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부천시에 자리잡은 (주)신코 서경호(38) 사장의 하루일과에서 하루도 빠지지 않는 일이 있다. 전자기타를 연주하는 일이다. 그런 「기타리스트 서사장」에게 얼마 전 경사스런 일이 있었다. 경기도 부평의 한 공장을 인수, 지난 7월 기타제조회사(주)신텍의 공장을 설립한 것이다. 대지 1천2백여평에 건평1천6백평, 직선거리만도 1백10m에 이른다. 미국의 깁슨과 샘슨,일본의 롤랜드 등 기타·앰프와 같은 악기분야에서 첫 손가락에주저없이 꼽히는 업체들로부터 축하차 온 사람들의 탄성이 나왔다. 이들이 한국의 조그만 기업을 찾은 이유는 간단하다. 「무시해서는 안될 중요한 거래선」이기 때문이다. 앰프전문업체인 신코에서 직접 기타제조에 나선 것도 그들의 제의가 빗발친 것이한 요인이었다. 세계 악기업계에서 신코가 갖는 위치를 가늠할수 있는 대목이다.◆ '무시해선 안될 거래선' 평가받아사실 신코는 일반인에게는 생소한 이름이지만 세계 악기업계에서는 「작은 거인」으로 통하는 기업이다. 지난 89년 설립돼 96년에는 5백만달러 수출탑을 받았으며 지난해에는 9백80만달러를 수출하기도 했다. 올해의 경우 『1천3백만달러 이상의 수출이 무난하다』는 것이 권영태 영업기획 이사의 말이다. 내년 수출목표는2천만달러로 잡고 있다. 제품도 앰프하나로 시작해 지금은 기타56종류, 앰프 1백여종류, 콘솔 15종류 등 2백여종류의 악기를 생산한다.이처럼 초고속 성장을 거듭하며 탄탄하게 자리잡은 신코지만 시작은 미미했다. 인천의 한 중소기업체에 근무하던 서사장이 퇴직금과 여기저기서 모은 돈 4백만원을 갖고 세운 게 첫 출발이었다. 『초보자를 위한 악기제조가 꿈이었다』는게 서사장이 설명하는 창업 동기다. 서사장 자신이 고등학교 때부터 기타에 푹 빠졌으며 대학시절(경북대 무역학과 졸업)에는 보컬그룹에 가입해기타리스트로 활동하기도 한 이력을 보면 이해가 간다.창업후 서사장은 샘플을 만들어 바로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초보자용 앰프라는 제품컨셉과 품질을 강조하며 다리품을 팔았다. 그러나 바이어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비행기삯을 포함한교통비, 숙식비, 샘플제작비 등을 빼고나니 창업비용중 남는 돈은 1백만원 남짓. 참담한 실패가 코앞에 와있는 듯 했다.그러나 『죽으라는 법은 없었다』고. 다행히 딘 마클리사로부터10만달러어치의 주문을 받아낼 수 있었다. 곧 바로 귀국해 하청업체를 골라 제작에 들어갔다. 그러나 엉뚱한데서 일이 꼬였다.하청업체가 부도 위기에 몰린 것이다. 하청업체의 사장이 인수를제의했다. 결국 납기에 쫓겨 부채를 안는 조건으로 인수했다. 인수 후 (주)신코라는 이름의 법인으로 전환하고 생산에 들어가 마침내 무사히 제때에 물건을 보낼 수 있었다. 그후 품질에 만족한미국업체로부터 추가주문이 밀리면서 신코의 성장세가 시작됐다.그러던중 지난 91년 세계적 기타업체인 펜더(Fender)와 계약을맺으면서 품질에서 다른 업체들로부터 인정받고 세계악기시장에신코의 이름을 알리는 계기를 맞는다.그러나 호사다마라고 걸프전이 터지면서 위기가 찾아왔다. 수출의 40%를 차지하는 최대 거래선이었던 펜더사와의 거래가 1년6개월만에 끊긴 것이다. 달러고환율에다 인건비상승 등으로 원가상승 압력이 심해지면서다. 『창업후 최대위기였다』는게 서사장의기억이다. 그러나 『이런 상황을 미리 대비해왔던데다 종업원들과의 합심으로 무사히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고. 그래서인지서사장의 종업원들에 대한 관심은 색다르다. IMF로 환율이 올라발생한 이익을 직원들에게 퇴직금으로 모두 정산해줬는가 하면올 한해치 보너스도 상반기에 모두 지급했다. 입사 1년만 넘으면무조건 해외연수를 보내는 일도 계속하고 있다. 『어려울수록 직원들에게 잘 해주자는게 지론』이라고.◆ 유명브랜드 OEM 독점이때의 경험으로 신코는 거래선을 미국 일변도에서 일본 유럽 등으로 다변화하는 한편 품질 개선에 주력했다. 음질개선을 위해사장과 직원들이 밤새도록 기타를 두들기며 데이터를 분석·축적했다. 『사운드를 잡자는게 당시 직원들과의 구호이자 슬로건이었다』는게 서사장의 기억이다. 부품만도 4백여가지가 들어가는앰프의 음질을 좌우하는 것은 캐비닛 즉 나무케이스. 이런 이유로 직접 캐비닛 제조라인도 갖췄다. 이런 노력으로 깁슨 펜더 샤벨 비시리치 등 유명업체로부터 주문이 끊이지 않았다. 『유명브랜드들의 OEM을 거의 독점하다시피 했다』는게 서사장의 말이다.주문에 맞추기 위해 사장을 포함한 전직원이 생산현장에서 밤을새운 일도 부지기수다. 그 결과 창업 9년만에 세계악기시장에서신코를 모르는 업체가 없을 정도가 됐다.그러나 여기에서 만족하지 않는다. 『한국 악기업계의 1세대인세고비아 삼익 영창 등이 세계시장에 닦아놓은 기반을 잊지 않고있다』는게 서사장이 의미있게 한 말이다. 『(그들의 뒤를이어)세계 최고의 악기업체가 되고 나아가 악기강국을 만들겠다』는 것이다.그 구체적인 방법을 서사장은 브랜드 강화와 디지털 악기에서 찾고 있다. 한국이 세계 중저가 악기시장의 70% 이상을 차지하지만자체상표의 파워브랜드가 없어 실패했다는 것이다. 『OEM의 부가가치는 20∼30%에 불과하지만 독자브랜드는 40∼50%까지 가능하다. 가격경쟁보다는 자체모델로 고부가가치를 추구할 계획』이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얼마 전 시판에 들어간단일렉트로(Danelectro)라는 전자기타의 성공은 상당히 고무적이다. 50년대 유행했던 모델로 올해 미국 악기시장에서 최고의 히트상품으로 떠올랐다. 기술적인 면에서는 음이 부드러운 아날로그 기술을 기반으로 하고 여기에 디지털기술을 접목해 보다 편리하고 음질에서도 뛰어난 악기를 만든다는 생각이다.『디지털기술을 응용하면 부가가치가 4배이상 늘어납니다. 이를위해 전문인력을 영입하고 기술개발에 들어갔습니다.』 바이어상담 기술습득 등으로 해외를 돌아다니느라 사용한 여권만 5개나되지만 애들이 어떻게 커가는지 몰라 그게 못내 미안하다는 서사장. 그나마 『희생이 없으면 정체되고 정체는 곧 퇴보라는 말로스스로를 위안 삼는다』고. 세계시장을 평정하겠다는 서사장의다음 결실이 기대되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