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하네다공항으로 가는 도쿄의 남쪽 변두리 오타구에는 기계가공 공장들이 늘어서 있다. 어림잡아 6천여개에 이른다.2차대전 이전부터 가동을 해온 공장들도 수두룩하다. 이들공장은 세계 최고수준인 1천분의 1㎜ 이상의 정밀도를 가진 공작기계를 가공생산하고 있다.아라가와강을 경계로 도쿄와 마주보고 있는 사이타마현의 가와구치시에는 각종 주물공장들이 들어서 있다. 주물의 본고장으로 통한다. 이들 공장에서는 분당 1만수천번을 회전하는 초고속인쇄기에 들어가는 미크론(1백만분의1m)단위의 초고정밀 베드와 프레임이생산되고 있다.이곳 뿐만이 아니다. 도쿄와 인접한 가나가와현 가와사키에는금형공장단지가 들어서 있다. 교토 공작기계단지에서도 오차가 1천분의 1㎜ 이하인 초고정밀공작기계가 생산되고 있다.일본에서는 이들공장을 「마치코바(町工場)」라 부른다. 우리말로 동네공장쯤 된다. 겉으로 보기에는 중소기업들이 가동하고 있는 평범한 공장들에불과하다. 부모로부터 대를 이어받은 공장의 경우 외관이 초라하기 짝이 없는 곳도 많다.그러나 알맹이는 다르다. 어떤 공장은 우주위성에 사용되는부품을 생산한다. 첨단전자제품 생산을 위한 금형을 독점제작하는 곳도 수두룩하다. 손가락이 다치지않는 캔의 뚜껑 따개를 개발해 세계적인 화제를 모은 공장도 있다. 어떤 공장은경주용자동차의 부품을 계약 생산하고 있다.이들 공장이 없으면 우주위성도 고급전자제품도 경주용자동차도 생산될 수 없다. 마치코바가 금형 주물 도금 등 기반기술로 세계시장을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마치코바가 세계 첨단제품시장을 좌우한다』 『마치코바에는 불가능이 없다』 『마치코바의 저력이 일본을 떠받친다』…. 일본 제조업 경쟁력은 바로 마치코바에서부터 나온다는 얘기다.도쿄시내 오타구의 게이힌시마에 있는 기타지마코제작소는 보조로켓이나 제트엔진의 외면을 제작 생산하고 있다. 보조로켓의 앞부분은 고열에도 녹지않는 초내열강을 사용한다. 선반에서 이 강판을 깎을 경우 보통 칼날의 이빨은 견딜 수 없다.기타지마코제작소는 이같은 강판을 30미크론의 정밀도로 뽑아낸다. 그것도 컴퓨터가 아니라 사람의 손으로 작업을 한다.똑바로 펼쳐져 나오는 강판을 꾸부릴 때 오는 손의 감촉을 손가락끝으로 조정해 가면서 뽑아낸다. 기술자의 손가락끝에 우주위성이나 제트기의 안전성이 좌우되고 있는 것이다.◆ 수작업으로 최고품질 생산교토부 조요시 공단에 자리잡고 있는 나가시마정공은 오차가1천분의 1㎜인 금형을 깎아내는 평면연삭반을 생산하고 있다.이같은 첨단제품을 생산하는 비결은 한마디로 예상밖이다. 끌(기사게)등을 사용한 전통적인 수작업으로 세계최고품질을생산하고 있는 것이다.20대 젊은 종업원들이 끌로 강판을 깎아내 요철을 만들어낸다. 이 강판의 표면에 도료를 입힌다. 끌로 요철(산과 골)을 만든 또다른 강판과 맞붙여 문지를 경우 높게 만들어진 산쪽으로부터 도료가 떨어져나와 금속의 표면이 나타난다. 이것을 다시 끌로 깎아낸 다음 다른 강판과 맞붙여 본다. 도료가떨어져나오지 않을때까지 이 작업을 계속한다. 요철이 똑같은강판을 두장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런 다음 또다시 강판 한장을 끌로 깎아낸다. 앞의 공정을 반복한다. 3장을 겹쳐 도료가떨어져나오지 않을 때 작업을 중단한다. 요철의 높이가 완전히 똑같은 제품이 만들어지는 것이다.『기계식 연마로는 아무리 뛰어난 NC(수치제어)장치를 사용하더라도 산의 높이에 1천분의2㎜∼1천분의5㎜의 오차가 생긴다. 그러나 수작업을 할 경우 1천분의1㎜ 이하의 정밀도를 실현할 수 있다.』 나가시마부사장의 설명이다.나가시마는 98년6월결산기에 13억엔 매출을 올렸다. 경상이익은 1억엔. 대당 1천만엔에서 최고 3천만엔으로 경쟁제품들에비해 2배이상 가격으로 팔고 있다. 그런데도 수주잔량이 5개월치를 넘어서고 있다. 첨단의 시대에 전통의 기술을 무기로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것이다.교토시에 있는 후쿠다금속박분공업은 1만분의 1㎜정밀도로 금속분을 가공, 생산하고 있다. 후쿠다금속박분은 동이나 은 니켈 등을 1만분의 1㎜ 이하 두께로 초소형 금속조각에 가공하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1천분의 수㎜ 두께 금속박도 생산중이다. 이 기술이 활용되는 대표적인 부문이 IC(집적회로)의 부품. IC의 일부인 전자부품을 프린터기판에 올려놓는 도포제의 재료로 쓰인다. 기계로 도포제를 고르게 바르기 위해서는 크기가 고르면서도 아주 작은 분말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이 회사가 세계최고의 기술을 확보할수 있었던 것은 3백년동안을 오직 한우물만 파온데 따른것. 지난 1700년에 칠기그릇에 그림을 새기는데 사용되는 금분제조업체로 출발, 3백년동안을 한우물만 파왔다. 『두께 1만분의 1㎜의 금속분이 만들어졌는지의 여부를 눈으로 보는 순간 금방 확인할 수 있다』는게 후쿠다사장의 설명이다.후쿠다금속의 97년12월결산기 매출은 3백1억엔. 전년도에 비해 14%가 늘어난 것이다. 경상이익은 11억엔으로 90%나 늘어났다. 금속분업계의 정상을굳건히 지키고 있는 것이다.◆ '안전 캔뚜껑 따개'도 개발도쿄 오타구에 있는 다니케이제작소는 뚜껑을 열때 손가락이다칠 염려가 없는 안전한 캔을 개발한 업체로 유명하다. 다니우치 게이지회장이 안전한 풀톱캔의 개발에 나서게 된 것은신문기사 때문. 우연히 신문을 보다가 미국의 피아니스트가캔뚜껑을 따다가 입은 손가락 상처로 1억엔의 배상금을 받았다는 기사를 읽었다. 그는 직감적으로 판단했다. 그리고는 곧장 개발에 들어갔다. 이때는 이미 미국 영국 독일 등에서 안전한 캔뚜껑 개발에 열중하고 있었다. 일본에서도 대형 캔메이커가 국립대학연구소에 연구개발을 의뢰해 놓고 있었다. 연구비용으로 무려 15억엔이 책정돼 있었다.그러나 안전한 뚜껑을 만들어낸 곳은 미국도 일본의 유명연구소도 아니었다. 도쿄의 마치코바인 다니케이제작소의 다니우치회장이었다.그는 S자형 루프(환)로 된 뚜껑을 개발했다. 뚜껑을 딸 때들어가는 힘으로 인해 잘린 부분이 저절로 안쪽으로 들어가버리게 만든 것이다. 평판으로 돼 있는 보통의 풀톱캔의 뚜껑을떼내면서 생기는 손가락 절단문제를 간단하게 해결해낸 것이다. 다니우치회장은 17개국에서 안전한 캔뚜껑의 특허를 따냈다. 미국의 대형통조림업체에 수억엔을 받고 특허권을 팔았다.오카야마현의 남서해안에 자리잡고 있는 야스다공업은 스포츠카 명문인 이탈리아의 페라리사에 머시닝센터(MC)의납품계약을 체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페라리사는 세계차경주대회에서의 부진을 탈피하기 위해 세계최고의 정밀도를 가진 공작기계를 찾아나섰다. 스위스의 디키시, 미국의 무어 등 세계적인 공작기계회사의 제품을 무려 4년동안에 걸쳐 조사한 끝에페라리는 야스다공업을 선택했다. 종업원 2백30명의 일본 마치코바를 세계최고의 공작기계 메이커로 인정한 것이다. 야스다의 머시닝센터는 1대만으로도 미크론단위의 가공을 할수 있다. 장시간 운전을 하더라도 오차가 발생하지 않는다. 페라리관계자는 현장에서 야스다제품의 정확도를 확인하고는 그 자리에서 구입을 결심했다는 것이다.마치코바. 이는 세계최강 일본제조업이 갖고 있는 최대최고의자산임에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