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백원을 줄테니 무이자로 1백만원을 빌려가십시오』. 누군가가독자여러분에게 이런 제안을 했다면 여러분은 『미친소리 그만두라』며 상대도 안할 것이다. 친척이나 친구에게서 급하게 무이자(공짜)로 돈을 빌리는 경우는 있지만 어떻게 이자를받으면서(즉 마이너스 금리를 적용받으면서) 돈을 빌릴 수 있는가라며….그러나 이런 「미친소리」가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 그것도 금융선진국으로 알려진 영국에서, 게다가 내로라하는 금융기관들 사이에서 말이다. 미국의 씨티은행이나 영국의 바클레이즈은행등이름만 들어도 「믿음이 가는」은행들이 지난주(11월첫째주)부터「이자를 붙여」 「대출세일」에 나서고 있다. 엔화를 3개월동안빌려가면 0.03∼0.04%의 이자(마이너스금리)를 얹어주겠다며 적극적이다.도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일본의 금융기관, 특히은행들이 부족한 달러를 확보하기 위해 엔화를 「덤핑」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일본 은행들이 보유하고 있는 엔화를, 외국은행들의 달러화로 일정기간동안(예를들어 3개월) 바꾸는(스왑) 계약을 하면서 0.1%정도의 웃돈(마이너스금리)을 얹어주고 있다. 런던은행간시장에서 엔화금리가 마이너스로 떨어진 것, 바로 이것이 현재 일본 은행들의 위기상황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11월말, 12월위기설」이 흉흉하게 나돌고 있는 근거이기도 하다.일본 은행들은 현재 도쿄미쓰비시은행 일본흥업은행 농림중앙금고등 일부를 제외하곤 국제금융시장에서 달러를 조달할 수 없는실정이다. 산더미같은 부실채권등으로 인해 대외신용도가 추락한탓이다. 지난 10월중순까지만해도 농림중앙금고등 그나마 신용이양호한 금융기관이 대신 달러를 빌려와 다른 은행에 나눠줘 급한불은 끌수 있었다. 그러나 무디스가 지난 10월23일 도쿄미쓰비시산화 일본흥업은행등의 신용등급을 인하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발표한 이후 이런 「기대기」가 불가능해졌다. 일본 수출입은행이 내년 3월말까지 정부보증으로 30억달러를 조달해 일본기업에 공급키로 한 것도 이와관련이 깊다.◆ 달러 모으기 혈안 … 해외자산도 축소벼랑에 몰린 일본 은행들은 일본내 콜시장에서 조달한 엔화와 예금자 예금중 일부를 헐어 달러와 바꾸는데 혈안이 되고 있다. 그러나 이것마저 여의치가 않은 실정이다. 외국은행들이 웃돈을 받고 달러와 교환한 엔화를 운용하기가 어려워진 탓이다. 외국은행들은 그동안 이렇게 바꾼 엔화를 헤지펀드에 대출해왔다. 그런데미국의 대형헤지펀드의 하나인 LTCM이 지난 9월말 사실상 파산하면서 헤지펀드에 대출을 억제하고 있다. 엔·달러스왑을 꺼리게되고 웃돈은 자꾸만 커져 가고 있다.일본은행들은 이와함께 해외자산축소에 나서고 있다. 대출을 회수하고 보유하고 있는 미국국채나 부동산을 내다팔고 있다. 일본은행들은 지난 6월말 현재 해외여신을 1년전보다 14.8%나 줄인것으로 집계됐다. 최근에는 여신축소 속도가 더욱 빨라지고 있다는게 금융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실제로 일본에 진출해 있는 한국은행에 대한 대출회수 요청이 끊이지 않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일본 은행들의 한국에 대한 여신은 지난해 6월말 2백40억달러에 달했다. 그러나 지난해말 IMF위기를 겪는동안 수십억달러를회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올해말에는 그런 회수압력이 더욱강해지고 있다는 얘기다.다행히 △일본의 금융안정화법제정과 적극적인 재정확대정책 △미국의 신속한 금리인하 및 민주당의 중간선거승리 △세계적인금리인하 협조등에 힘입어 세계금융시장이 안정기미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러시아와 라틴아메리카(특히 브라질)의 위기우려△미국의 헤지펀드 환매사태와 금융기관부실화 우려 △일본의 후속조치지연등 부정적 요인도 적지 않다.일본의 위기는 그대로 한국에 영향을 미친다. 사느냐 죽느냐의기로에 선 일본 은행들이 한국사정을 보아줄리 만무하다. 지난해말 일본에 손벌렸다가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해 IMF신탁통치를받게된 전철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최악의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방책을 마련하는게 98년 연말의 최대 화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