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이름이 중요하듯 회사명도 무척 중요하다. 헵시바산업은 이를말해주는 단적인 예다. 이름 덕분에 에어컨부품인 컨트롤러를 매년수십억원어치씩 이스라엘 업체에 납품하는 성과를 일궈냈으니 말이다. 헵시바는 성경에 나오는 용어로 「나의 기쁨이 너에게 있다」는 뜻.지난 90년2월 독일. 아직 바람속엔 겨울 추위의 매서움이 스며 있었다. 이명구씨(43·당시 직함은 영업기획실장)는 아침 일찍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는 출장비를 절약하려고 쾰른에서 한시간반이상 떨어진 외진 시골에서 민박을 하고 있었다. 렌터카를 몰고 쾰른전시장에 도착한 그는 문이 열리자마자 본격적인 세일즈 활동에 돌입했다. 이곳에서 열리고 있는 도모테크니카는 세계적인 가전제품전시회.헵시바산업은 부스가 없었다. 당시만해도 이런 전시회에 출품할 여력이 없는 조그만 중소기업에 불과했다. 가방속에서 카탈로그를 꺼내들고 여러 부스를 기웃거렸다. 자사제품을 판매할만한 업체를 찾아 다녔다. 출품업체들은 많은 돈을 들여 부스를 꾸며 자사제품을팔려고 나왔는데 이들을 상대로 세일즈 활동을 벌이고 있는 것이었다. 참관자로서의 매너가 빵점인 것은 물론 자칫 전시회 주최측이알면 끌려 나갈지도 모르는 판이었다.◆ 전시장 부스없이 돌아다니며 세일즈하지만 그로선 한개의 주문이라도 받아야겠다는 생각에서 열심히돌아다녔다. 서너시간을 다니니 다리가 아팠다. 거대한 전시장을돌아다니는게 얼마나 피곤한 일인지는 다녀본 사람만이 안다. 잠시쉴만한 자리도 없다. 햄버거와 콜라 한잔으로 점심을 때운뒤 또다시 여러 부스를 찾아다녔다. 수십개 부스를 방문해도 별 소득이 없었다.그런 그에게 타디란사의 부스가 나타났다. 이름조차 들어본 적이없는 업체였다. 별로 기대를 하지도 않은 것은 물론이다. 명함을내놓자 타디란사 관계자는 갑자기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스라엘과합작업체가 아니냐, 왜 이런 이름을 짓게 됐느냐며 회사명에 매우큰 관심을 보였다. 그제서야 이씨는 타디란이 이스라엘업체임을 알게 됐고 회사 내력과 이름을 짓게된 배경을 설명했다. 타디란사 담당자는 즉석에서 마케팅담당 부사장인 나단 라하브씨를 연결해줬고그는 헵시바산업과 거래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이듬해 타디란사 관계자 두명이 인천 공장을 찾았다. 설비는 보잘것 없었다. 대부분의 작업을 사람손에 의존해서 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타디란사 관계자들은 생산제품을 구매할테니 자사규격에 맞는에어컨 컨트롤러를 만들어 줄 것을 주문했다. 2년동안 양사가 합동작업 끝에 마침내 컨트롤러는 완성됐고 93년부터 납품하기 시작했다. 타디란은 에어컨 냉장고 세탁기 등을 만드는 이스라엘 최대의가전업체로서 인근지역으로 수출도 많이 하고 있었다. 이 회사는자사가 사용하는 가전제품의 컨트롤러중 약 40%를 헵시바산업을통해 사고 있다. 금액으로는 연간 수십억원어치에 이른다. 헵시바산업은 이 회사와 거래하면서 품질 수준을 비약적으로 끌어올려 에어컨컨트롤러의 품질을 세계 최고수준으로 높였다.헵시바산업은 인천의 경인침례교회에 다니는 친구 14명이 출자해만든 회사. 이중 4명은 직접 기업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86년 인천가좌동에서 무선전화기를 임가공하는 업체로 출발했다.단국대 공대를 졸업한 이씨는 유닉스전자에서 무역업무를 한뒤 나중에 이 회사에 합류했다. 사업다각화를 위해 가전제품용 전자식컨트롤러분야에 진출했고 이어 디지털컨트롤러를 개발하는 등 첨단제품을 생산해왔다. 컨트롤러는 국내 보일러업체 25개사에 납품하는 등 인정을 받고 있다.이어 위성방송수신장비(SVR)와 이동식 에어컨, 이동식 원적외선히터, 이동식 가스히터 생산에 나섰다. 이중 SVR는 아날로그제품을생산, 미국 중동 중남미로 수출하고 있으며 첨단기술이 융합된 디지털제품은 개발을 곧 마무리하고 내년 3월부터 양산에 들어갈 예정이다.이동식 에어컨은 제철소나 사출공장등 더운 곳에서 작업하는 근로자를 시원하게 해주는 장치. 큰 공장과 같이 한꺼번에 냉방할 수없는 곳을 국부적으로 시원하게 해주는 설비다. 틈새시장을 겨냥한제품이다. 원적외선히터 역시 틈새시장을 겨냥하기는 마찬가지. 태양열과 같은 원적외선이 방출되는 히터로 열효율이 높고 냄새가 안나 공장이나 사무실에서 사용하기에 적합한 제품이다.이같이 다양한 제품을 개발할 수 있었던 것은 연구개발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에서 비롯됐다. 헵시바산업은 매출액의 5%를 연구개발에 투자할 정도로 여기에 큰 비중을 두고 있다. 2백15명의 종업원중 연구원이 17명에 달한다. 벤처기업으로 지정받은 것도 연구개발에 전력투구했기 때문. 이같은 연구개발과 신제품 개발 덕분에 매출도 비약적으로 신장, 지난해 2백40억원에 달했고 올해는 46%나늘어난 3백50억원에 이를 전망이다. IMF이후 대다수 회사들의 매출이 줄고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수출비중이 70%나 되는 이 회사는오히려 급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요즘도 주문이 밀려 한주에 이틀은 3시간씩 잔업을 하고 있을 정도.◆ 렉스로 공기관련 분야 정상 등극 포부해외시장 개척은 이씨가 주도했다. 그는 일년중 3분의 1을 해외에서 보낼 정도로 수출시장 개척에 몸을 던지고 있다. 아프리카를 제외하고는 전부 다녀봤을 정도로 구석구석을 누비고 있다. 지난해사장으로 취임했지만 그는 사장이라는 직함보다는 세일즈맨이라는직함으로 자신을 소개하고 있을 정도다.『인천 청천동 공장매입과 외환위기 여파로 생긴 고금리로 올 상반기에는 어려움을 겪기도 했습니다.다시 정상적인 경영궤도에 진입한만큼 이제는 고유브랜드로 국내외시장에서 재도약에 나설 작정입니다.』 헵시바산업은 에어렉스라는자체브랜드로 얼굴을 내밀기 시작했다. 공기라는 뜻의 에어에 그리스어로 왕이라는 뜻의 렉스(REX)를 합성한 이 브랜드는 공기관련분야에서 정상의 업체로 등극하겠다는 포부를 담고 있다. 국내에서첫 개발한 이동식 에어컨의 브랜드가 에어렉스다. 헵시바산업은 이제품을 미국이나 이탈리아의 전시회에 잇따라 출품하는 등 틈새시장을 겨냥한 해외마케팅에 적극 나서고 있다.납품업체와 구매업체가 기쁨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제품개발에 경영의 초점을 맞추고 있는 이사장은 한번 고객을 영원한 고객으로 만드는 장기도 갖추고 있어 21세기 주목받는 중소기업인으로 떠오를것같다. (032)5095-8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