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지진 때 곳곳에 신문뭉치를 놓아두었다. 보통 때는 그렇지않았는데 잠시 후에 보니 신문이 전부 없어졌다. 위기 때는사람들이 정보에 목말라한다는 증거다. 지금 우리의 모습이그렇다. 신문 방송을 샅샅이 보면서 모두가 정보를 꿰차고 있다. 친구들과도 더 자주 전화를 하곤 한다. 너네는 월급이 깎였다며, 니네 회사는 사람을 줄였다며, 돈은 있대, 앞으로 어떻게 되는거야. 우리 회사는 괜찮은거야. 우리 부서는. 결국나는. IMF의 요구사항들을 보면 이런 결과는 이미 오래 전부터 예견된 것이고 앞으로의 일도 우리가 마음먹기에 달렸다는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므로 밖의 진행상황을 주시하는 것 못지않게 우리 안을 들여다보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는 생각을하게 된다.그네들이 10번 이상 주장한 내용이 투명성이다. 뭐가 뭔지 알수 없다는 얘기다. 따라서 믿을 수 없다는 얘기다. 그러고 보면 회사 안에서도 얼마나 우물우물 어영부영 구렁이 담넘어가듯이 많은 일을 했는가. 하라는 얘긴지 하지 말라는 얘긴지. 하라고 하면 나보고 하라는 얘긴지 아니면 옆에서 협조만하면 된다는 얘긴지. 모든 것이 분명치 않다. 회의를 왜 하는건지. 목적이 뭔지 결론이 뭔지 흐릿하다. 우리들의 모든 것이 흐릿하다. 생각이 흐릿하니 지시도 흐릿하고 일을 하는 사람도 흐릿하다.미국에서 공부할 때 통역을 한 적이 있다. 우리나라 기업에서온 사람들인데 영어도 영어지만 한국말을 못해서 애를 먹었다. 무슨 말을 하는 지 알아들을 수가 없다. 자기 자신을 설명하는 건지, 무엇을 물어봐 달라는건지 도대체 알아들을 수가 없다. 내가 되묻자 오히려 성질을 낸다. 말귀를 못 알아듣는다나. 또 우리나라 사람 중에는 화치(話痴)가 많다. 말을못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알고 보면 말을 못하는 것이 아니라생각을 못하는 것이다. 막연히 무언가를 느끼기는 하지만 논리가 없고 메시지가 없다. 따라서 횡설수설한다.사고가 흐릿해도 우리끼리 살 때는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국제사회에선 용납이 안된다. 이미 오래 전부터 우리나라 사람은 이상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분명치 않고 흐릿한 것이 어쩌구 저쩌구. 외국인들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투명함은 자신에대한 투명함에서 출발해야 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무언지,내가 추구하는 가치는 무언지, 무엇을 위해 사는건지에서부터출발해야 한다. 그러한 가치 위에서 모든 것을 판단해야 한다. 내가 하는 일의 목적은 뭐지. 이 회의의 목적은 뭐지. 우리팀의 역할은 뭐지. 이런 식으로 따져 나가야 한다.나라를 빼앗겼을 때 지금처럼 위정자들이 우물우물하면서 일본에 외교권과 주권을 넘겨준 변명을 했을 것이다. 오히려 우리에겐 잘된 일이라고 합리화도 했을 것이다. 곧 좋아질 거라고 위로도 했을 것이다. 지금이 나라를 빼앗긴 것과 무엇이다른가. 나라를 되찾아야 한다. 이 수치를 씻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무엇을 잘못했는지 반성해야 한다. 지금 저네들이 지적하는 투명성 부족도 따지고 보면 무지에서 출발한다. 무지란 자극 없음이며 자극 없음은 생각 없음이다. 생각없음은 의견 없음이다. 의견 없음은 예전 하던 대로 아무 의심없이 우리식대로 따라하기다. 이러다가 이런 개망신을 당한것이다. 언제까지 이런 개망신을 당하고 살 것인가. 다시 일어설 것인가 아니면 이대로 살 것인가. www.i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