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업계가 메이저를 설립한다. 국산을 뜻하는 「와제(和製)」메이저를 만들겠다고 나선 것이다. 메이저란 국제석유자본을 뜻한다. 이는 미국 유럽 등 서구자본의 상징으로 통해 왔다. 아시아에서는 감히 넘볼 수 없는 성역처럼 여겨져 왔다.그러나 일본업계가 메이저를 「와제」로 만들어낸다. 메이저도 더이상 서구자본의 전유물이 아님을 증명해 보이겠다는 것이다.「와」는 「화(和)」의 일본식 발음으로 일본 역사의 출발점인「다이와(大和)」정권에서 따온 것이다. 역사의 뿌리에서 나온「와」자는 바로 「일본」을 뜻한다. 와가시(和菓子 일본과자)와쇼쿠(和食 일식) 와후쿠(和服 일본옷)…. 한국에서도 친숙한단어들이다. 최근에는 「와제MBA(경영학석사)」 등으로 활용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급기야 와제 메이저로까지 발전하고 만 것이다. 와제메이저 설립의 주역은 일본 2위인 일본석유와 6위인 미쓰비시석유. 이들회사는 1월 하순 주주총회를 열고 합병을 결의한다. 4월에는 신회사인 닛세키미쓰비시가 정식으로 출범한다.신회사의 사장은 일본석유의 오사와 히데지로사장이 맡게 된다. 미쓰비시석유의 이즈미타니 요시히코 사장은 회장에 취임한다. 두 회사의 사장들로 쌍두체제를 갖추게 되는 것이다.◆ 합병 첫해 2조9천1백억엔 매출 목표합병회사인 닛세키미쓰비시의 정제능력은 하루 1백36만8천배럴. 일본시장 점유율은 24%선에 이르게 된다. 현재 선두인 이데미쓰교산의 16%를 훨씬 앞지른다. 자회사 등을 포함한 연결 매출은 약 3조8천억엔. 합병 첫해인 2000년 3월 결산기에 2조9천1백억엔의 매출을 올린다는 목표다. 세계 10대 메이저 수준이다. 와제 메이저 설립에의 꿈이 마침내 실현되는 것이다.오사와사장과 이즈미타니사장은 『84년부터 14년동안 제휴해 왔다.얼굴을 마주치면서 자연스럽게 합병얘기가 나왔다』며 합병 계기를설명했다. 죽마고우를 연상케할 정도였다.그러나 실상은 달랐다. 과거부터의 절친한 인연 때문이라기보다는이해타산의 결과였던 것이다. 우선 합병성사의 주역은 일본석유도미쓰비시석유도 아니었다. 미쓰비시석유의 대주주인 미쓰비시상사였다.미쓰비시상사는 적자로 허덕이는 미쓰비시석유를 재생시키기 위해파트너를 찾아 나섰다. 최초로 점을 찍은 곳은 로열더치셸. 그러나미쓰비시석유는 한마디로 『노(NO)』였다. 『외자 산하에 들어가면 미쓰비시라는 이름이 사라진다』는게 그 이유였다.미쓰비시상사는 『메이저가 안된다면 상대는 일본석유 뿐』이라고판단했다. 두 회사를 합친 점유율이 25%선에 이른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두 회사를 상대로 합병중개에 나섰다.두 회사의 반응이 예상외로 좋았다. 미쓰비시석유측은 그룹의 지원을 받으면서 합병을 하는 쪽이 유리할 것으로 판단했다.일본석유쪽도 합병 제의에 귀가 솔깃했다. 세계적 네트워크를 가진상사의 지원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국내 최대 도쿄미쓰비시은행이 주거래은행에 추가되는 것도 큰 이점으로 분석했다. 서로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것이다.통산성쪽 분위기도 괜찮다. 통산성은 이번 합병추진과정에서 완전히 따돌림을 당했다. 그렇지만 별로 불쾌해하지 않고 있다. 『이번합병은 결국 통산성의 구상(와제메이저)을 받아들인 것이 아니냐』는 반응이다.일본석유 미쓰비시석유 통산성이 합병에 만족해하고 있다. 그러나합병 이후의 구조조정이 순조롭게 이뤄질 것으로 속단하기는 이르다. 두 회사가 제휴를 추진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난15년동안 끊임없이 계속돼 왔다. 두 회사가 유통합리화를 목적으로첫손을 잡은 것은 지난 84년. 수요부진으로 통산성이 석유정제회사의 통폐합을 추진했던 시대였다.두 회사는 제품융통 등 유통면에서 협력키로 일단 합의했다. 그러나 정유시설통폐합과 공동판매회사 설립에는실패했다. 두 회사는『더이상 제휴관계를 진전시키기는 어렵다. 합병은 절대 불가능하다』는 판단에 따라 제휴계약을 1년 단위로 갱신키로 했다. 언제라도 결별을 할 준비를 마친 것이다.일본석유는 지난 91년에 일본광업(현 재팬에너지), 사우디아라비아의 아라비아석유와 정유공장 건설을 시도했다. 산유국과 손잡고와제메이저에의 꿈을 키우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계획도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일본석유의 제휴 추진이 이로써 끝난 것은 아니다. 95년에는 이데미쓰교산과 제휴, 유통경비 절감을 위한 제품융통에 나서기도 했다.미쓰비시석유도 파트너찾기에 골몰하기는 마찬가지였다. 88년 무렵부터 쇼와셸석유와 접촉하기 시작했다. 겉으로는 인접한 가와사키정제공장을 공동사용하기 위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합병이 핵심이었다. 로열더치셸과의 친밀한 관계에 있던 미쓰비시상사가 중개역할을 맡았다. 그러나 결국 불발로 끝나고 말았다.몇년전에는 코스모석유와의 합병가능성을 타진하기도 했다. 97년에는 다시 쇼와셸과 정제부문의 통합을 추진했다. 그러나 야마다회장이 석유도매상인 「이즈이석유상회」와의 불법거래에 대한 책임을지고 물러나면서 무산되고 말았다. 합병을 통한 재생에 실패했다.그러는 사이에 경영실적은 더욱 나빠졌다. 98년3월 결산기에는 2백80억엔의 경상적자를 내고 말았다. 민간석유회사만 우왕좌왕했던것은 아니다. 업계재편의 칼자루를 쥐고 있던 통산성도 마찬가지였다. 통산성이 「와제메이저」 육성의 기치를 내건 것은 지난 60년대. 일본광업 등 민족계 석유 3사의 판매부문을 분리, 공동석유를설립시켰다. 개발은행 융자, 정제시설 증강, 급유소 증설 등으로지원에 나섰다. 그러나 생산능력 증가만큼 판매가 늘어나지 않았다. 공동석유는 92년에 일광에 다시 흡수되고 말았다. 4반세기에걸친 시도는 끝내 결실을 거두지 못한 것이다.일본석유가 이데미쓰쪽에 접근했을 때도 통산성은 영향력을 행사했다. 통산성은 선도기업(리딩컴퍼니)의 탄생을 유도했다. 그러나이것 또한 불발에 그쳤다.이를 계기로 통산성은 업계 재편의 구상을 완전히 포기했다. 에너지청의 간부가 이번 합병을 발표 바로 전주까지도 전혀 눈치채지못했을 정도였다. 닛세키미쓰비시는 「관」주도에서 「민」주도시대를 상징하는 합병에 성공한 셈이다.◆ 일본석유, 끝없는 제휴추진 결국 성공합병을 계기로 두 회사는 정제부문을 통합한다. 일본석유가 전액출자한 일본석유정제를 중심으로 합병후 1년안에 정유공장을 합친다. 3년안에 상표도 통합한다. 인원과 조직도 효율화한다. 합병후5년째되는 해에 7백억엔의 수익개선 효과를 거둔다는 목표다.문제는 이번 합병으로 일본에서도 메이저 꿈이 과연 실현될 수 있을 것이냐 하는 점이다. 『미국 유럽과 맞먹는 메이저로 거듭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업계의 일반적인 분석이다.일부에서는 이번 합병이 합종연횡의 시작에 불과할 수도 있을 것으로 분석한다. 대경쟁(메거컴피티션)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또한차례의 몸집불리기가 불가피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중동에서원유를 생산, 일본수요의 4~5%를 공급하고 있는 아라비아석유와의합병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진정한 메이저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와제메이저가 산유국과 손을 잡아야 한다는 지적이다.일본석유 본사 앞에는 전국 특약점들이 기증한 프로메테우스상이서있다. 「신성한 불을 인간에게 줬다」는 그리스신화속의 영웅처럼 닛세키미쓰비시가 와제메이저로 자리잡을 수 있을까. 와제메이저가 메거머저(거대합병)시대에도 통할 수 있을지의 여부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