해법률상의 공사(Public Corporation) 상태를 종결하고 공공유한회사(Public Limited Company)를 발족시키는 입법 절차를 진행시켰다.공공유한회사는 민영화 직전에 필요한 조치들을 취하기 위한 일종의 중간 단계 기업이었다. 이와함께 공기업이 속한 산업에 대해 규제를 완화해야 하는지 또는 민영화에 따라 다른 규제가 필요한지를판단, 관련 법규를 정비했다.3단계에서는 해당 공기업의 대차대조표를 조정하고 기업의 실적을향상시키는데 주력했다. 적정한 부채·자본 비율을 유지시키고 수익성 위주의 경영을 통해 독점력이 약화되는 상황에도 적응할 수있도록 유도했다. 이는 공기업의 가치를 높여 좋은 가격에 매각할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노동계 반발 최소화에도 노력마지막 단계는 공기업을 실제 매각하는 단계이다. 영국 정부는 주식 매각 단계에서도 재정과 법률 홍보 등의 분야에서 전문가를 선정, 서로 협조하면서 매각을 순조롭게 진행시켜 나가도록 했다. 매각 일정을 마련하고 매각할 주식의 양을 결정하며 광고와 홍보를통해 매각 사항을 널리 알리는 일도 이 단계에서 이뤄져야할 업무들이다. 개인 투자자들에게는 홍보 전단(DM:Direct Mail)을 발송하는 방법으로, 기관 투자가 대상으로는 자본 유치를 위한 로드쇼를개최했다. 이런 민영화 과정에서 영국 정부가 특히 관심을 기울였던 부분은공기업 민영화에 관련된 다양한 이해 당사자들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것이었다. 이해 당사자에는 공기업의 경영진과 일반 직원들, 잠재 투자자, 언론 등은 물론 민영화 반대자들과 납세자이면서 소비자이자 유권자인 일반 대중까지도 포함됐다. 영국 정부는 일반 국민과 공기업 직원들의 광범한 공감과 이해를 이끌어내기 위해 공기업 매각 대금의 0.3∼0.7%를 홍보비로 사용했다.특히 노동계의 반발을 최소화하는데 주의를 기울였는데 해당 공기업의 직원들에게 「민영화가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는 사실을 주지시키는 홍보 활동을 펼쳤고 직원들에게 실질적인 인센티브가 돌아갈수 있도록 노력했다. 이를 위해 적절한 시기에 민영화와 관련된 정확한 정보를 근로자들에게 제공했으며 근로자와 경영진, 정부담당자들의 대화 통로를 마련했다. 또 민영화 대상 공기업의 직원들에게는 무상주를 분배하거나 주식을 시세의 반값으로 살 수 있는제도를 마련하기도 했다. 이런 각종 인센티브를 통해 공기업 근로자들의 90% 정도가 민영화 이후에는 자신이 일하는 기업의 주식을보유할 수 있게 됐다.근로자 조정 문제에도 신중하게 접근했다. 민영화에서 인원 축소문제는 공기업의 경영 효율 향상을 위해 필수 불가결한 요소로 여겨진다. 브리티시 텔레콤의 경우 민영화 이전인 1985년에는 직원이23만5천1백78명이었던데 비해 민영화 이후인 현재는 12만4천3백명으로 거의 절반 가량으로 줄었다. 그러나 14년간의 공직생활 동안대표적인 영국 공기업 20여개를 민영화하는데 관여했던 제리 그림스톤 슈로더 부회장은 『직원이 절반으로 줄긴 했지만 강제적인 정리해고는 없었다』고 전한다. 『재교육을 통해 다른 회사에 다시취직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줬으며 정리해고가 인원 재배치로 마무리될 수 있도록 노력했다』는 설명이다.민영화에 따른 국민들의 정서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예를들어 브리티시 텔레콤이나 브리티시 가스를 민영화할 때는 두 독점기업이 특정 개인이나 특정 기업에 넘어가는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자국민주 방식을 채택, 해결책을 모색했다. 또 일반 국민들이 폭넓게공기업의 주주로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기 위해 주식 대금을할부로 지불할 수 있도록 하는 한편 각종 세제 혜택을 부여했다.민영화의 속도를 조절했다는 점도 영국의 민영화 경험에서 발견할수 있는 특징이다. 공기업 민영화는 정치적인 명분이나 압력에 밀려 부적절한 시기에 헐값에 매각돼서는 안된다는게 영국 정부가 고수한 원칙 중의 하나였다. 이를 위해 영국 정부는 1년에 4건 이하로 민영화 건수를 제한했다.◆ 경쟁체제 위한 필요 규제 마련독점 기업을 없애고 산업 구조를 경쟁체제로 바꾸기 위해 필요한규제를 마련하는데도 초점을 맞췄다. 민영화가 소비자의 이익을 저해할 수 있다는데 주목한 것이다. 이를 위해 독점을 감시할 수 있는 기관을 설립하기도 했다. 특히 국민들의 직접적인 불만 사항이될 수 있는 공공요금 상승 문제에 관심을 쏟았다. 민영화된 기업들이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는지, 또 가격과 서비스 품질 사이의 균형을 맞추고 있는지를 감시함으로써 시민들에게 불이익이 돌아가지 않도록 했다. 실제로 상하수도 요금을 제외한 전기나 가스,통신 요금 등은 민영화 이전보다 사용료가 낮아졌다. 상하수도 가격이 올라간 것은 유럽연합(EU)이 정한 규정을 만족시키기 위해 상하수도 인프라 구축에 자본을 투자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