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국내 중견기업에서 퇴직한 김아무개씨(54)는 요즘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고참 부장으로 있다가 회사를 떠난 김씨는 직장생활 28년 동안 남은 것이라고는 집 한채 뿐이라는 사실에 마음이 아주 무겁다. 생활비로 쓸 수입도 뚝 끊어졌다. 특히 그동안 자신의 월급만으로 집안을 이끌고 1남2녀를 교육시키다보니 따로 묻어놓은 돈이 거의 없어 앞으로의 생활이 막막하다.김씨는 회사를 떠나면서 퇴직금으로 1억2천만원 정도를 받았다. 그러나 대학 2학년인 막내의 교육비와 자녀들의 결혼 비용을 감안해 전액 따로 떼어놨다. 주변에서는 퇴직금을 투자해 창업을 하거나 주식에 묻어놓으라고 하지만 영 불안해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두 딸이 2년 안에 모두 출가할 것 같아 무턱대고 쓰기도 겁난다. 이런저런 궁리 끝에 최근 들어 다른 직장을 찾아나섰지만 문전박대를 당하기 일쑤다.사실 이런 문제는 김씨만의 경우는 아니다. 상당수의 퇴직자들이 공통적으로 겪는다. 더욱이 국내에서 나이든 퇴직자들이 재취업을 하기란 쉽지 않다. 극단적인 경우지만 아예 다른 일자리를 잡는 것을 포기하는 것이 낫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그렇다고 자식들에게 얹혀살 궁리를 하는 것도 무리다. 자식이 부모를 모시고 사는 미풍양속이 급속히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불과 십수년전인 지난 81년만 해도 3세대가 동거하는 가구의 비율이 69.1%였으나 지난 96년에는 32.4%로 크게 낮아졌다. 이에 비해 노인 단독세대 비율은 같은 기간 동안 19.8%에서 53%로 거의 3배 가까이 높아졌다.정년 퇴직 이후 쓸쓸히 지내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여간 서글픈 일이 아닐 수 없는 대목이다. 물론 이 가운데는 자발적인 의사에 따라 따로 사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회, 경제적인 변화 때문으로 분석된다. 경제가 발전하고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세대간 단절이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취업도 자식에 얹혀사는 것도 무리더욱이 정년 이후에는 경제적인 능력이 별로 없다. 따로 살더라도 돈이 넉넉하면 별 문제가 없지만 정상적인 생활이 힘들 정도로 어려운 사람들이 상당수에 이른다. 최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조사, 분석한 결과를 보더라도 60세 이상 남자들의 83%가 부인이나 자식 등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다고 대답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앞서 역시 보건사회연구원이 조사한 결과에서도 이런 사실은 여실히 나타났다. 60세 이상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월수입을 질문한 결과 전체 응답자의 55.4%가 20만원 이하라고 대답했고, 40만원 이상이라고 답한 사람은 12%에 지나지 않았다. 대다수의 나이든 사람들이 거의 수입이 없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그러나 지금부터 미리 노후계획을 세워 착실히 준비해 나간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정년 이후에 들어가는 생활비를 조달할 수만 있다면 가장 중요한 경제적인 문제에서는 벗어날 수 있다. 사회가 아무리 급박하게 돌아가더라도 신경쓸 필요가 없고, 돈 때문에 자녀들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