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주도하 '빅딜-워크아웃' 김대중 정부는 출범이후 지금까지 기업부문에 대한 개혁을 다각도로 추진해왔다. 기업경영의 투명성과 책임 경영 체제의 확립은김대통령이 입버릇처럼 강조해온 덕목들이다.그러나 외국인들도 지적하듯이, 기업부문은 금융쪽에 비해 상대적으로 구조조정이 활발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금융쪽의 사정이 다급했던 탓도 있지만 재벌그룹을 구성하고 있는 각종 장치들(상호지급보증 출자 긴밀한 상호의존도 등)이 워낙 복잡다단했기 때문이다. 이른바 「선단식 경영」의 고리를 끊기에는 현실적인 장벽들이 너무도 많았다.그렇다고 정부가 이런 난관들을 피해가거나 재벌그룹들과 어물쩍「타협」하려는 것 같지는 않다. 금융 구조조정도 일단락된만큼한쪽으로 정책역량을 집중시킬 여건도 조성돼있다는 판단이다.빅딜과 워크아웃을 통한 재벌 압박은 이미 시작된 상태다. 정부가 기업들에 전하려는 메시지는 문어발식 확장에 따른 부실경영에 철퇴를 가하고 선단식 경영을 해체하라는 것으로 요약된다. 정부는 이같은 구상을 속전속결로 가시화시키려고 한다. 정권 출범후 1년이 지나면 어떤 형태로든 힘이 빠지고, 그러면 구조조정노력은 수포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김대중대통령은 작년 대선이 끝난 직후부터 사실상 대통령직을 수행했다고 볼수 있다. 김대통령의 임기 1주기는 바로 12월이란 얘기다.정부 일각에선 재계가 이처럼 다급한 사정을 읽고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시간끌기를 하고 있다는 의구심을 보이고 있다. 금감위의 고위 관계자는 『재계 총수들은 앞에서 고개를 끄덕이다가도돌아서면 까먹는다』고 말했다.공식자료들도 이런 불만을 담고 있다. 금감위는 지난 5일 정·재계 간담회에서 『대규모 자금조달로 5대그룹의 부채비율은 오히려 높아지고 있고 외자유치 실적도 금년 5월 발표한 총2백90억달러의 16%에 불과하다』며 6대이하 그룹과 비교한 자료까지 내놨다. 금감위는 특히 선박용엔진 발전설비부문 등의 실행계획을 제출하지 않고 있다며 재계의 약속위반을 추궁하기도 했다. 어쨌든이런 의구심은 5대그룹에 대한 압박 강도를 한층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3단계 구조개편론금융감독위원회는 5대그룹 계열을 △업종단위로 상호연결고리를끊은뒤 △같은 업종내 계열사들이 저마다 독립기업화하고 이어△외자유치를 통해 재무구조를 건실화한다는 3단계 구조개편론을제시했다. 이를 재벌해체론 시각에서 보면 재벌분할ㅃ재벌해체ㅃ독립기업 육성 등으로 해석할 수 있다.금감위는 올연말까지 업종단위로 상호지급보증관계를 해소할 것을 요구했다. 업종간에 얽히고 설킨 지보관계를 끊지 않고선 구조조정이 안된다는 이유에서다. 여기에는 5대그룹이 부실화될 경우 국민경제에 미치는 충격을 최소화하겠다는 뜻도 담겨 있다.A라고 하는 계열사가 문제될 경우 B라는 보증기업이 무너지고 다시 또다른 C기업이 무너지는 연쇄부도를 업종단위로 국지화하려는 안전장치인 셈이다.정부는 이를 위해 업종간 지보맞교환을 허용키로 했다. 금융기관이 너무 많이 세운 보증이나 이중으로 세운 보증도 풀어줄 방침이다. 현재 작업반을 구성해 해결책을 찾고 있다. 한 관계자는『업종 단위로 끊어놓으면 5대그룹이 더이상 국민경제를 「볼모」로 큰소리를 치지는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이같은 재벌분할 및 해체를 위한 인프라는 어느정도 구축돼 있다. 상반기에 이미 결합재무제표작성, 상장법인의 사외이사 선임의무화, 자기자본 5배초과 차입금이자의 손비불인정, 상장기업소수주주권 강화, 계열주(主)의 이사등재, 기관투자가 의결권행사 등 재벌을 압박하고 견제하는 장치가 만들어졌다.◆ 빅딜이 전부가 아니다재계는 반도체 등 7개 업종의 사업구조조정(빅딜)에 합의했다.전경련은 이해관계를 조율하느라 수많은 협상을 했다고 밝혔다.그러나 정부는 이런 재계의 고생과 고민을 그리 높게 평가하지않는다. 오히려 빅딜이 전체 기업구조조정의 흐름을 방해했다고보고 있다. 재계와의 수싸움에서 졌다는 생각도 하고 있다. 재계의 시간끌기에 말려들었다는 것이다. 한 관계자는 『빅딜이 처음부터 논의되지 않았다면 지금쯤 5대그룹에 대한 구조조정은 마무리단계에 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정부와 채권 금융기관들은 빅딜안을 그대로 수용하지 않을 방침이다. 사업 타당성을 따져 「칼질」을 해 수정안을 제시할 예정이다. 또 다른 계열사에 대한 구조조정과 병행해 처리할 계획이다. 빅딜은 필연적으로 다른 계열사에 대한 워크아웃과 동시에추진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빅딜 업종의 일부는 청산이나 정리가 불가피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은행을 통한 5대그룹 구조조정정부는 처음부터 은행을 통한 구조조정을 표방했다. 은행 돈을안쓰는 기업이 없는만큼 은행이란 지렛대를 활용하면 기업에 대한 구조조정과 사후관리가 가능하다고 판단했기때문이다.구조조정의 핵심수단은 워크아웃(Work-out·기업개선작업). 워크아웃은 「군살빼기」라는 에어로빅 용어를 미국의 GE(제너럴일렉트릭)가 원용, 불필요한 사업부문을 정리한데서 연유한다는게 정설이다. 금융감독위원회는 세계은행(IBRD)등의 권유로 이런 워크아웃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워크아웃은 한마디로 주주 채권자 경영진 등 이해관계자들이 똑같이 손실을 부담한다는 전제아래 기업가치를 높이는 작업이다. 워크아웃 과정에서 주주는 감자로 지분이 급감할 수 있다. 그 결과 대주주는 소액주주로 전락할 수 있다.채권자는 원금을 일부 탕감해주거나 금리를 내려줘야한다. 경영진도 책임을 지고 물러날 수 있다. 직원은 직장을 잃거나 월급을깎인다. 그 결과로 기업이 회생하는 것이다. 이점에서 워크아웃은 과거 금융지원을 하면서 아무런 조건을 붙이지 않던 「협조융자」와는 다르다.이런 워크아웃을 5대그룹에 적용하면 어떻게 될까. 빅딜 대상업종의 경우 통합법인은 자산과 함께 부채일부만을 넘겨받을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되면 나머지 부채는 금융기관과 다른 계열사들이 떠안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다른 계열사에 대한 워크아웃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정부는 주력기업 1∼2개를 대상으로 선정해 시범적으로 워크아웃을 하는 방안을 5대그룹에 주문했다.업종별로 나뉜 5대그룹이 이런 워크아웃을 받게 되면 상당수 사업부문은 정리될 수밖에 없다. 정부는 비핵심부문을 경영자매수(MBO) 종업원매수(EBO) 등을 통해 분사화(Spin-off)하는방안 등을 예시했다.워크아웃이후 5대그룹이 어떻게 바뀔지는 워크아웃을 진행중인6∼64대그룹과 중견대기업을 보면 쉽게 짐작할 수 있다. 6∼64대그룹은 3분의 1정도인 16개그룹 계열사가 워크아웃을 받고 있다.쌍용을 비롯, 고합 신호 통일 진도 우방 동아건설 거평 세풍 강원산업 갑을 벽산 신원 대백 동국무역 등이 여기에 속한다. 맥슨전자 동화 한창 피어리스 한국컴퓨터 남선알미늄 경기화학 세신대경특수강 동방 영창악기 성창 제텍스 등 16개계열 20개 중견대기업에 대해서도 워크아웃이 진행되고 있다.이들 워크아웃기업은 한결같이 주력사업을 제외한 나머지 사업을과감히 정리하는 방안을 추진중이다. 5대그룹도 수개에서 수십개계열사를 거느린 한덩어리 재벌이 아니라 여러개의 소그룹으로쪼개지거나 여러 계열사를 합병해 거대기업으로 변신할 가능성이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