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말적 징후인가 아니면 새로운 세기를 맞기 위한 응분의대가인가. 한동안 금융위기로 홍역을 치렀던 세계경제에 금년들어서는 무역문제가 불거져 나오고 있다.무엇보다도 지난 수년간 누적된 상품의 공급과잉상태가 좀처럼 풀리지 않고 있다. 이 상황에서 금융위기국들이 부족한 외환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상품수출에 주력하는 반면, 선진국들은 오히려 자국의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수입규제를 강화하고있다.특히 국제통상환경을 주도하고 있는 미국이 주요 교역상대국을 대상으로 무역적자 축소에 적극 나서고 있다. 선진국간의달러화 가치를 부양하기 위한 역플라자 합의 이후 지속된 달러고 추세로 미국의 무역적자는 GDP의 3%를 넘어서고 있다.이런 상황에서 아이러니컬하게도 「다가올 21세기에는 보다자유롭고 공정한 무역체제를 창출해야 한다」는 미명(美名)하에 새로운 국제무역협상이 제시됐다. 최근에 있었던 미국의연두교서에서 제시된 이른바 「클린턴 라운드」이다.물론 클린턴 라운드는 전혀 새로운 것은 아니다. 이미 유럽이주도하여 현재 일본을 비롯한 많은 국가가 동조하고 있는 「밀레니엄 라운드」와 별로 다른 것이 없다. 또 협상에 무엇이포함될 것인가와 언제 어떻게 추진될 것인지는 금년말에 예정된 예비회담이 끝나봐야 알 수 있다.그렇지만 지금까지 미국이 취해온 태도를 볼 때 앞으로 클린턴 라운드에 포함될 과제를 추론해 볼 수 있다. 즉, 종래에각국의 고유문제로 간주되어 왔던 세계 각국간의 상이한 경제정책과 기준 및 관행을 국제적으로 조화시켜 공정한 경쟁기반(level playing field)을 갖춰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그러면 앞으로 클린턴 라운드가 구체화될 경우 세계경제의 모습은 어떻게 될 것인가. 미국의 주장대로 자유무역의 확산을통해 세계 각국이 모두 잘 살 수 있는 시대가 도래될 것인가.성급한 예측이 될지 모르나 결과는 정반대 현상이 나타날 것이다. 오히려 95년 세계무역기구(WTO) 출범 이후 형성되고 있는 「서고동저(西高東低)」라는 세계질서를 더욱 심화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질서하에서는 미국의 이익이 더욱 확고하게 보장받게 될 것이다.왜냐하면 클린턴 라운드를 통해 태어날 국제규범의 골격은 미국의 기준과 관행이 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외형상으로는 전세계 1백20개국 이상의 협의를 거칠 것으로 보이나 국제역학관계상 결국 미국이 주도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이런 환경하에서 세계경제의 앞날을 예상하기란 그리 어렵지않다. 선진국과 개도국간의 소득불균형, 이른바 남북문제가심화되고 세계경제의 이념도 권역간의 종속이론이 부활될 가능성이 높다. 궁극적으로는 세계경제 전쟁이라는 새로운 위기의 싹이 돋아날 것으로 예상된다.따라서 앞으로 다가올 21세기에 현재 세계경제가 겪고 있는세기말적 징후를 극복하고 다시 한번 공동성장대열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세계 각국의 이익이 골고루 반영된 질서가 태동돼야 한다. 특히 미국을 위시한 선진국들이 개도국들의 이익을 보다 중시하는 지혜가 발휘돼야 할 것이다.현정부도 대외적으로 「보편적 세계질서」를 지향하고 있다.문제는 우리의 국익을 얼마나 확보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명분이 좋은만큼 사전준비가 잘 돼 있어야 하고 준비가 되어있지 않으면 이제부터는 갖춰 나가야 하는 과제가 새로운 세기를 앞두고 있는 우리에게 주어지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