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망 확보, '구멍가게' 까지 영향력 행사

우리에게는 면도용품 브랜드로 친숙한 질레트. 그러나 칫솔로 유명한 「오랄-B」, 고급 만년필 브랜드인 「파커」와 「워터맨」, 소형 가전제품의 세계적인 이름 「브라운」, 건전지의 대명사 「듀라셀」 등이 질레트라는 같은 회사의 지붕 아래에서 생산, 판매되고 있다면 쉽게 믿을 수 있을까. 물론 믿기 어렵지만 사실이다. 서로 연관성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이들 상품들은 모두 질레트라는 한 회사가 보유하고 있는 세계적인 브랜드들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질레트는 이렇게나 서로 다른 품목에서 세계적인 브랜드를 다량 보유할 수 있게 됐을까. 여기에 질레트 마케팅 전략의 비밀이 숨겨져 있다. 바로 「유명 브랜드 인수 전략」이다.◆ 로케트 인수로 건전지 유통망 확대질레트의 역사는 인수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01년에 설립된 질레트는 면도기로 세계적인 회사로 부상한 뒤 67년부터 본격적인 「유명 브랜드 사냥」에 나섰다. 67년에 소형가전 브랜드인 브라운을 인수한 것을 시작으로 84년에는 오랄-B, 86년에 워터맨, 88년에 듀라셀, 93년에 파커를 인수했다. 질레트의 이런 전략은 지난해 국내 건전지 시장의 20% 이상을 점하고 있는 「로케트」 인수로 이어졌다.질레트의 브랜드 인수 전략은 두가지 목적을 가지고 있다. 첫째는 밑바닥에서 처음부터 하나 하나 배워나가듯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는 것보다는 기존의 사업을 인수하는 것이 훨씬 더 효율적이라는 생각이다. 어느 정도 자리가 잡힌 브랜드를 인수해 여기에 질레트의 기술 투자와 마케팅을 결합, 더 좋은 브랜드로 육성한다는 전략이다.둘째는 브랜드 인수를 통한 유통망 확보다. 질레트는 마케팅의 핵심을 유통망 확보로 보고 있다. 동시에 현지화 전략의 근간도 결국은 유통망 장악에 있다고 간주한다. 유통망을 중시하는 마케팅 철학은 『한국에 들어와 있는 많은 외국 기업들이 유통망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었던 것과는 달리 질레트는 처음부터 유통망 확보에 심혈을 기울였다』는 존 바크 질레트 코리아 사장의 말에서도 드러난다.유통망 중시 전략은 질레트가 유명 브랜드라고 해서 아무 브랜드나 인수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다. 질레트는 기존 제품과 유통되는 경로가 비슷한 브랜드를 중심으로 인수한다. 예를 들면 질레트 면도기나 오랄-B 칫솔, 듀라셀 건전지 등은 모두 슈퍼마켓이나 편의점의 비슷한 진열대에서 함께 팔린다. 즉 질레트는 기존 제품의 유통망을 더욱 강화해줄 수 있는 브랜드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다.질레트 코리아가 로케트 브랜드를 인수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홍설주 질레트 코리아 마케팅부 차장은 『건전지 판매를 좌우하는 것은 브랜드라기보다는 유통망』이라며 『건전지란 사러 갔을 때 있는 브랜드를 그냥 사는 것이지 그 브랜드가 없다고 굳이 다른 가게까지 찾아가서 사는 것은 아니다』며 유통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현재 질레트가 한국내에서 보유하고 있는 건전지 브랜드는 듀라셀과 로케트, 그리고 93년에 듀라셀이 인수했던 썬파워까지 합해 세가지다. 이 세 브랜드로 질레트는 국내 건전지 시장의 58.9%를 차지하고 있다.홍차장은 『건전지 브랜드 각각이 유통망에서 강약점이 있어 서로 보완하면서 질레트 전체 사업에 상승 작용을 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설명한다. 존 바크 사장은 『투자 규모를 정확히 밝힐 수는 없지만 올해도 상당수의 금액을 유통망 강화에 투자할 것』이라며 마케팅 전략의 가닥을 밝힌다. 광고나 이벤트에 투자하는 것보다 한국 전역의 구멍가게에 이르기까지 질레트의 영향력을 넓힐 수 있도록 유통망 구축에 투자하는 것이 더욱 실리적이라는게 질레트의 판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