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당장의 성장률에 고무돼 성급하게 내수진작책을 쓰다간큰일납니다.』지난 10일 한국경제학회 제29대 회장에 선임된 중앙대학교의 박승교수(63)는 구조조정의 완결을 위해서는 당분간 저성장체제를용인할 필요가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노태우 대통령시절 청와대경제수석과 건설부장관을 거친 탓에 이론과 실무를 두루 겸비한것으로 평가받는 박회장은 『최근 신3저 효과로 인한 경기지표호전을 무작정 실물경제의 회복으로 받아들이면 곤란하다』고 강조했다. 산업생산 증가율과 재고율이 높아지고는 있지만 이를 실물차원에서 생산성 향상이나 국제경쟁력 회복의 신호로 볼 수는없다는 얘기다.사실 저환율 저금리 저유가등 이른바 신3저는 어디까지나 가변적인 가격효과에 지나지 않는다. 언제든지 바뀔 수 있는게 요즘 국제경제의 흐름이다. 『김영삼 정부의 경제운용이 실패한 것도 환율이라는 가격변수를 실물경제에 무리하게 대입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경제팀은 93년 엔고로 인해 수출이 활황세를 보이자이를 호황도래의 조짐으로 오판, 경기팽창책을 썼다가 구조조정의 기회를 놓치고 말았습니다.』이때문에 박회장은 소비 투자 건설 등 내수부문의 경기진작을 위해 구조조정을 등한시하면 앞서 실패한 전철을 그대로 되풀이할것이라고 우려했다. 『개인적으로 올해 경제성장률이 2%를 넘어서는 곤란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부동산부문의 경기활성화를위해 무리하게 소비자 금융을 확대하는 것은 좋지못합니다.』이같은 진단은 단기간에 경기회복을 바라는 사람들에겐 분명 섭섭하게 들리는 내용이었다. 박회장은 국민들이 향후 4∼5년 동안은 인위적인 경기부양 대신 금융 및 기업부문의 구조조정을 완료하는데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 과정에서 국민들은허리띠를 졸라매고 「저성장 고실업 감량경영」의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정부는 재정흑자를 유지하고 경상수지의지속적인 흑자를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만 이 기간 동안기업들이 안정적인 분위기속에서 구조조정을 마칠 수 있도록 저금리체제의 유지는 필요하다는 입장이었다.◆ 인위적 경기부양 배제해야현단계의 구조조정을 어떻게 평가하느냐는 질문에 박회장은 『금융부문은 40점, 기업부문은 60점』이라고 대답했다. 기업쪽에 후한 점수를 주는 이유에 대해서는 IMF사태 이후 재벌들의 의식이근본적으로 바뀌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상호지급보증의금지나 부채비율의 축소같은 가시적인 개혁도 괄목할만하지만 무엇보다도 기업의식의 변화를 빼놓을 수 없다』는 얘기다.적자기업의 퇴출뿐만 아니라 인력 및 조직의 전문화, 고효율을추구하는 분사 등은 과거 재벌풍토로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것이란다. 기업부문에 비해 금융구조조정이 상대적으로 취약하다고보는 이유에 대해서는 『금융부문의 아킬레스건인 부실채권과 신용경색은 해결된 것이 아니라 일시적으로 덮어둔 것이다. 적당한기회에 다시 구조조정을 해야한다』고 설명했다.박회장은 인터뷰 도중 빅딜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그는 정부주도의 빅딜에 대해 대체로 긍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불가피했다는 것이다. 다만 반도체 빅딜의 경우 정부가 너무 깊숙이 개입한게 아니냐는 의견을 조심스럽게 피력했다. 『빅딜은 원칙적으로기업이 자율적으로 하는 것이지만 국내 재벌의 습성상 어려운 점이 많다. 그래서 정부도 개입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사실 항공 발전설비 차량설비 등의 소단위 업종은 다수의 재벌이 국내시장을 분할하고 있기 때문에 빅딜을 해도 별 문제가 없어 보인다.삼성자동차와 대우전자의 빅딜도 비교적 무난하다고 생각한다.다만 제품의 90%이상을 수출하고 완전히 흡수합병을 하는 반도체업종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 반드시 그랬어야할 당위성과 논리가부족한게 사실이다』라는 요지의 설명.빅딜과 관련, 현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해서는 『다소 순진한 것같다』는 촌평을 곁들였다. 「욕을 먹더라도 하겠다」는 자세가그렇게 보인다는 것이다. 그러나 총체적으로는 좋은 점수를 줬다. 외환위기를 수습했고 짧은 기간중에 구조조정을 포함해 각종경제개혁작업을 비교적 무난하게 해냈다는 지적이다. 경제분야에있어서 김대중 대통령의 강한 리더십도 IMF라는 국난을 극복하는데 도움이 됐다고 평했다.최근 논쟁이 일고 있는 경기진단에서도 박회장은 일관된 논리를이어갔다. 결론적으로 구조조정을 우선시해야 한다는 것.『생산부문의 실물경기는 작년 7∼8월중에 바닥을 찍은 것으로 보고 있다. 부도율 공장가동률 등의 지표가 꾸준한 회복세를 보이는 것이 그 증거다. 그러나 소비부문은 생산에 비해 6개월이상 후행하는 속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바닥 확인」은 올해 2/4분기쯤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때 내수를 부추기려고 경기확대정책을쓰면 안된다. 가격변수의 변동에 의해 생산부문의 성장률이 오르고 정부의 부양책에 의해 소비와 투자가 늘어난다면 그것은 또하나의 거품에 불과하다』는 것.◆ 이론탈피, 실질적인 정책 제시결국 박회장의 시각은 「선(先)구조조정 후(後)경기진작」으로요약되며 내수회복은 생산경쟁력의 회복을 전제로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다.박회장은 이에따라 올해 한국경제학회를 이끌면서 정부를 상대로이같은 주장을 적극 개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고식적인 이론의틀을 탈피, 보다 실질적인 정책대안을 제시함으로써 경제난을 타개하는데 앞장서겠다는 것이다. 3월19일 상공회의소에서 열리는제1차 경제정책토론회 주제도 「정부의 거시정책방향과 그린벨트정책」으로 정했다.박회장은 학회의 공식적인 행사외에도 비공식적인 강연이나 집필활동을 통해서도 구조조정론을 전파할 계획이다. 굳이 한국경제학회 회장이라는 직함이 아니더라도 그를 찾는 사람들은 많다.서울 갈현동에 위치한 그의 자택으로 매일 10여건의 강연요청이쇄도하고 있다. 그는 제2건국위 경제분과 위원장이기도 하다.한편 박회장은 장기적으로 한국경제의 전망은 무척 밝다는 낙관론을 폈다. 급속한 성장과정을 거쳐 중진국 대열에 올랐듯이 구조조정을 마치고나면 빠른 속도로 선진국 반열에 합류할 수 있다는 것. 박회장은 그 근거로 우리나라 국민의 근면성을 첫손가락에 꼽았다. 그 다음으로는 변화에 빨리 적응하는 국내 경제시스템의 특성을 들었다. 일본 엔화나 중국 위안화의 움직임이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고는 있지만 그것도 우리가 대응하기에 따라 큰영향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박회장은 또 올해중 중국위안화의 절하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중국은 연 6∼7%의 성장을 하는 국가다. 외환보유고도 넉넉하고 경상수지는 흑자를 유지하고 있다. 게다가 국제투기자본의 진출입이 철저하게 체크되는 나라다. 일부 부실은행과기업이 문제가 되겠지만 자체 역량으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세계경기의 불황을 우려하는 시각에 대해서도 일정한 선을 그었다. 기본적으로 미국의 활황이 쉽게 퇴조하지는 않을 것이며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국가들도 점차 회복세를 띨것이라고 내다봤다. 기본적으로 경기가 좋지는 않겠지만 과거 대공황처럼 한꺼번에 무너져 내리지는 않을 것이고, 또 불황을 막기 위한 각국의 대응능력도 향상돼 있다는 얘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