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도 많던 5대그룹의 구조조정이 일단락됐다. 「12.7 청와대 간담회」로 30여년 이어온 한국식 선단 경영은 종언을 고했다. 현대 삼성 대우 LG SK 등 5대그룹의 총수들은 이날 간담회에서 오는2000년까지 계열사를 정리해 핵심 업종 위주로 정비하겠다고 약속했다. 사실상 그룹체제를 해체키로 서약한 것이다. 주력 핵심업종서너개와 관련된 계열사들만 남기고 대부분 매각 합병 청산 분사등을 통해 그룹에서 내보내기로 했기 때문이다.계열사 정리 뿐 아니다. 5대그룹은 각각 「전공 과목」도 택했다.서너개씩 자신있는 산업만 맡기로 했다. 이 과정에서 국내 산업은2원화 내지 3원화되는 재편의 길을 걸을 것이 분명하다.그룹체제가 「독립기업 연합체」 형태로 바뀌면서 재계 순위도 큰변화를 겪게됐다. 자산 기준으로 국내 1위인 현대가 5개 소그룹으로 나눠지면 「재계 1위 현대」라는 말은 사라질 것이다. 5대그룹이 전부 그렇게 될수도 있다. 자연히 「30대그룹」이라는 용어가사라지고 오히려 「1백대 제조업」 등 개별기업의 순위가 의미를갖게 된다. 재계와 업계에 지각 변동이 일어나게 되는 셈이다. 정부는 재벌체제를 만들어온 상호출자 빚보증대출 등 구태가 사라지고 경쟁력있는 개별기업들이 출현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문제는 이같은 구조조정이 단지 외형만 바꿔놓는 결과가 될수 있다는 점이다. 산업정책적인 고려가 전혀 없이 기업수만 줄이고 일자리만 없애는 조치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정리되는 업체의인력을 흡수할 신산업을 마련하지 못한 상태에서 급격히 구조조정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고용불안이 삼성자동차 대우전자 등 빅딜 대상을 비롯 정리대상업체와 협력업체로 확산되고 있다. 삼성과 대우전자의 경우는 연일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어 사회문제화될 조짐까지 보인다.금감위가 중심이 돼 기업개혁을 밀어붙이면서 「축소 지향적인 구조조정」이 됐다는 점도 문제다. 현금창출이 즉시 보장되는 산업에만, 그것도 안정적으로 투자를 하는 기업만을 골라서 살렸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 과정에서 세계를 상대로 한 수출산업에 「과잉투자」라는 잣대를 대는 넌센스도 빚어졌다. 모그룹 관계자는 『이제 한국에는 반도체 같은 모험투자를 할 기업인이 없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엄연한 경영활동의 하나인 리스크 테이킹(RiskTaking)을 이제는 기대할 수 없게 됐다. 기업가 정신이 뿌리부터흔들리게 된 것이다.투자의 주체인 기업을 정리하면서 성장기반도 상실할 지경에 놓였다. 한국경제연구원 관계자는 『내년 투자가 올해의 절반 수준으로줄어 2년 연속 투자감소가 이어지게 됐다』며 『경기가 바닥을 쳤다지만 L자형으로 침체가 계속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 신규 투자가 없으니 생산능력이 늘지 않는다. 오히려 일부업체들의 사업 철수로 생산능력은 줄어들 판이다. 신규 투자가 없는만큼 신제품은 만들지 않는다. 호황이 오더라도 팔 물건이 없어호기를 놓친다. 다시 국내 산업의 경쟁력은 떨어지는 악순환을 피할 수 없다. 재계는 이같은 결과가 정부가 너무 서둘렀기 때문에빚어졌다고 보고 있다.전경련 관계자는 『구조조정에 관한 한 해당 기업의 자율적 판단을존중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