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대실업시대의 막이 오르고 있다. 일자리를 찾는 사람들이 직업안정소 대합실에 입추의 여지없이 빽빽히 들어차있다.사람의 행렬은 계단에서 입구를 지나 찬바람에 앙당그리며 서있는 직업안정소 건물을 몇겹씩 둘러싸고 있다』. 가마다(鎌田)가20년전인 1979년,<다큐멘타리, 실업 designtimesp=17800>에서 묘사한 직업안정소의살풍경이다.그러나 이런 풍경은 기억에서 잊어져가는 과거의 일이 아니다.21세기를 1년2개월을 남겨놓은 현재, 바로 1998년10월에 일본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습이다. 시계바늘을 20년전으로 돌려놓은 것처럼 바뀐게 없다. 오히려 상황은 나빠져 있다고 할 수 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일자리를 잃었거나 잃을 우려가 많은 사람들에게는 특히 더 그렇다.10월26일오후. 도쿄 신주쿠(新宿)의 한호텔에서 열린 「취직면접회」의 모습을 보면 이같은 설명이 전혀 과장이 아니라는 것을금세 알 수 있다. 3개의 직업소개소가 합동으로 연 이날 면접회에서 제공된 일자리는 2백89개. 반면 그것을 거머쥐겠다고 몰려든 구직자는 무려 1천1백60명에 달했다. 경쟁률이 간단하게4대1을 넘는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평균일 뿐이다. 사무직 직원한명을 뽑는 회사의 창구에는 60명이나 몰려 북새통을 이뤘다.그것도 월급여가 20만엔(보너스를 합해도 연간 3백만엔도 안돼4인가족기준 면세점(약4백만엔)에도 미치지 못하는 저임임) 에불과한데도…. 「급여보다는 일자리」가 우선인 시대라는 말이다.이는 사상최악인 일본의 실업사태를 엿볼수 있게 하는 단편에 불과하다. 9월중 완전실업자는 2백95만명, 실업률은 4.3%다. 유럽경제를 이끌고 있는 독일의 실업률이 10%를 넘나들고 있는 것과비교할 때 아무런 문제가 없는듯이 보인다. 그러나 일본인들이느끼는 「체감실업」은 물먹은 솜처럼 무겁다. 우선 실업률이 빠르게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9월중 실업률은 1년전보다 0.9%포인트나 높은 수준이다. 1,2차오일쇼크때 0.5%포인트밖에 상승하지 않았던 것과 크게 대조적이다. 또 실업의 질도 바람직하지 않다. 다음세대의 번영을 위해 한창 일을 배워야 할 25∼34세의 젊은세대 실업률이 5.6%(남자 4.6%, 여자 7.0%)로 평균보다 높다는게 심각하다. 평생일자리를 제공한다는 「일본적고용관행」때문에 하는일 없이 회사에 남아있는 「사내실업자」등 실업예비군도2백55만명에 달한다는 분석이다.◆ 은행·제조업 파산위기 갈수록 고조9월중 유효구인배율이 0.49로 구인배율을 조사하기 시작한1963년이후 가장 낮다는 사실이 상황을 더욱 우울하게 한다. 유효구인배율이란 일자리를 구하는 사람 1인당, 일할 사람이 필요한 일자리를 가리킨다(구인÷구직). 구인배율이 1이면 균형을 이루는 것이며 1보다 크면 구인(求人)난을, 1보다 작으면 구직(求職)난을 나타낸다. 9월중 구직은 지난해 같은기간보다 18%나 늘어난 반면 구인은 19%나 줄어든 것이 이같은 최악의 상황을 연출했다.상황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불황이 장기화되면서 시간이 흐를수록 일자리를 잃는 사람들이 늘어날 공산이 커지고 있다. 일본의 경제성장률은 지난 2/4분기(4∼6월)중 마이너스 3.3%(연율)로뒷걸음질 쳤다. 지난해 3/4분기이후 3분기연속 마이너스 성장이었다. 작년에 마이너스 0.7%를 나타낸데 이어 올해는 마이너스2%이상, 내년에도 마이너스 성장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데 경제전문가들의 견해가 일치하고 있다.산더미처럼 쌓인 부실채권에 시달리고 있는 은행들은 앞으로 몇개월동안 생사의 가시밭길을 걸어야 한다. 파산직전에 국유화로목숨을 이은 장기신용은행이 신호탄이다. 다이와은행은 살아남기위해 국제금융업무를 포기하고 해외에서 철수했다. 은행이 「내코가 석자」라며 대출회수에 나서며 연쇄부도를 부채질하고 있다. 증권업계의 큰손인 노무라 다이와 닛코증권도 모두 큰폭의적자를 기록, 구조조정(직원감축)이 불가피하다. 세계제일을 자랑하던 제조업체도 흔들리고 있다. 세계적인 도시바와 히타치가상반기(4∼9월)중 적자를 기록했다.대기업들의 고용자수가 9월중에 2만명 감소했다는게 좋지않은 소식이다. 대기업들은 지난해 8월이후 조금씩이나마 고용자수를 늘려와 실업률이 높아지는 것을 억제해왔다. 그러나 이제 다시 고용자수를 줄임으로써 제2의 고용조정이 시작된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여기에 두가지의 실업증가압력이 가세하고 있다. 하나는 건설업에서 과잉고용인력의 해소압력이다. 건설업부문은 90년대초부터시작된 대규모 재정확대정책으로 상당규모의 과잉인력을 안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최근의 경제상황이 너무 안좋아 「재정구조개혁」이 보류됐으나 언젠가는 되살아날 것임에 틀림없다.GDP의 8%에 달하고 있는 공공투자를 6%선(80년대평균)으로 줄일경우에는 37만명, 3%선(미국과 유럽수준)으로 떨어지면 1백75만명이 일자리를 잃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다른 하나는 「규제완화에 따른 실업우려」다. 일본종합연구소는앞으로 중장기적으로 도소매업에서 2백47만명, 금융 보험에서37만명, 운송 통신에서 1백75만명, 전력 가스 수도에서 19만명등모두 4백79만명이 고용조정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규제의 보호막이 없어지며 자영업자의 몰락도 불가피하다.일본에선 그동안 「구멍가게」가 번성, 실업률을 떨어뜨리는 역할을 해왔다. 자영업자가 1천1백69만명으로 전체취업자(6천5백46만명)의 17.8%를 차지하는게 그것이다. 그러나규제가 없어지며 대형할인점과 의 가격경쟁에서 진 이들은 문을닫을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실업급여 위한 재정확대도 한계닛코리서치센터도 과잉고용상태에 있는 「실업예비군」이2백55만명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물론 이들이 모두 일자리를잃지는 않겠지만 재고조정이 끝나고 과잉설비에 대한 조정이 마무리되면 고용조정도 불가피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종신고용제도가 흔들리며 여성들이 취업전선에 뛰어들고 있는 것도 실업률을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그동안은 「남편-직장」「부인-가사」의 원칙이 지켜졌으나 남편이 실업위기에 몰리며 부인도 일자리 찾기에 나서고 있다. 부인이 집에 머무를 경우 비경제활동인구로서 실업자에 포함되지 않으나 일자리를 찾기 시작하는 순간부터는 실업자로 바뀌기 때문이다.실업자가 늘면서 고용보험의 적자도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94년 1백99억엔의 적자에 불과했으나 95년 1천6백28억엔, 96년2천9백45억엔, 97년 3천7백80억엔으로 늘어났다. 올해는 7천억엔이상으로 부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재정으로 부족한 재원을메우고는 있으나 언젠가는 실업급여도 제대로 받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낳게 하는 대목이다.그렇다고 뾰쪽한 대책이 있는 것도 아니다. 단기적으로는 정부의재정지출이 유일한 처방으로 보인다. 장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개인들은 허리띠를 졸라매고 소비보다는 저축에 나서고 기업들도투자엔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일본정부가 3차보정예산을 짜고 있는 것도 이같은 절박한 상황에 따른 것이다.그러나 재정확대는 언제까지 이어질수 없는 일이다. 일본의 국채발행 잔고는 이미 GDP를 넘어섰다. 게다가 금융안정을 위해 60조엔을 쏟아부어야 한다.전문가들은 지금부터라도 장기적 처방을 해야 한다고 지적하고있다. 혁신능력회복에 따른 활발한 창업외에는 대안이 없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현재 미국경제가 저실업상태에서 호황을 누리고있는 것이 개인의 창의성을 바탕으로 한 활발한 창업으로 구조조정에 따른 실업을 소화하고 있다는 지적에서다. 이는 유럽에서추진하고 있는 고용가능성(Employability)중심의 고용정책과도일맥상통한다. 지금까지의 고용정책은 가능한한 실업의 발생을억제하고 실제로 실업이 일어났을 때는 고액의 실업급여를 제공하는 것(프랑스에서는 바캉스 수당마저 준다)이었다. 그러나 이런 고용유지정책은 비용이 많이 든다. 산업구조변화에 적응도 어렵게 한다. 창업에 의한 일자리창출과 고용가능성에 따른 재취업으로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는 말이다.곤두박질만치는 경제와 높아만 가는 실업. 자신도 언젠가 일자리를 잃을지 모른다는 강박관념이 많은 일본인들을 우울증환자로만들고 있다. 요코하마시에 있는 요코하마산재병원에는 올들어새로 입원한 환자가 2천명을 넘었다. 신주쿠의 세이와병원에도구조조정에 따른 실업에 따른 고통을 호소하는 환자들이 끊이지않고 있다는 소식이다. 실업이 경제문제를 넘어 사회병리현상으로 비화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일본의 실업이 IMF신탁통치를 받고 있는 한국에게 결코 강건너 불이 아니라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