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상인들이 세계 4대상인집단으로 꼽히는 것은 7세기부터 캐러밴(대상무역)을 통해 동서교역의 중심지로 사라센문화를 꽃피웠던 오랜 역사에 기인한다. 중동문제연구소 홍성민원장은 『서구 자본주의정신이나 상윤리 기법 등이 원래 아랍상인들로부터 시작된 것』이라는 말로 아랍상인들의 오랜 상거래전통을 설명했다. 한·아랍친선협회 구미란씨도 『아랍상인들은 캐러밴을 통해 상업에 종사해온 사람들로 비즈니스맨의 기질이 풍부하고 무역업 자체를 중요하게 여긴다』고 말했다.종교적으로 이슬람을 믿는 아랍상인들에게 있어 경전인코란(Kohran)과 무하마드의 언행록인 하디스(Hadith)는 비즈니스에있어서도 지침서 역할을 한다. 이들 경전에서 경제활동은 인간으로서의 책임을 완수하는 측면으로 강조된다. 신앙심이 깊으면 깊을수록 보다 생산적이어야 하며, 부유함을 신으로부터의 하사품으로 여긴다. 때문에 어려서부터 비즈니스에 종사하고 가업을 그대로 잇는게 당연시된다.「가난은 이슬람을 부정하는 것과 거의 같다」 「인간에게 권장된직업중 열에 아홉은 무역」이라는 무하마드의 언급은 아랍상인들이비즈니스에 강할 수밖에 없는 부분을 설명하는 말들이다. 무역을「파들 알라」 즉 알라신의 은총과 탁월함이라고 언급할 정도다.코란에서도 무역을 통해 알라의 은총을 찾고 성공적인 무역을 위해긴 여행을 하라는 충고가 있다. 이슬람교리상으로 보면 예배 다음으로 중요한 게 무역인 셈이다.그런 오랜 상업행위의 역사로 돈에 대한 인식도 다른 상인집단에비해 색다르다. 『돈은 베풀기 위한 수단이자 최소한의 생활을 위한 수단으로 생각한다』는 것이 구씨의 말이다. 우리나라의 계에해당하는 일종의 구빈세인 「자카트」도 그런 예라는 것이다.하지만 이슬람교리가 상행위의 준칙으로 작용하는만큼 서구적인 시각으로 보면 불편하거나 불합리해보이는 점도 없지 않다. 약속시간을 지키지 않는 것이 단적인 예다. 그러나 『모든 것을 「인 샤 알라(알라가 원하신다면)」로 여기는 아랍인들이 맺고끊음이 분명하지 않지만 이를 서구가 아닌 아랍의 시각으로 이해해야 한다』는것이 중동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다.아랍인들의 상인기질은 다소 차이가 있겠지만 대동소이한 편이다.오랜 기간 외세의 침략에 시달린 까닭에 의심이 많고 자존심이 강하다. 다소의 과장과 허세도 있으며, 자기중심으로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 성격은 다혈질이지만 사고는 여유로운 면이 있어 절대로성급하게 결정하거나 행동하지 않는다. 그러나 일에 관해서만큼은완전 딴 사람이 된다. 한국인이라면 전후좌우를 고려해 참을 수 있는 일이라도 아랍인들은 그 자리에서 직선적으로 화를 낸 후에 쉽게 잊는다.이런 일반적인 면외에 아랍상인들이 비즈니스맨으로 갖는 가장 큰특징은 언어능력이 뛰어나고 말을 잘한다는 점이다. 아랍상인들을대상으로 수출과 수송업무를 담당하는 세일트레이딩의 전영민실장은 『부지런하고 한국말도 금방 알아들을 정도로 언어능력이 뛰어나다』고 아랍상인을 평가했다. 특히 아랍상인이 내미는 웬만한 주문을 끝까지 거절하고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는 한국인은 없을 정도로 아랍인들의 협상력이 높다는 것이 전실장의 경험담이다. 한·아랍친선협회의 구씨도 『아랍문화는 이야기문화로 천일야화도 그런이야기문화의 산물이다. 그만큼 말을 잘한다』며 『아랍인과 이야기할 때 빨려들어가면 안된다』고 말했다.그러나 21개국 2억1천여만명의 중동국가중 가장 비즈니스 기질이뛰어난 나라에 대한 평가는 제 각각이다. 한·아랍친선협회의 구씨는 『가장 비즈니스 기질이 풍부한 것은 이집트인으로 셈이 가장정확하다』고 말했다. 세일트레이딩의 전실장은 이란상인이 최고라고 꼽았다. 『오죽하면 비단장수 왕서방이 비단 팔러페르샤(이란)에 들어갔다가 쫄딱 망해서 울고나왔다는 노래가사가있겠느냐』고 설명했다. 이밖에도 페니키아상인의 전통을 그대로이어받았으며 가장 서구화됐다는 레바논의 비즈니스맨들이 가장 빼어나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상복전 상원 사장인천광역시 중구 선린동, 자유공원을 내려오는 길에 유난히 붉은장식을 많이 한 중국음식점과 옛 건물들이 눈에 많이 띄는 곳이 있다. 일명 화교촌으로 불리는 곳이다. 이곳에서 중국음식점 「상원」을 운영하는 상복전(50)씨는 한국에서 태어나 자란 화교다. 중국산동성에서 거주하던 할아버지가 장사차 한국에 왔다가 중국의 공산화로 눌러앉으면서 한국에 터를 잡게 됐다. 3대째 한국에서 살고있는 상씨는 서울의 중식당에서 주방일을 배운 후 20년간 식당일에종사하다가 4년전 이곳에 자신의 음식점을 열었다.『대만과 한국의 국교단교시 많은 화교들이 큰 충격을 받았다』는상씨는 70년대까지만 해도 화교들이 많았으나 대만 홍콩 미국 등으로 많이 빠져나가 지금은 약 3만여명이 남아 있다고 설명했다. 대부분 보따리상 수출업 식당 한의원 구두점 등에 종사하며 식당이70% 이상을 차지한다는 것이 상씨의 말이다.예전에는 무평방 영천방 등 화교집단끼리 소그룹을 이루면서 긴밀한 유대를 맺고 활동했으나 지금은 그런 유대감이 많이 희박해졌다는게 상씨의 생각이다. 쌍십절과 같은 명절이나 행사 때면 화교들의 대부분이 모이곤 했지만 지금은 참석자도 적고 연대의식도 약해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타향이라 보장되는 것이 없는 상황에서개인이나 사회적으로 뭉칠 수밖에 없다』는 상씨는 『아직도 화교네트워크는 강력하다』는 자부심섞인 말을 잊지 않는다. 이런 결속력이 화교들이 세계 곳곳에서 적수공권으로 사업을 시작해 튼튼히뿌리를 내리고 자수성가하도록 하는 기반이 됐다는 것이다.화교상인들의 장점에 대해 물었다. 상씨는 『우선 인내심이 강하고끈기가 있다』는 말을 했다. 한번 마음먹은 일은 반드시 이루고 만다는 것이다. 그는 또 『절약정신도 화교들의 커다란 장점』이라고말했다. 상씨 자신도 요리에 밀가루를 쓸 때에 버리는 것 없이 모두 깔끔하게 사용한다고 설명했다. 그런 절약정신은 자녀들에게도그대로 이어진다. 상씨의 경우 자녀들에게 초등학생 때에는 한달에3천원, 고교재학시에는 1만원씩밖에 주지 않았으며 아이들의 불만도 없었다고 설명했다. 『(자녀들이)바라는 대로 다 해주다 보면한이 없다』는 것이 상씨의 말이다.한국상인들에 대한 인상을 물었다. 『재료를 한국인에게서 구매하며 손님중 비즈니스맨들이 많다』는 상씨는 『한국인들은 신용이있다』고 전제했다. 그러나 『일부 상인들의 경우 계절상품을 갖고가격조작을 하는 경우도 많아 정직하지 못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없다』는 것이 상씨가 덧붙인 말이다. 화교상인의 경우 그런 일은절대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이다.『한국상인들은 1천원짜리 물품의 경우 1백원을 깎아서라도 팔아치우려고 합니다. 하지만 화교들은 절대로 가격을 깎지 않습니다. 마음속에 원칙으로 세운 것이 있으면 절대 양보하지 않으며 그런 입장에서 흥정을 하는 것이죠.』 왜 화교상인들이 곳곳에 차이나타운을 세울 수 있었으며 세계인으로부터 장사를 잘하는 민족으로 평가받는지에 대한 상씨의 설명이다.★ 샤론 레벤터 한국네타핌 매니저『약간의 언어장벽이 있지만 매우 친절하고 재미있어 쉽게 「화학적 반응」을 이룹니다.』 서울 중구 한남동의 한국네타핌에서 만난샤론 레벤터(34, Sharon Leventer)씨의 말이다. 지난 97년 한국에첫발을 디딘이후 많은 공무원들과 기업인들을 만났을텐데 한국인들과의 비즈니스때 불편한 점이 없느냐는 질문에 『전혀 어려움이 없다』며 한 말이다. 『한국에 도착하기 전까지만 해도 제3세계국가로만 생각했는데 선진국 못잖은 발전상에 놀랐다』는 레벤터씨는농업용기계와 설비 특히 세계적 명성을 가진 관비·관수장비를 생산·수출하는 이스라엘의 네타핌본사로부터 파견나와 경영 서비스교육 등을 지원하고 관리하는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세계에서 가장 유능한 상인집단으로 유태인이 꼽히는 요소가 무엇인지 물었다. 『이유가 없다』는 말로 문을 연 레벤터씨는 『역사적인 경험으로 사고가 치밀하고 판단이 빠르다』는 말로 돌려서 설명했다. 고난의 역사속에서 생존을 위해 체득한 산물이라는 의미로해석된다. 유태인들이 갖는 인적자원의 중요성도 설명했다. 자원이한정된 나라로서 「맨파워」에 의존할 수밖에 없으며 우수한 「맨파워」를 양성하고 확보하는 게 유태인들의 저력이라는 것이다.『직장은 하나의 팀으로 이스라엘에서는 「제2의 가정」이라고 말할 정도』라는 레벤터씨는 『우수한 인력을 키우기 위해 직원을 믿고 자유롭게 창의력을 발휘하고, 스스로 교육을 통해 창조적인 일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고 설명했다. 때문에 좋은 회사를 가늠하는 요소중 하나가 기업의 교육시스템이라는 것이다.유태인들의 금전관이 궁금했다. 『가진 돈으로 인생을 즐겁게 살수있지만 낭비는 절대 용납이 안된다』는게 레벤터씨의 말이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일방적으로 절약만을 요구하지 않으며 오히려 친절하고 따뜻하고 공손함을 갖춘 사람, 항상 베풀 수 있는 사람이 되라고 강조한다는 것이다. 덕분에 『인간관계가 좋아지고 보다 빠르고 쉽게 많이 배울 수 있다』는 것이 레벤터씨의 말이다.우수한 비즈니스맨, 경쟁력 있는 기업에 대한 유태인들의 시각은어떤지 궁금했다. 이스라엘비즈니스맨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요소는 「신용」으로, 협상능력이나 눈가림 등으로 한두번 성공할수 있겠지만 장기적인 면에서는 반드시 손해라는 것이 레벤터씨의설명이다. 또 기업이 경쟁력을 갖추는 것은 질 좋은 원자재, 꾸준한 연구개발, 저렴한 가격, 우수한 서비스 등이 이뤄져야 하며 이스라엘기업과 비즈니스맨들에 대한 신용도가 높은 것도 이런 까닭이라는 것이 레벤터씨의 말이다.한국을 처음 찾는 이스라엘 비즈니스맨들에게 들려주는 말을 물었다. 『내 의견에 동의하는 줄로 알고 있었는데 나중에 그렇지 않은것으로 판명되는 경우가 있으니 한국사람의 말을 주의깊게 듣고 「행간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라』고 충고했다고. 이는 레벤터씨가 한국에서 생활하면서 느낀 불편함으로 『「정신적인 격차(gap)」로 생각하며 자신도 적응하려고 애쓰는 부분』이라고.★ 마노즈 바스와니 라타샤 사장『부동산구입 회사인수 등 외국인에 대한 규제가 많이 풀렸지만 비자문제가 가장 큰 어려움입니다. 비자갱신 때마다 복잡한 서류를갖춰 일일이 관공서를 들락거려야 하니까요. 영주권이 없는 상태에서 비자문제로 골치아파 한국에 얼마 있지 못하고 떠나는 비즈니스맨들도 많아요.』 서울 중구 명동에서 만난 마노즈 바스와니(35,Manoj Vaswani)씨는 약간은 어눌한, 그러나 상당한 수준급의 한국어로 말문을 열었다. 바스와니씨는 한국에서 원단을 구매해 홍콩싱가포르 인도네시아 두바이 동유럽 등에 수출하는 라타샤라는 기업을 운영한다.바스와니씨가 한국에 첫발을 디딘 것은 지난 88년. 인도 봄베이에서 태어나 봄베이대학을 졸업한 바스와니씨는 대학재학 때부터 부친이 운영하는 부동산회사에서 일을 배웠다. 졸업후 무역업에 종사하면서 비즈니스차 한국에 들렀다가 한국에 반해 그대로 주저앉았다. 『너무 좋았다』는 것이 바스와니씨의 기억이다. 그러나 『당시 한국에서의 사업환경은 좋지는 않았다』고. 우선 영어로 의사소통을 할수 있는 사람이 적어 비즈니스는 물론 생활에 어려움이 컸던데다 각종 규제가 많아 번거롭고 불편했다는 것이다. 그러다 인도업체가 한국에서 철수하면서 한국에 아예 회사를 차리고 주저앉았다. 92년의 일이다.인도인이 유능한 비즈니스맨으로 꼽히는 이유로 바스와니씨는 가정교육을 든다. 『돈이 많이 있으면 좋지만 그렇지 않은 대부분의 집에서는 어릴 때부터 철저한 절약을 무척 강조한다』고. 실제로 『대부분의 인도인들이 최소한의 생활비를 제외하면 모두 저축을 한다』는 것이다. 바스와니씨가 또 다른 이유로 꼽은 것은 인도인간의 거래를 통한 빠른 자립. 1백4개의 각기 다른 말을 사용하는 종족들로 구성됐을 정도로 복잡한 나라지만 외국에 나가서 생활하는경우 인도인들과의 거래를 가장 우선시하고 서로 협력하며 그만큼빨리 자리를 잡고 상권을 구축한다는 것이다.한국 비즈니스맨들이 개선해야 할 점이 있냐고 물었다. 『점프하려는 경향이 강하다』는 말로 성급함을 가장 먼저 꼬집었다. 『계약서에 씌어진대로 지키려는 노력도 부족하다』고 덧붙였다. 환율이변하더라도 무역업체와 수입업체가 애당초 맺은 계약을 성실히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또 『어떤 사업이 좀 된다 싶으면 너도나도 시장에 뛰어들어 공급을 늘리니 그런 상태에서는 가격이 떨어지고 그러다보니 채산성이 악화되지 않느냐』며 『이런 점이 우리와 다르다』고 바스와니사장은 꼬집었다.『(한국으로서는)지금 외채를 줄이는 일이 시급하고 환율안정을 이뤄야 하는데 너무 낙관하는 것 같아요. 외채와 그에 따른 이자가결국 세금인데 이에 대한 관심이 적고, 지금 환율변동으로 재고가쌓이고 수출이 줄어드는데도 다 해결된듯한 분위기예요.』 한국여성과 결혼했고 「만우주」라는 한국이름까지 가진, 드물게 한국말을 잘하는 인도인 바스와니씨가 한국에서 최근 갖게 된 안타까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