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의 맹주 미국은 오랜 기간 보호주의 국가였다. 적어도20세기 초까지 미국은 당시의 패권국 영국의 개방주의에 맞서고율관세법, 상계관세법, 반덤핑법 등 온갖 수단을 동원하면서 자국의 제조업을 극력 보호했다. 이는 단지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니다.최근 필자는 「과연 세계화만이 살 길인가」라는 한 토론모임에 참석했다. 그때 세계화 옹호진영에서는 『만일 박찬호, 박세리를 한국 땅에만 붙들어 놓았다면 과연 세계적인 선수로컸겠는가』, 혹은 『세계화를 안하면 결국은 조선조말과 같이쇄국정책으로 돌아가 나라를 망쪼들게 하는 것은 아니겠는가』라는 우려의 소리가 빗발쳤다.물론 우리사회의 뿌리깊은 고질적 관행을 혁파하기 위해 세계화의 기치를 높여야 한다는 이들의 애국관을 이해 못할 것은없다. 그러나, 세계화 주창자들이 흔히 간과하는 중요한 대목이 있다. 세계화란 어디까지나 서방 선진국들이 국익우선이라는 전략적 의도를 담고 치밀하게 마련한 이데올로기요, 정치적 기획이요, 강자의 논리라는 사실이다.따라서 세계화를 비판한다고 해서 무모한 쇄국주의자로 매도해서는 안된다. 단지 상대가 전략적으로 세계화를 밀어붙인다면 우리로서도 이에 전략적으로 대응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 세계화 비판론의 요지일 것이다.「세계화의 덫」이라는 말에도 함축되어 있듯이 세계화에는막대한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초국적기업과 초국적자본의 논리가 바로 그것이다. 우리가 허점을 보이자마자 그간 자신들이 장사판을 벌이기에 불편하다고 생각했던 모든 장애를IMF를 앞세워 없앨 것을 요구하고 있지 않은가. 필자는 결코구조조정의 당위성을 부정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재벌개혁 금융개혁 노동개혁의 이면에 숨겨진 서방자본의 이익논리를 간과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또한 초국적 자본은 「신뢰의 게임」을 벌이고 있다. 외자를대거 유치하려면 서방자본의 신뢰를 얻어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글로벌 스탠다드의 전폭 수용이 불가피하다는 논지이다. 다시말해 패거리 특성이 강한 종래의 기업시스템을 벗어던지고, 전면 영미식으로 개편하라는 요구이다. 회계와 재무투명성의 확보, 적대적 M&A의 무차별 허용, 단기 이익을 중시하는 증권자본주의 전환, 100% 법률적인 기업관계의 담보 등이 바로 그것이다.문제는 외압에 의해 국가경제시스템을 일거에 깨부술 경우 과연 우리경제가 재도약할 수 있을 것인지 또한 2백만 실업자들에게 새로운 일자리의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가에 있다. 영화산업이 되었건 소프트웨어 산업이 되었건 서방자본이 밀려들어올 경우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 될 것은 불보듯 뻔한데도개방론에 흠씬 빠져 있는 철부지 세계화론자들이 너무도 안타까울 따름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정면으로 미국과 맞설 수는 없다. 우리는 여전히 미국의 힘을 인정해야 하고 글로벌 스탠다드로 둔갑한「아메리칸 스탠다드」를 수용해야 한다. 우리에게는 국제적인 룰을 만들 수 있는 권리는 없고 단지 이를 받아들여야 하는 의무만이 지워져 있기 때문이다.그러나 몰역사적 사대주의에 빠져 덩달아 세계화를 미화하는우를 범해서는 안된다. 최대한 운신의 폭을 넓혀 우리의 것,우리의 경쟁력, 우리의 국부, 우리의 미래를 다지기 위해 숨죽여 대응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세계화는 비판적 적응의 대상일 뿐, 결코 전폭적 수용의 대상일 수 없다. 우리는 이미준비없는 세계화, 전략적 대응없는 세계화가 한국호(號)를 얼마나 광폭한 바다로 몰고가는지를 IMF사태를 통해 뼈저리게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