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관계 얽혀 합의사항 지키기 어려울듯 ... 시스템 변화로 확인도 불가능

OPEC회원국 생산량 감산 합의불과 몇주일 전만 해도 알제리의 석유장관 유세프 유스피는 OPEC가 배럴당 2달러의 생산비용이 드는 석유생산량을 줄일 수 있는 결집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며 걱정이 대단했다. 하지만 이런 우려가 만연한 분위기는 오히려 OPEC회원국들이 지난달 23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만나 석유감산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 낼 수 있었던 촉매제가 됐다. 이 회의의 결과는 유스피처럼 OPEC의 행동통일에 회의를 품은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오히려 가능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OPEC 비회원국을 포함한 세계 주요 산유국들은 앞으로 12개월 동안 하루 석유생산량을 2백10만배럴 감축하기로 합의했다. 참석자들은 OPEC가 이번 합의에서 보여준 것처럼 일사불란하게 행동할 능력이 있을 뿐더러 시장안정성을 회복시킬 능력도 여전히 갖추고 있다고 주장했다.◆ OPEC회원국 유대감 거의 없어산유국들이 보여준 모처럼만의 의견일치는 그동안 OPEC의 일상이 돼버린 서로간의 의견차이와 이로 인해 사사건건 논쟁을 벌이던 모습과는 아주 대비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유가는 2주만에 배럴당 3달러가 넘게 올라 3월말 현재 1배럴에 13달러까지 가격이 형성됐다. 살로몬스미스바니 투자은행의 애널리스트 피터 지누는 OPEC의 이번 합의를 아주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으로 분석한다. 각국 석유장관들이 협상에 나섰던 이전까지의 감산합의들과는 달리 이번 경우는 국가원수들끼리 합의한 외교조약의 형태를 띠고 있다고 설명한다. 그는 이 합의로 인해 금년 말까지 유가가 계속 오를 것이라고 예상한다.하지만 이 때문에 OPEC가 진정한 이익을 볼 수 있을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이 합의의 아킬레스건은 각국의 약속이행 여부를 명확히 알 수 없다는 것이다. OPEC 회원국들은 약속을 잘 지키지 않는 편이다. 더욱이 지난 18개월 동안은 회원국이란 유대감도 거의 없을 정도였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회원국들의 합의사항 준수도가 75% 정도일 것이라고 추측한다. 이는 각국이 할당받은 생산쿼터가 실제 생산량에 훨씬 못미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문제는 약속을 파기하는 나라가 나오느냐가 아니라 약속불이행의 정도가 어느 규모로까지 이뤄지느냐 하는 것이다. 근래에 OPEC가 합의한 감산약속은 지난해 자국의 석유수입이 전년도에 비해 6백억달러 이상 줄어드는 상황에 처한 회원국들이 증산에 나섬으로써 휴지조각이 돼버렸다. 회원국들 대부분은 현금에 아주 목말라하고 있다. 그러나 같은 이유로 해서 지금은 각국이 합의사항을 지키기에 좋은 입장이 됐다. 약속한 생산쿼터를 어겨가면서 계속 이익을 늘리는 것보다는 생산량을 줄여 가격을 올리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더 낫다는 얘기다. OPEC의 실무자였고 지금은 런던에서 세계에너지연구센터를 운영하는 파딜 찰라비는 회원국들은 유가가 지난해 11달러선까지 하락할 때도 약속을 어기기 일쑤였지만 지금부터는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그들이 할 수 있는 한 현재의 가격을 계속 유지하려 할 것이라고 주장한다.찰라비는 이번 합의는 OPEC 전체가 아니라 아주 죽이 잘맞는 몇몇 산유국들이 이끌어 낸 것이라고 지적한다. 멕시코와 노르웨이 등 OPEC 비회원국과 사우디아라비아를 중심으로 한 페르시아만 지역의 산유국들이 이 합의의 주역이라는 것이다.하지만 현재 석유재고는 4억배럴에 달해 사상 최고를 기록하고 있다. 이는 최근의 유가 상승 추세가 합의 당사국들의 조그마한 약속불이행에도 재빨리 역전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합의 당사국들은 공동보조가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될 것이다. 각국이 서로간에 차이점이 너무 많아 효과적인 「뉴 OPEC」로서의 역할도 기대할 수 없다.◆ 선물시장 거래로 쿼터량 확인 불가능OPEC 자체도 회원국들간의 분열로 몸살을 앓아 왔다. 이란은 지난해 하루 30만배럴을 더 생산할 권리를 비밀스럽게 부여받았다고 주장하며 쿼터보다 많은 석유를 생산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OPEC 좌장격인 사우디아라비아는 어쩔 수 없이 이런 주장을 인정하고 말았다. 이런 관례에 따라 이란은 다시 한번 그런 짓을 할 유혹에 빠질 수 있다. 사우디는 베네수엘라에 대해서는 신임대통령 유고 차베스에게 희망을 걸고 있다. 그렇지만 국민들의 불만이 고조된 가운데 대통령에 취임한 포퓰리스트인 차베스는 전임자들처럼 생산량을 억제하는 것이 어렵다는 사실을 곧 알게 될 것이다. 베네주엘라 경제가 더 나빠진다면 합의사항을 지키지 말자는 요구를 거절하지 못할 게 뻔하다.약속위반의 가능성은 또 있다. 사우디가 감산을 즉각 실행하기로 약속한 데 반해 다른 나라들은 5월에나 이를 이행할 것으로 보인다. 약속이행 여부가 확인되고 누가 이를 어겼는지가 드러나는 데에만도 한달여가 걸릴 것이다. 오늘날 석유시장의 시스템도 합의파기를 부추기는 요인이다. 20년 전에는 한 나라가 OPEC의 쿼터보다 초과생산하려 해도 여분의 저장시설이 있어야 하고 또다른 구매자를 물색해야만 했다. 또 선적도 공개적으로 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다 드러나게 되면 다른 회원국들이 정치적인 압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선물시장을 통해 바로 돈을 만질 수 있다. 쿼터를 어겼다는 사실이 여간해서는 드러나지 않게 돼 있다. 실제로 이란과 카타르가 선물시장에서 활발하게 거래를 벌인다는 루머도 있다. 런던 국제석유거래소(IPE)의 린튼 존스는 사담 후세인도 선물시장에 발을 들여놓고 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후세인이 OPEC의 합의에 제동을 거는 존재로 대두될 가능성도 있다. 이라크는 미국의 경제제재 석유수출에 제한을 받고 있다. 이라크는 확인된 매장량으로 볼 때 세계 제 2위를 자랑하며 21세기에는 석유생산에 관한한 사우디의 위치를 위협할 유일한 나라이면서도 이번 합의에 참여하지 않았다. 이라크 석유장관은 이 합의를 단기적인 해결책으로 폄하하면서 걸프전 이전수준으로까지 생산량을 늘리고 싶다는 사실을 분명히 했다. 제재가 풀리면 이라크의 생산량은 몇년 못가서 지금의 하루 생산량 2백60만 배럴의 두배가 넘게 될 것이다. 거의 절망적인 경제상태에 있는 러시아와 나이지리아 등 다른 산유국들도 합의이행을 의심케 하는 존재들이다.유일한 희망은 가장 저비용으로 생산하는 사우디다. 사우디는 현금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감산하겠다는 아주 어려운 약속을 했다. 이 약속이 지켜진다면 사우디에서는 하루 3백만배럴을 생산할 수 있는 시설이 놀게 된다. 이 때문에 사우디에서마저도 약속이행에 대한 서로 상반된 신호가 나오고 있다. 사우디가 계획된 예산을 편성하기 위해서는 석유판매에서 더 많은 수입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사우디는 예정대로 감산하겠다면서도 유전개발을 위한 외자유치를 검토할 것이라는 얘기를 한다. 생산량을 늘리면 석유수입이 늘어날 것이라는 사실을 사우디는 잘 알고 있다.이런 상황임에도 산유국들은 이번 합의에 대해 일단 만족해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산유국들이 앞으로 생산시설을 계속 늘려 나갈 계획을 갖고 있다. 이들은 지금으로서는 생산시설 확대가 감산합의를 위반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렇지만 이들 중 어느 나라가 먼저 약속을 깨 모처럼의 합의를 수포로 만들 가능성은 언제든지 있다는 것이 석유전문가 대부분의 의견이다.「Still kicking?」 Mar. 27, 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