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도장공장에 근무할 때 불량문제로 꽤 오랫동안 고민을 했었다. 당시 불량률이 40%에 육박했기 때문이다. 이 정도 되면 불량품이 쌓여 공장자체의 가동이 불가능했다. 앞 공정인 차체공장과 뒷공정인 조립공장이 중간 공정인 도장공장 때문에 가동이 정지되곤했다. 공정자체가 매우 복잡해서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지 알아내는데만도 아주 어려움을 겪었다. 도료도 개선해 보고 설비도 손보고,종업원 교육도 시켜보고, 이송라인 점검도 해봤지만 별 효과가 없었다. 1년 가까이 헤매면서 좌절감을 씹고 있던 어느날 각 공정의직장들과 하루일과를 정리하는 시간이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자신의 결백함을 주장하고 앞공정 품질 문제점을 지적하느라 다들여념이 없었다. 나는 열심히 하는데 앞 공정 품질이 나쁘기 때문에어쩔 수 없다는 것이 각 직장들의 주장이었다.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얘기였지만 워낙 고민을 하고 있었던 차라 그날은 새롭게 들렸다. 얼마나 품질이 나쁜지 정량적으로 설명을 요구하자 아무도 얘기를 못한다. 당장 체크시트를 만들어 공정별 품질을 모니터링했다. 조사결과 엄청난 수의 결점들이 수정되지않은 채 다음 공정으로 넘어가는 것을 알수 있었다. 자신의 작업결과가 후공정에서 모니터링 된다는 것을 깨달은 작업자들이 작업에 정성을 쏟자 며칠만에 불량률은 10% 이상 좋아지기 시작했다.가장 큰 문제점이 해결되자 그동안 수면 밑에 숨어 있던 작은 문제점들이 드러나기 시작했고 그런 것들은 작업자들이 스스로 쉽게 해결했다. 한달이 채 안되어 직행률이 90%를 돌파했다. 나도 놀라고 십여년 이상 근무했던 작업자들도 놀랐다. 도저히 해결될 것 같지 않았던고질적인 도장공장의 불량 문제가 잡힌 것이다.자동차 제조는 디자인 설계 시작(試作) 시험 생산의 순으로 진행되고 많은 수의 설계는 금형을 통해 3차원적 제품으로 구현된다. 자동차 불량의 큰 부분은 금형에서 시작되는 것이 많은데 한번 잘못판 금형은 지속적인 불량품을 만들어낸다. 그때그때 불량품을 수정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는 현상을 임시로 해결하는 것이고 근본적인 해결책은 금형을 고치는 것이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왜 이런 금형상의 문제가 설계시 도출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보는 것이다. 한번의 설계로 완벽한 물건이 만들어지는 경우는 드물고 대부분 시작과 시험단계를 거쳐 설계변경이 몇번 이루어진 후최종 설계가 확정되는데 의외로 변경사항이 제대로 반영이 안되거나 여러 공정을 거치면서 이루어지는 이벤트들이 정확하게 피드백안되어 불량이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자동차 제조에서 뿐 아니라 우리는 자주 문제점과 이로 인해 나타나는 현상들을 혼동하고 있다. 또 문제점은 제쳐둔채 현상만을 해결하기 위해 많은 정력을 사용하고 있는 경우를 흔히 본다. 하지만어떤 사건이 발생했을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문제가 무엇인지명쾌하게 가려내는 것이다. 이것의 1차적 문제는 무엇인지, 좀 더근본적인 문제는 무엇인지, 혹시 이 사건이 문제점이라기 보다는문제점 때문에 생긴 현상은 아닌지를 곰곰이 따져 보아야 한다. 이런 것을 도외시하고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그저 현상해결에만 급급할 때 우리는 바쁘지만 성과가 없고 개선이 안되는 그런 결과를 볼것이다. ibshkt@i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