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석유(BP)가 아모코를 4백80억달러에 사들인지 석달이 지난 이달 초 미국최대의 석유 회사 엑슨과 모빌이 7백70억달러에 합병돼세계최대의 석유사 엑슨모빌을 탄생시킨다고 발표했다. 이렇게 되면 이 회사는 석유사들 중에서 뿐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큰 기업이된다. 반독점 당국이 아직도 이 계약에 제동을 걸고 있지만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당국의 의도대로는 되지 않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일부 예외를 제외하고는 통합된 회사가 미국이나 유럽 시장의 어떤특정 분야에서도 독점적인 위치를 갖지는 않고 있기 때문이다.이들의 합병 소식은 벌써부터 세계 석유산업계에 변화를 일으키면서 석유업자들의 이합집산에 불을 댕길 조짐이다. 거대 기업으로인식되던 쉐브론 텍사코 같은 석유사들은 합작대상을 찾기에 혈안이 돼 있다. 특정 회사들이 각 국가별로 저마다의 시장지배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통합에 소극적이던 유럽에서조차도 이런 분위기는마찬가지다. 이달초 프랑스의 토탈은 벨기에의 페트로피나를1백30억달러에 사들일 것이라고 발표했다. 나머지 석유사들도 앞서거니 뒤서거니 이같은 일을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지금 이런 일이 벌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부분적으로는 지난10여년동안 석유가격이 계속 형편없는 수준으로까지 떨어졌다는데있다. 최근의 가격하락은 아시아 경제위기에도 그 원인이 있다. 이때문에 석유사들은 이윤을 남기는데 어려움을 겪었고 비용도 큰 폭으로 줄일 수밖에 없었다. 실질적으로 현재 유가는 25년래 최저치를 기록중이다. 보다 중요한 것은 석유업계에서는 유가가 곧 회복될 것이란 희망을 포기했다는 데 있다. 업계의 마지막 희망도 한때석유공급에 큰 영향력을 행사했던 OPEC가 석유감산 합의에 실패하면서 사라져 버렸다. 그 소식은 사실 별로 놀랄 것도 없었지만 산유국들이 더 이상 유가에 어떤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을 결정적으로 보여준 것이기 때문에 이후 런던과 뉴욕의 선물시장에서유가는 배럴당 10달러 정도의 낮은 가격으로 거래됐다.◆ 비용절감 위해 구조조정과 통합 진행이렇게 되자 자신들의 몫을 지키는 데만 신경쓸 뿐 합병에는 아주보수적이던 석유업자들은 애가 타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거대 석유사들이 10여년 동안 비용을 절감하는데 큰 힘을 써왔기 때문에 그들은 이미 완전히 속빈 강정신세가 돼 있다. 이제 비용을 더 줄이는 유일한 길은 가차없는 구조조정을 단행한 뒤 대통합을 이루는것이 될 것이다. 이 관점이 설득력을 갖는 것은 로열더치셸이나 엑슨같은 최대 석유사들의 종업원 1인당 순수입이 택사코나 필립스쉐브론 등 보다 작은 회사들의 그것보다 거의 50% 이상 많다는 사실이다. 엑슨은 모빌과 합병하고 나면 몇년 안가서 28억달러를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40억달러 이상도 가능할 것이라고전망하는 전문가들도 있다.하지만 낮은 유가 때문에 사태가 심각하게는 됐을지라도 합병 열풍의 가장 큰 원인이 여기에 있는 것은 아니다. 진짜 이유는 석유관련 주식이 10여년 동안 어떤 다른 업종들보다도 낮은 수익률을 나타낸데 있다. 정보기술분야에서 투자자들이 많은 돈을 번데 반해석유사들은 주주들의 재산가치를 계속 떨어뜨려 왔다. 그들의 자본수익률이 원가에도 미치지 못했다는 얘기다.모건스탠리의 더글러스 테레슨에 의하면 상장 석유사 주식의 3/4정도를 갖고 있는 기관투자가들이 자본을 다른 업종으로 옮기는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정유사들이 높은 수익을보장하지 못할 경우 이런 현상은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유가가 배럴당 20달러선으로 오르더라도 합병을 추진할 것이냐는 질문에 대해 엑슨과 BP 양측은 모두 단호하게 「예스」라고 말한다. 합병의목적이 비용절감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수익률을 높이는데 있다는 것이다.자본수익률을 개선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이미 포화상태에 있고 경쟁도 아주 치열한 북미와 유럽쪽 시장 이외의 곳으로 진출하는 것이다. 전세계적으로 여러 곳에 진출해 있는 셸이나 엑슨 같은 회사들은 주로 국내시장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회사들보다 영업실적이좋은 편이다.(도표참조) 석유산업에서는 공격적인 기업가들의 역할도 무시할 수 없겠지만 규모라는 것이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 카스피해나 서아프리카 등 위험한 지역에서의 사업성공을 위해서는 거대한 자본이 필요하다. 셸이나 엑슨이 지금 하고 있는 것처럼 중국의 60억달러짜리 석유 프로젝트에 뛰어드는 것은 5백억달러 매출을올리는 텍사코에게는 사운을 걸다시피 해야 하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규모가 이들의 네배쯤 될 엑슨모빌에는 이 정도는 하찮은 일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합병을 촉진시키는 또다른 요소는 석유관련 주식가격이 낮기 때문에 나타나는 이상한 현실에 있다. 즉 월스트리트에서 비축석유를사는 것이 유전에서 직접 기름을 퍼올리는 것보다 싸다는 것이다.이런 이상한 상황 때문에 모든 종류의 합병 전문가들이 한건을 바라고 석유산업으로 몰려들고 있다. 이런 회사들 중 하나인 힉스뮤즈는 최근 미국의 트라이톤을 매수하면서 비축석유를 배럴당 3달러정도에 사들였다. 민영화된 아르헨티나의 거대 석유기업 YFP는 캐나다의 바이테크를 합병하며 비축석유를 배럴당 1달러도 안되는 가격으로 손에 넣었다.새로운 유전으로부터 석유를 채굴하는 것은 배럴당 5∼6달러 이상으로 아직도 여전히 높다. 석유사들은 기술이 발달해도 카스피해나멕시코만 북해 지역 등에서의 석유생산가가 세계 매장량의 3/4이묻혀 있는 아라비아만에서처럼 싸게 내려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라비아 지역에서는 석유를 채굴하는데 배럴당 2달러도 채 들지 않는다.이 모든 것들은 마치 시장의 힘이 자신들의 사업에는 작용하지 않는다는 듯이 사업을 하던 석유업자들에게 새로운 것을 일깨우고 있다. 지금도 몇몇 업자들은 그런 생각을 갖는 사람이 있기는 하다.런던의 석유탐사회사 엔터프라이즈오일의 피에르 정글 전무는 금융분석가들이 석유사들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고 불평한다. 그는 자본수익률같은 가치평가가 현실을 오도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장사가아주 잘되는 석유서비스 회사 실럼버그의 유안 베어드 회장도 석유업계에 구조적으로 큰 변화는 없다고 주장한다. 변화처럼 보이는것은 유가사이클이 최저점에 도달했을 때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반작용이라는 것이다. 그는 이런 우려들이 매번 유가가 밑바닥을 칠때마다 나타났다가 회복세를 보이면 바로 사라지는 것을 봐왔다고말한다. 이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아마 유가가 회복되면 효율성이높아지고 더 높은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당분간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가능성이 더 크다.따라서 합병으로 인해 촉발된 변화추세가 수그러질 가능성은 별로없어 보인다. 엑슨과 토탈이 각각 합병을 성사시켰다는 사실에 대해 대외적으로는 자신도 같은 일을 구상중이라고 얘기한 텍사코의사장은 뒷날 열린 내부 회의에서 합병소식에 아주 놀랐다고 털어놓았다. 그 이후 텍사코도 적당한 합병상대를 고르기 위해 여러 곳을저울질하고 있는 중이다.가장 공격적인 거대 회사 엑슨과 BP가 이미 선례를 만든 이상 결국나머지 회사들도 이를 따르는 것 이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는 형국으로 흘러가고 있는 셈이다.「The decade’s worst stocks」 Dec. 5th 98정리·염동현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