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청문회가 한창이다. 강경식 전부총리의 설전은 앞으로 며칠간 열기를 더해갈 것이다. 작은 강경식이라는 별칭이 어울릴만한 김인호 전 경제수석도 논쟁에서는 결코 물러서지 않는다. 재경부 한은 은감원의 기관보고가 있었고 환란의 원인과경과가 도마에 올라 있다. 정치권은 처음부터 미온적인 입장이었지만 대통령의 의지가 워낙 강해 억지춘향식으로 시작된청문회다.그러나 청문회는 벌써 또 하나의 한보청문회 비슷한 범주로자리매김되어가고 있다. 아마도 우리 국회가 갖는 상상력의한계일 것이다. 정부의 행동논리에도 결코 변화가 없다. 재경부와 한국은행이 모두 외환대란의 원인과 경과에 대해 장황히보고했지만 다만 자신들이 속한 기관의 소관사항에 대해서만말했을 뿐 위기를 총체적으로 분석한다는 의욕은 애초부터 없어 보인다.기업의 과다한 부채나 금융기관의 부실, 감독제도의 비효율성, 외환관리의 부적절성은 모두 IMF가 내놓은 공식 견해들이다. 정부가 분석한 외환대란의 원인과 경과가 국제적으로 통용이 허용된 소위 「공식 견해」의 범주에 머물러 있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국제금융의 급속한 변화, 규제 완화에 편승한 기업과 금융기관들의 무분별한 외자 유치, 아시아 위기의 전염 과정, 세계 금융시장에 대한 월스트리트주의의 관철,규제완화가 갖는 이중적 상황 등에 대한 총체적 분석은 모두실종 상태다.재경부와 한은이 기관이기주의라는 틀을 벗지 못해 「네탓 책임」 공방을 벌일 수밖에 없는 것도 기존의 논란구조를 뛰어넘을만한 사고의 폭과 깊이를 갖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정치권도 마찬가지다. 여권은 이번 청문회를 통해 지난 정권의 비행을 파헤친다는 방법으로 접근하고 있을 뿐 IMF구제금융 체제로부터 무엇을 배울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전혀아무런 고려도 하지 못하고 있다. 『청문회에서 한건 터뜨리겠다』는 여당 고위인사의 발언에서는 쓴 웃음을 짓지 않을수 없게 하는 뒷골목의 냄새마저 풍긴다.이런 지적 정신적 수준에서는 청문회를 아무리 열어본들 소용이 없을 것이다. 차라리 강경식 전부총리의 고군분투가 재미있다. 사실 지금 청문회를 진행하는 집권 여당이 갖는 논리구조는 강경식씨가 추진했던 개혁 방침들과 다를 것이 하나도없다.세계화의 함정, 시장 개방의 역작용, 규제 완화가 불러온 부작용들, 경제개발 전략의 순조로운 국제사회에의 적응 문제들은 모두 논외로 치부되어 있다. 국회의원들이 갖는 상상력의한계내에서 진행되는 청문회이다보니 처음부터 진지하고도 포괄적인 논의가 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답변자들 역시 환란책임이 있거나 그의 지휘 아래 있었던 준책임자들에 국한되어있어 나올 대답의 수준이 뻔하다.그 위에 거짓말들까지 보태져 있다. 한은은 여러차례에 거쳐환란을 경고했다고 거짓말하고 있고 금감원은 금융감독기능의정합성이 없었다며 기관 존립의 정당성만을 호도하고 있다.재경부는 「외환」이라고 하는 국가 주권의 문제를 한은이 책임져야할 문제인 것처럼 얼버무린다. 강경식씨는 아직도 「부분과 전체를 혼동하는」 분열적 사고를 정당화한다. 청문회풍경화는 이렇게 채워져 가고 있다.이미 법정에까지 섰던 자들에게 책임을 따지고 호통치는 모습은 가관이다. 외환 대란의 경과에 대해 참고 발언을 해줄 수있는 외국인은 물론이고 국내 전문가들의 모습조차 눈에 띄지않는다. 청문회는 과연 무엇을 듣기 위해 열렸는지 다시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