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의 대신종합주방기구 사장(48)은 인터뷰를 하는 동안 틈틈이시계를 들여다 봤다. 뭔가 바쁜 표정이었다. 이윽고 점심시간. 직원들이 한두명씩 인근 밥집으로 향하기 시작할 때 그는 빵과 우유를 챙겨 황급히 차에 몸을 실었다.그가 떠난 뒤에야 한 직원은 사장이 어디로 가는지를 말해줬다. 오후 2시까지 충북 음성 꽃동네에 가기로 약속돼 있다는 것. 서울사무소가 있는 성수동에서 음성까지 가는데 두시간은 결코 충분한 시간이 아니었다. 꽃동네에는 대신종합주방기구가 설치한 주방설비가있다. 이 설비를 통해 만들어지는 맛있는 밥은 이곳에서 삶을 영위하는 수천명의 사람들에게 일용할 양식이 된다. 다른 곳의 애프터서비스는 직원들에게 대부분 맡기지만 음성과 가평의 꽃동네만큼은될수 있는대로 직접 찾아간다. 사후관리비용을 받는 것도 아니건만더할 나위없이 즐겁다. 의지할 곳 없는 고아들과 노인들에게 구수한 밥과 국을 끓여주는 설비를 정성껏 보수하는 것은 어느 일 못지않게 보람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이는 어려웠던 자신의 어린시절에서 비롯됐는지도 모른다. 아버지를 일찍 여읜 박씨는 학창시절 1인3역을 해야 했다. 이른 새벽 신문을 배달하고 학교(해동상고)에 갔다오고 방과후엔 남대문시장으로 달려갔다. 그곳에서 어머니는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주방설비를 수리해 판매하고 계셨다. 어머니와 함께 주방설비를 깨끗이씻고 납땜을 한뒤 중고품으로 팔았다. 대신종합주방기구가 4명의직원으로 남대문시장에서 출범한 것은 64년. 박사장과 어머니가 공동 창업한 셈이다. 회사를 만든 것은 단순히 중고품을 수리해 파는것은 발전이 없다고 판단, 직접 생산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로부터34년동안 박씨는 주방설비 외길을 걸어왔고 이 분야의 정상급 업체로 자리잡았다.◆ 연속자동취반기 등 단체급식처 공급생산하는 제품은 밥을 짓는 단순한 주방설비에서부터 가스연속구이기, 원형밥솥 연속자동취반기, 연속자동튀김기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학교나 병원 기업체 호텔 군부대 등 단체급식을 필요로 하는곳에 납품하는 설비다. 그동안 2백여 학교에 설치했다. 자신이 졸업한 서울금양초등학교를 비롯, 전국 각지의 학교와 기업체 병원등에 공급했다.대신종합주방기구는 IMF라는 한파에도 올매출이 지난해보다 20%늘어난 60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내년 매출은 67% 증가한 1백억원으로 잡고 있다. 이는 기술력에서 자신이 있기 때문.그는 동업계 사람들로부터 「24시간 일하는 사람」으로 불릴 정도로 프로근성을 갖고 정열적으로 일을 한다. 일을 대충 처리하는 것은 적성에 맞지 않는다. 신문을 배달할 때도 부수확장 챔피언으로여러차례 꼽힐 정도였다. 당시 배달구역은 서울역앞 양동으로 대표적인 창녀촌. 몸을 팔아 돈을 번뒤 술로 세월을 보내는 많은 누나들을 목격하고 신문을 통해 공부를 시켜야겠다는 사명감을 갖고 접근, 부수를 늘려 갔다. 이런 적극적인 성격은 제품개발에도 그대로반영돼 무려 20여건의 특허를 따냈다.주방설비는 밥을 짓고 국을 끓이는 장치. 기술개발이 그다지 필요없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의 생각은 달랐다. 개발여지가 무궁무진하다는 것. 이는 주방설비에 대한 개념 차이에서 비롯된다. 박사장은 주방설비를 단순히 밥을 짓는 도구로 생각하지 않고 어떻게하면 어머니가 지어 주시는 밥맛을 최대한 재현시킬수 있는가에 초점을 맞췄다.원형밥솥 연속자동취반기는 혼자서 수백명에서 수천명분의 밥을 짓는 장치. 대량으로 취사를 하면 맛이 없는게 보통이다. 하지만 최대한 맛을 낼수 있도록 쌀을 3~4시간 동안 불린뒤 안치도록 설계했다. 또 밥을 지은뒤 적당하게 뒤집어 열기가 골고루 퍼지고 배식하기 좋게 제작했다.자동튀김기도 마찬가지. 종래의 제품보다 저온으로 튀김을 할수 있고 맛있고 바삭바삭한 튀김을 만들 수 있도록 설계했다. 다기능 자동구이기는 높은 열효율을 유지하면서 구이가 알맞게 부풀어 오르며 균일하게 조리되도록 고안했다.◆ 매출액 40% 가량 수출 계획기술개발을 위해 시화공단내 공장에 대졸출신 6명으로 연구실을 만들어 제품개발에 나서고 있다. 이는 전체 종업원 40명의 15%에 이르는 것. 이들은 기계나 금속 화학을 전공한 사람들로 연간매출액의 8% 가량을 사용하며 다양한 신제품을 개발하고 있다.최근에 획기적인 제품 두가지를 개발해 내기도 했다. 야채살균세정기와 아쿠아크린 배기후드시스템이 그것.이중 야채살균세정기는 강산성수를 이용, 각종 병원균을 소독하는장치. 밥이나 국은 끓여서 만들기 때문에 자동적으로 살균이 되지만 야채 과일 등은 살균이 어렵다. 주방에서 사용하는 칼 도마 행주 식기 컵 등에 붙은 세균을 죽이는 것도 쉽지 않다. 이를 강산성수(PH2.7이하)로 간편하게 살균하는 장치다. 강산성수는 물을 분해해서 만들어낸다. 강산성수는 일본 등 선진국에서의 연구 결과O-157균을 비롯, 살모넬라 장염비브리오균 병원성대장균 등 각종균을 죽이는데 강력한 효과가 있는 것으로 입증됐다는게 박사장의설명이다. 게다가 운영비가 저렴, 학교나 병원 기업체 등에서 손쉽게 사용할 수 있다고 밝힌다. 이 제품은 일본에서 O-157균이 발생했다는 소식을 접한뒤 관련 문헌을 입수 분석하고 일본에 출장가서제품개발현황 등을 파악한뒤 4년여동안 준비끝에 선보인 것.아쿠아크린 배기후드시스템은 가스레인지 등에서 고기나 생선을 구울 때 나오는 연기를 물을 통과시켜 정화하는 장치. 냄새와 연기를말끔히 해결하는 시스템이다.『그동안 국내 시장 개척에만 몰두해왔습니다. 내년부터는 해외시장으로 눈을 돌려 매출액의 40% 가량을 수출할 생각입니다. 이미동남아에 대한 수출은 시작했지요.』박사장은 지난 11월 코엑스에서 열린 벤처기업전시회에 야채살균세정기를 비롯한 신제품을 출시한 결과, 국내외 고객들이 큰 관심을보였다며 수출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말한다. 그동안 획득한 다양한특허를 발판으로 지난달 벤처기업으로 등록했다. 아마도 벤처기업중 가장 역사가 오래된 기업인듯 싶다.『정보통신 등 요즘 유행하는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만이 벤처기업이 아니다. 남들이 잘 알아주지 않는 주방설비 분야지만 풍부한 관록과 기술력을 지닌 기업으로 제2의 도약에 나서겠다』는 그는 실천경험이 풍부한 벤처기업이 다양한 분야에서 많이 나올 때 비로소한국경제의 앞날이 밝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02)464-61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