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썹은 사막에 떠오른 초승달같고 가는 허리는 더욱 잘록해 부드럽게 휘어졌으며 이마는 희게 빛나 곡선을 이루었고 허벅지는낙타의 깃털을 팽팽하게 집은 것처럼 탄력이 넘친다』고 하면 아랍 미인의 조건이다. 그러나 누구나 알수 있듯이 문명세계의 미녀상은 과히 다르지 않다.『작은 발은 풍만한 엉덩이를 위해 더욱 앙징맞으며 매끄러운 배와 동그랗게 패인 배꼽은 사향가루를 채웠으며 부드러운 혀는 촉촉히 젖어 있다』는 아라비안 나이트의 글귀도 마찬가지다.오늘날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이슬람 사원의 돔이 사실 아랍여인들의 엉덩이와 유방을 본뜬 것이라면 경건한 무슬림은 『이 무슨불경한 발언인고』를 연발하겠지만 어느 정도는 사실이다. 예술을 자연의 모방이라고 한다면 인체만큼 예술가들이 베껴먹을 만한 주제가 또 어디 있을 것인가.다시 경건한 무슬림들로부터 비난받을 일이지만 이슬람 사원의첨탑은 남근의 상징이라고 할수 있다. 이 남근의 상징과 여성의상징이 정말 기막힌 조화를 이루며 언덕 위에 솟아 있는 장면을떠올려 보라. 어떤 전문가들은 나아가 푸른 문장식과 벽 상감이야말로 여성성기의 상징이라고 열렬히 주장하고 있으니 사실 먼지나는 아랍도시들에 솟아 있는 성전들은 그 자체로 완벽한 미감을 드러내고 있을 뿐이다.미감으로 따지면 성애의 방종과 기술이 절정에 달했던 18세기말에서 19세기초까지 프랑스를 풍미했던 로코코 장식들은 모두 성감을 최고조로 끌어올리기 위해 연구되고 지어졌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을수 없다. 그것은 오늘날까지 면면이 이어져 가구점의고급 침대들은 모조리 그시대의 것을 흉내내고 있는데 그 화려한곡선들은 여인들의 나신을 흉내내고 여인들의 피부색을 드러내고여인들의 곡선을 베낀 것에 지나지 않는다.아랍 여인들의 흘러내리는 듯한 화려한 복식은 모두 여체를 최고조로 강조하는 것들이며 굳이 의식적으로 강조하지 않더라도 어떤 시대건 어떤 문화에서건 언제나 그 시대의 색정적 감각이 잠재화해 있다. 프랑스 고급 창녀들의 집들이 필수적으로 두고 있는 실내 분수들이나 베르사이유 궁전의 호화찬란한 거울들이 모두 인체의 아름다움을 외연적으로 확장한 것들이다. 이슬람 사원이 여체를 모방한 것이라는 주장은 물론 여러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제기하고 있는 것이지만 성(性)은 원래 성(聖)과 그리 큰거리를 두지 않고 서 있다.두가지가 모두 인간의 고도의 정신심리적 활동을 담보하고 있다는 데서 서로에겐 은밀히 관통하는 공통의 뿌리를 갖는 것이다.성의 즐거움을 공공연히 주장하는 밀교를 비롯해서 다양한 성애종교들이 있지만 동양에서건 서방에서건 성은 언제나 주술적 기능도 동시에 갖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