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광진구 구의동에 거주하는 송모(36)씨는 요즘 잠자리가 편할날이 없다. 지난 97년7월 김포 양촌리에 건설되는 희영공영의 미분양아파트를 분양받았지만 지금 부도가 나 공사가 진척되지 않기 때문이다. 미분양아파트라고 덥석 문 자신의 경솔함을 탓하기도 한다.그러나 비난의 화살은 역시 건설업체와 주택공제조합으로 갈 수밖에 없다.『입주예정일인 8월이 한창 지났는데도 입주는 커녕 중도금 때문에 살던 집을 팔고 옮아 앉은 지금 전셋집의 계약기간을 언제까지 잡아야할지 고민입니다.』 뿐만 아니다. 『입주도 안된 상태에서 고금리의 대출금을 꼬박꼬박 갚아나가느라 분통이 터집니다.』 부아가 치밀어 편히 잠을 청하지 못하는 날이 많아도 그나마송씨 자신은 낫다고 위로한다. 조만간 공사가 재개돼 입주를 꿈꿀수 있기 때문이다.하지만 함께 분양받은 다른 사람들의 경우 「기막힌 처지」도 많아안타깝기 그지없다는 게 송씨의 동병상련이다. 『분양후 월세로 나앉은 사람들이나 할인혜택을 준다는 업체의 말에 선납금을 냈거나완납한 사람들의 경우 이를 인정해주지 않는다는 공제조합의 말에억장이 무너졌을 겁니다. 집이 전 재산일텐데…. 정말 안됐죠.』인천시 서구 가좌동에 거주하는 김모(33)씨도 건설업체의 부도로딱한 처지에 처해있기는 마찬가지다. 지난해 12월 수원 정자지구에서 청구가 분양한 24평형을 분양받았다. 내집마련을 꿈꾸며 1년 이상을 부어온 청약통장을 썼다. 주변에서 운이 좋다는 말도 나왔다.내집이 생긴다는 마음에 살던 전셋집을 빼서 계약금과 중도금을 아무 부담없이 납부했다.하지만 들뜬 기분은 잠시.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라고 지명도가 높고 탄탄한 업체라 믿었던 청구』가 올 초에 부도가 난 것이다. 부도후 이런저런 걱정으로 시도 때도 없이 한숨만 나왔다는 김씨. 누굴 탓할 수도 없는 처지였다. 여전히 중도금납부가 골칫거리였다. 계속 넣자니 불안하고 안 넣자니 꺼림칙하고. 고민 끝에 겨우겨우 중도금을 만들어 4회까지 냈다. 덕분에 살림집은 동서집의더부살이를 거쳐 부모님이 거주하는 집의 반지하 방 2개로 옮길 수밖에 없었다. 생활의 불편함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3살배기 자식을볼 때면 누구랄 것 없이 화가 치밀어 올랐다. 『원래 내년 10월이었던 입주가 지연되는 게 가장 화가 납니다.잘해야 2000년 말께나 가능할 것으로 보이는데 그때까지 고생할 생각을 하면….』 김씨는 요즘 또 다시 전전긍긍하면서 이리저리 뒤척이는 밤을 맞고 있다. 내년 5월로 다가온 중도금 때문이다. 그흔했던 대출도 어려운데다, 대출시 입주가 늦어지는데 따른 이자납입기한이 늘어난다는 부담 때문이다. 그렇다고 연체하자니 적잖은이자부담이 딱하니 버티고 있고. 『회사봉급도 깎여 생활도 어려운데다 끝이 언제인지 확신할 수도 없죠. 부모님들 눈치는 보이고 이래저래 힘들죠. 그렇다고 별 다른 뾰족한 수도 없고….』강원도 춘천시 우두동의 박모(40)씨의 경우는 아파트분양후 건설업체의 부도로 피해를 본 입주예정자 가운데 최악의 상황이다. 지난해 10월 춘천 칠전지구에서 분양에 나선 삼신건설의 미분양아파트 24평형을 분양받았다. 건설업체에서 분양가 6천7백만원의 75%인5천만원을 대출해준다는 조건이 있어 큰 자금부담이 없어 4백18세대 모두가 대출을 받았다. 원래 할부금융사에서 해주는 것으로 돼있었으나 분할대출을 조건으로 내걸어 장기신용은행으로 대출은행이 바뀌고 돈은 일시에 대출됐다.『대출금리도 11.9%로 낮다고 판단해 전혀 의심이 없었다』는 박씨. 하지만 빛좋은 버섯에 독이 들었다고 그 대출이 화근이었다.돈은 회사통장으로 입금돼 3회에 걸쳐 모두 1백50억원이 빠져나갔다. 돈이 나간지 얼마 안된 지난 1월 삼신건설은 부도가 났고 사업주는 잠적했다. 사기라는 의심이 든 입주예정자들은 대책위를 구성하고 TV의 수배프로그램에 의뢰를 하는 등 갖은 방법을 다 썼다.하지만 업주는 오리무중이었다.주택공제조합에서는 「5천만원은 선납금이라 책임질 수 없다」며발을 빼고, 보증을 선 대한보증보험에서는 「삼신건설이 없어졌으므로 계약자가 책임을 져야 한다」며 가압류통고를 보냈다. 『이래저래 분양받은 사람들만 죽어나라는 꼴이 됐다』는 박씨는 『이일로 이혼한 부부도 많이 생겼고 직장을 잃은 사람의 경우 장사라도할 요량으로 차량할부구입을 의뢰해도 보증보험에서 막고 있어 옴짝달싹을 못하고 있다』며 입주예정자들의 딱한 처지를 전했다.『춘천 의정부 등의 삼신건설아파트를 분양받았다가 길거리로 나앉게 된 사람만도 1천7백여명』이라는 박씨. 어떻게든 내집 한 칸이라도 마련해 살아보려는 서민들 가슴에 못을 박은 삼신건설, 「나몰라라」하고 손을 내젓는 정부·공제조합·장기신용은행이 원망스럽다. 그래서 분한 마음 억누르며 불법대출과 분양보증금 발급책임을 물어 각각 장기신용은행과 서울주택공제조합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하는 한편 다른 입주예정자들과 주택공제조합앞에서 시위를벌이며 대책을 호소하기도 했다. 하지만 가슴 한 쪽을 숯덩이처럼타들어가는 무기력증으로 하루하루가 힘들다.『건교부와 주택공제조합에서 서민들을 위해 발벗고 나서줘도 시원찮을 판인데 모두 책임만 회피합니다. 검·경찰도 삼신건설대표를못 잡는건지 안 잡는 건지 알 수 없고요. 내집마련한다고 서민아파트 하나 분양받았다가 이런 고생을 할 줄은….』 단순히 건설업체의 부도와 그에 따른 입주예정자의 피해라고만 치부할 수 없는,IMF시대의 고단한 삶이지만 그래도 끈질기게 살아갈 욕심이라는 박씨가 밝힌 「서민의 분노」다.◆ 주택공제조합의 부실특정 주택건설업체가 부도나면 공사이행에 연대보증을 선 다른 업체가 대신 공사를 완료해 분양을 해줘야 한다. 그러나 연대보증사마저 도산하면 최종 책임은 주택사업공제조합으로 돌아온다. 물론도산업체는 조합측과 분양보증계약을 맺은 업체라야 한다.공제조합은 즉시 제3의 건설업체를 선정, 공사를 승계시키거나 공정률이 낮은 경우에는 계약금과 중도금을 환급해주게 된다. 그런데IMF이후 이런 완충장치는 소용이 없어져버렸다. 재원이 고갈되면서분양보증에 따른 엄청난 공사비를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조합이 부실화된 원인은 딴데도 있었다. 출범당시 상호부조단체의성격으로 태동한 조합은 값싼 수수료를 대가로 조합사들의 대출보증 요구를 거의 무한대로 들어주었다. 조합원들은 동시에 출자자였던 탓에 대출 심사도 주먹구구식이었다. 게다가 운영자금명목으로자체 융자도 실시했다. 이런 상태에서 대출보증을 서준 업체들이무더기로 부도나자 대위변제부담은 고스란히 조합으로 돌아왔다.지난 9월말까지 조합이 대위변제해준 금액은 무려 1조8천7백억원에달한다. 또 IMF이후 차입금은 3천억원 가까이 증가한 반면 각종 보증수수료 수입은 3백38억원에 불과해 문자그대로 「껍데기」만 남게되었다.조합은 뒤늦게 분양보증 수수료율을 올리고 조합원사에 대한 운영자금 융자한도를 줄이는등 자구책을 마련해봤지만 부실규모가 워낙커 한계를 드러내고 말았다.◆ 정부대책정부는 건설업체의 연쇄도산으로 기존의 분양보증제도가 전혀 힘을쓰지못하자 부실화된 주택공제조합에 공적자금을 투입하고 있다.주택사업공제조합은 조합사들의 잇따른 부도로 이미 자본금의70%이상을 까먹은 상태.공제조합 회생방안은 다름아닌 주식회사로의 전환. 정부와 25개 채권금융기관이 지난 12월1일 서울 여의도 주택은행 본점에서 회의를갖고 주식회사(한국주택보증)전환을 모색하고 있는 조합에 대한금융지원 방안을 최종 확정했다. 이날 회의에서 채권금융기관 대표들은 새로 출범하는 한국주택보증에 2천억원을 출자하고 올해안에주택은행 1천억원을 포함,모두 2천억원을 조합에 신규 대출키로합의했다. 또 조합이 부도업체 대신 갚아야할 미변제금(지난 10월말 현재 6천5백억원)을 대출금으로 전환하고 금융기관차입금(5천4백억원)도 최소 1년 이상 상환을 연장해주기로 했다.금리는 주택은행 우대금리에 1%를 더한 10.9%로 결정했다.이에앞서 정부도 지난달 조합에 대한 기존 융자분 3천억원과 신규융자분 2천억원등 모두 5천억원을 출자전환하고 조합의 유동성 확보를 위해 연말까지 1천억원을 지원키로 확정한바 있다. 이에따라조합은 앞으로 주택건설촉진법및 시행령 개정과 주식회사 전환,주주총회 의결을 거쳐 내년 3월 정부와 금융기관,주택업체가 공동출자하는 「한국주택보증주식회사(가칭)」로 거듭나게 된다. 이 회사는 정부와 채권단이 직접 출자하기 때문에 아파트 보증대상인 전국 1백67만 가구는 사실상 정부의 직접적인 보호를 받게 됐다. 신규 계약자나 입주예정자 입장에서 보면 든든한 보호장치가 생긴 셈이다.그러나 입주예정자들이 유념해야할 사항은 한두가지가 아니다.1. 신규 아파트 분양=건교부는 신규 수요자 입장에서 해당 아파트가 조합의 분양보증을 받은 경우에는 안심하고 신규계약을 체결해도 좋으며 업체가 잘못될 경우 1백% 책임을 지겠다고 밝히고 있다. 이에따라 계약자는 업체가 조합의 분양보증을 확실하게 받았는지 사전에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2. 중도금과 잔금납부=현재 공제조합의 파산 우려 때문에 중도금을 내지 않고 연체시켜온 계약자들이 많다. 하지만 정부의 출자방침이 확고한만큼 어차피 입주할 생각이면 중도금을 제때 내는 것이좋다. 건교부가 아파트 분양보증 58만가구등 모두 1백67만가구에대해 모든 책임을 지겠다는 방침을 밝히고 있어서다. 분양보증 내역에는 업체가 부도를 내 조합이 떠안고 있는 부도사업체 아파트물량 17만가구도 포함된다. 특히 현행 업체별 중도금 연체금리가시중금리보다 훨씬 비싼 17∼25%선이기 때문에 굳이 높은 금리를부담하면서 연체할 이유는 없다.3. 중도금과 잔금 선납=정부가 입주예정자와 입주자들을 1백% 보호한다고 해서 중도금이나 잔금을 계약서에 정해진 날짜보다 미리낸 선납부분까지 보호해주지는 않는다. 손봉균 건교부 주택관리과장은 『조합 보증약관상 분양일정에 따라 납부한 계약금과 중도금만을 보호해준다는 규정이 있다』며 『따라서 선납한 돈은 보증을받을 수 없고 인수 대상도 아니므로 이를 자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미리 내서 법적으로 골머리를 앓기 보다는 정해진기간에 내고 법적인 보호를 완벽하게 받는 편이 낫다는 얘기다.4. 하자보수 보증=주택업체는 완공후에도 아파트 각 부위별로 최장 10년까지 하자보수를 해줄 의무가 있다. 또 현행법은 업체 도산에 대비,조합의 하자보수보증 가입을 의무화하고 있다. 따라서 해당 아파트가 이 보증에 가입했다면 이 부분에 대해서도 보증의무를지키겠다는 것이 건교부측 입장이다.◆ 정부대책의 문제점조합자산 부실정도와 조합원 지분에 대한 감자문제를 놓고 조합측과 회원사가 마찰을 빚고 있어 내년 3월로 예정된 주식회사 출범이순조롭게 진행될지 의문이다. 더욱이 조합의 자산재실사,과거의부실원인 규명및 이에따른 책임자 처벌 요구등 주요 변수가 도사리고 있어 공식출범까지는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특히 지난달 26일 열린 조합원 총회에서 자산재실사작업은 정부와채권금융기관과의 협의를 통해 조합원이 선정하는 회계법인이 담당하고 주택업계가 실사작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합동실사지원팀을구성키로 합의함에 따라 어떤 결과가 나올지 주목된다. 이 결과에따라 조합의 운명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정부대책으로도 구제되지않는 입주예정자들이 있다는 점이다. 삼신건설처럼 사업주가 악의적으로 공사비를 횡령하고 달아날 경우 입주는 커녕 돈을 돌려받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입주자들의 이같은피해가 주택건설업계의 방만한 보증체계와 허술한 관리에서 비롯된만큼 정부차원에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게 피해자들의 하소연이다.또 화의나 법정관리가 진행중인 건설업체의 경우 입주예정자들이하염없이 기다려야하는 것도 문제다. 화의나 법정관리 신청기업의경우 법원에서 기각판정이 내려지기 전까지는 건설회사들이 자체적으로 공사를 진행토록 돼 있는 현행 규정 때문이다. 그러나 부도난회사들의 취약한 자금력을 감안하면 입주예정자들은 기다리는 시일만큼이나 고스란히 금융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분양보증 대상이 아닌 주요사항(입주예정자 관련)●정상적인 분양계약이 아닌 부도업체가 공사대금 등으로 아파트를준 대물계약, 차명 또는 이중계약●이미 납부한 분양대금에 대한 이자, 비용 기타 이에따라 발생된비용●부도난 사업주체가 입주자모집공고에 정한 입주예정일내에 입주를 시키지 못한 경우의 지체상금●분양대금 연체금(지연이자)●시업주체가 지정·통보한 은행계좌(조합이 계좌변경을 서면으로승인한 경우 포함)에 납부하지 않은 계약금 및 중도금●보증사고일(부도, 파산등) 이후에 사업주체에 납부한 분양대금●보증사고일(부도, 파산등) 이전 분양계약 해지로 부도난 건설회사가 반환해야 할 분양대금●입주자모집공고 전에 분양계약을 체결하고 납부한 분양대금●입주자모집공고(안)에 따라 납부할 중도금을 지정된 납부일 이전에 선납한 경우의 선납금액★ 인터뷰 / 민태기 주택사업공제조합 관리담당 상무▶ 현재 부도난 건설업체들의 공사현장은 어떻게 관리되고 있나.조합내 실사팀이 현장을 방문, 사업성을 검토해 공사가 많이 진행된 곳은 승계 시공업체를 선정해 공사를 마무리하고 진척도가 낮은곳은 계약금과 중도금을 돌려주고 있다.▶ 사업성 검토가 너무 늦다는 불만이 많은데.제한된 인력으로 하다보니 불가피했다. 그러나 12월1일부로 분양이행부를 신설, 분양보증업체에 대한 입체적인 관리에 들어가 검토시일이 더 단축될 것이다.▶ 입주예정자들은 언제쯤 입주가 완료되는지 궁금해 하고 있다.당초 계약시점보다 짧으면 1개월, 길게는 6개월 정도를 더 기다리면 입주할 수 있다.▶ 그런데 입주예정자들은 그런 약속을 믿지 않는 것 같다.장담한다. 기다려달라.▶ 조합자체의 문제는 어떤 것인가. 주식회사로 전환하면 모든 문제가해결되나.현재 유동성부족이 가장 큰 문제지만 정부와 금융기관으로부터 지원이 본격화되면 잘 해결될 것으로 본다.▶ 입주예정자들이 조합을 원망하는 이유는 무엇때문이라고 생각하나.그동안 조합운영에 있어서 경영마인드가 부족했다는 점을 인정한다. 이 때문에 조합이 부실화되고 공신력도 많이 떨어졌다. 입주가지연되는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싶다.▶ 입주예정자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얘기가 있나.조합을 믿고 기다려 주어야한다. 문제가 생기면 즉시 입주자대표를소집, 원만하게 대화로 수습해야한다. 성급한 집단행동은 전혀 도움이 못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