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마다 되풀이되는 일상의 틀을 벗고 훌훌 떠나고 싶어지는 늦가을. 휘-익하고 골목을 쓸고나가는 바람에 나뒹구는 낙엽이 발끝을 스치기라도 하면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픈 갈증이 인다. 움츠러든 어깨를 펴고 마음을 추슬러봐도 길 떠나길 재촉하는 가슴속울림은 여전하다.만추의 여정을 즐기기에 마땅한 장소로 고민한다면 일단 남도의끄트머리에 자리잡은 해남의 두륜산을 권한다. 특히 우리 전통차에 관심이 있다면 더욱 그렇다. 뜨거운 차 한잔이 그리워지는 이때에 꽃이 한창 피어나는 야생차밭을 찾아 차꽃을 감상하면서 다향에 푹 취할 수 있다. 조금만 시간을 내 두륜산의 정상에 오르면 남도의 풍광이 시리도록 눈에 와 박힌다. 결코 후회는 없다.늦가을 하루가 꿈결같이 느껴질 전라남도 해남의 두륜산과 대둔사(대흥사), 일지암의 차꽃을 소개한다.●두륜산=우리나라 뭍의 끄트머리인 전남 해남에 자리잡은 해발7백3m의 산으로 기암괴석과 울창한 숲이 어우러진 명산. 특히 늦가을 단풍이 붉게 물든 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는 수림터널은 전국에서 가장 길고 아름다운 산책길로 통한다. 늦가을 햇살이 단풍사이를 뚫고 비춰주는 산책로를 따라 삼림욕을 즐기다보면 신비로운 느낌마저 든다. 두륜봉의 자연암석 구름다리가 찬탄을 자아내며 정상에 오르면 다도해의 풍광이 그림처럼 펼쳐진다.●대둔사(대흥사)=신라시대에 지어진 대가람으로 조선시대 서산대사가 입적할 때에 「삼재가 미치지 않는 곳이니 나의 가사와유물들을 대흥사에 보관토록 하라」고 유언했다고 전해지는 명찰. 조선 정조시대에 우리나라의 다도를 살린 다성(茶聖)으로 칭송되는 초의선사의 손때가 절 곳곳에 남아있어 다도인들에게는성지처럼 여겨지는 절이기도 하다.특히 초의선사가 추사 김정희 다산 정약용 등과 깊이 교류하면서40여년간 기거한 곳으로, 다경(茶經)으로 칭해지는 동다송(東茶頌)과 다신전(茶神傳) 등 차에 관한 명저를 저술했다는 일지암이가장 유명하다. 일지암의 앞마당격인 5백∼6백여평의 야생차밭에는 지금 차꽃이 한창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다. 늦가을부터 꽃이피어 눈이 내릴때까지 피는 차꽃은 봄의 차밭과는 색다른 감흥을일으킨다.이밖에도 해남을 찾은 김에 당일코스로 둘러볼만한 명소들이 많이 있다. 고산 윤선도가 기거하던 집으로 조선 중기 호남 사대부가의 대표적인 건축물로 꼽히는 녹우당, 공룡 익룡 등이 남긴1백여점의 발자국들이 선명히 남아있어 세계 최대·최고의 화석지로 꼽히는 우항리 공룡화석지, 하늘과 맞닿은 다도해의 풍광과해돋이가 절경인 땅끝마을, 전남의 금강산이라는 달마산의 기암괴석이 병품처럼 둘러싸고 있는 미황사 등이 빠뜨리기에 아까운명소들이다.변성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