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세제화는 소비자의 주문대로 구두를 만들어주는 회사다. 물론 구두를 맞춰주는 제화점은 고세제화말고도 적지 않다. 그러나 이런 제화점들은 대부분 매장을 하나만 운영하는 수공업식 제화점들이다. 하루에 대여섯건 이내의 주문을 받아 사장, 즉 매장 주인이 직접 구두를 만들어 판매하는 식이다. 이에 반해 고세제화는 19개의 매장을 운영하는 어엿한 회사다. 고세제화는 19개 매장을 통해 매일 2백50건 이상의 주문을 받는다. 주문받은 제품은 7일 이내에 소비자가 원하는 장소로 배달된다. 소비자의 요구가 있으면 특별 제작돼 퀵서비스로 24시간 이내에 배달이 완료된다.고세제화가 한달에 1만족의 제화를 생산하는 어느 정도 규모를 갖춘 회사인 것은 분명하지만 실상 제작 방식에서는 수공업과 크게 다르지 않다. 고세제화는 15년전 서울 이화여대 앞의 맞춤 제화점 한개 매장에서 출발했다. 최기동사장은 그 때나 지금이나 구두 제작에 직접 관여하고 있다. 달라진 점이라면 지금은 직접 구두를 만들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최사장은 일년에 4번 이상 이탈리아로 출장, 최신 유행 정보를 파악한 뒤 한국에 돌아와 구두를 디자인한다. 한철에 대략 2백50여 스타일의 구두를 내놓는다. 매장에 이 구두들을 진열해 놓으면 소비자들이 샘플을 보고 원하는 모양을 정한 뒤 색깔이나 굽의 높이, 더하거나 빼고 싶은 모양 등을 요구한다. 각 매장은 이 주문서를 모아 서울 옥수동과 대림동에 있는 공장에 내려 보낸다. 옥수동의 45명, 대림동의 30명 생산 직원들은 이 주문서를 보고 일일이 손으로 구두를 제작한다.소비자 요구에 따라 하나 하나 손으로 만들다 보면 비용이 올라갈 수밖에 없다. 최사장도 그 사실을 알고 있다. 고세의 구두는 10만9천∼29만9천원 사이. 평균 12만9천원이다. 금강제화나 에스콰이어 등 대량 생산 제화업체의 구두보다 대략 10∼20% 정도 비싸다. 이 정도 비용에 주문 생산을 소화하기 위해 최사장은 마진을 낮출 수밖에 없다고 한다. 그는 『한 사람, 한 사람의 고객을 완전히 만족시킨다는게 고세의 자존심』이라며 『매출을 많이 늘려 돈을 버는게 목적이 아니라 장인 정신을 가지고 최고의 품질을 만들어 고세만의 고객층을 확보하는게 목적』이라고 밝힌다.최근 고세제화처럼 다른 사람과 구분되는 자신만의 개성을 추구하는 소수의 고객을 대상으로 주문 생산, 소량 판매하는 업체가 늘고 있다. 이른바 「맞춤 마케팅」이다. 그러나 주문 생산, 소량 판매하는 업체는 주로 손으로 하는 작업이 많은 제화나 액세서리 등에 한정된다. 액세서리로는 4개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는 (주)고이노코리아가 대표적이다. 고이노코리아는 보석류를 거의 90% 이상 주문받아 손으로 직접 만든다. 5백여가지의 디자인을 미리 구비해 두고 소비자가 원하는 것을 선택하면 주문 후 15∼30일 이내에 제작, 배달해준다. 가격은 골든듀나 이베레떼 등과 같이 여러 매장을 운영하며 어느 정도 대량 생산이 가능한 다른 보석업체보다 2∼3배 비싼 편이다. 좋은 원석을 사용하는데다 하나 하나 손으로 제작하고 한 디자인당 판매되는 수량이 다른 업체보다 적기 때문에 원가가 올라갈 수밖에 없다고 한다. 샘플 이외에 원하는 디자인이 있으면 특별 제작을 해주지만 가격은 더 올라간다.의류도 주문 맞춤 생산이 가능하지만 기성복보다 가격이 올라가기는 마찬가지다. 신세계백화점은 맞춤 와이셔츠 매장을 운영하고 있는데 이 곳의 와이셔츠는 기성복보다 10∼15% 가량 더 비싸다. 그러나 3백종류의 원단과 20종의 칼라(깃), 10종의 주머니, 10종의 커프스, 다양한 종류의 단추 등을 원하는대로 조합할 수 있고 자신의 이름도 새겨넣을 수 있어 인기는 날로 늘어나고 있다. 3년전만 해도 한달 주문량은 2백50건에 불과했으나 최근엔 2천∼2천5백건의 주문이 들어온다. 3년새 10배가 늘어났다. 지난해와 비교해서도 20% 증가한 주문건수다. 이용호 주문 와이셔츠 소장은 『서울 성수동에 위치한 자체 공장에서 20여명의 생산 인력이 주문에 따라 와이셔츠를 만들고 있다』며 『원자재가 다양하고 디자인 조합이 각양각색이기 때문에 대량 생산에 비해 원가는 올라갈 수밖에 없다』고 밝힌다.◆ 소량 맞춤 생산은 비용 부담 커그렇다면 왜 이처럼 주문 맞춤 생산이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일까. 대량 생산은 필연적으로 평균적인 고객을 예상하고 이들에 맞춰표준화된 상품을 만들어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소비자들은 더이상 「평균」이기를 원하지 않는다. 각각의 소비자들이 남들과 차별화된 개성을 추구하면서 일반 대중 시장은 기존의 동질성을 상실하고 있다. 시장이 점점 이질화되면서 틈새시장은 나날이 늘어나고 시장은 더 작게 세분화되고 있다. 이런 틈새를 파고 드는 것이 고객 하나 하나의 요구를 최대한 수용하는 주문 맞춤 생산이다.앞에서 살펴본 주문 맞춤 생산의 특징은 △소규모 생산 방식이라는 점과 △대량 생산되는 경쟁 제품보다 더 비싸다는 점 △비싸기 때문에 대중 시장이 아니라 소수의 특별한 고객만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이다. 여러가지 면에서 수공업 생산 방식의 특징을 비슷하게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김성영 한국방송대학교 무역학과 교수는 『최근 마케팅의 주류는 시장을 세분화, 각 기업에 맞는 고객층을 집중 공략하는 것이며 결국 맞춤 마케팅이란 시장을 극단적으로 세분화, 고객 하나 하나를 시장으로 보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김교수는 『맞춤 마케팅을 하면 고객 만족은 커지겠지만 필연적으로 대량 생산에 비해 가격이 상승할 수밖에 없다』며 『이 때문에 맞춤 마케팅은 소득이 늘어나면서 확산되고 주로 고소득층을 중심으로 퍼지는 경향이 있다』고 덧붙인다. 결국 주문 맞춤 마케팅이 광범위하게 확산되기 위해서는 소량 생산의 수공업 방식에서 탈피함으로써 원가를 절감하는 수밖에 없다.◆ 고객 하나 하나가 시장김교수는 이런 원가 절감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생산 라인이 맞춤 생산에 맞게 변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맞춤 마케팅은 손으로 소량 제작이 가능한 구두나 액세서리, 모자 등이나 생산 라인이 필요없는 금융업에서나 쉽게 적용될 수 있지 대규모 생산 라인을 갖춰야 하는 제조업에서는 하고 싶다고 금방 할 수 있는게 아니다. 생산 라인을 다품종 소량 생산에 맞게 유연하게 운영한다는게 말처럼 쉽지 않기 때문이다.』실제로 청바지만 해도 주문 맞춤 생산이 그렇게 쉽지만은 않다. 「T2R」란 브랜드의 청바지를 판매하고 있는 PDA통상은 최근 고객의 요구에 맞게 청바지를 만들어주는 맞춤 진을 들고 나왔지만 일회성 행사로 그쳤다. PDA통상 관계자는 『원래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기 위한 판촉 행사로 기획한 것이고 계속적으로 맞춤 진을 생산한다는 것은 단가가 맞지 않아 어려운 얘기』라고 밝혔다. 즉 맞춤 마케팅은 고세제화나 고이노코리아처럼 수공업 방식의 장인 정신을 가진 소규모 전문화된 업체나 쉽게 시도할 수 있는 방식이란 결론이 나온다. 어느 정도의 대다수 대중을 대상으로 사업을 하고 있는 제조업체가 맞춤 마케팅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자체적으로 유연한 생산 조직을 갖춰야할 뿐만 아니라 원자재 공급업체나 협력업체도 여기에 호응해줘야 하기 때문이다.그렇다면 유연한 생산 조직이란 무엇인가. 유연 생산 조직이란 생산 라인의 일부를 빠르게 변경, 한 생산 라인에서 다른 종류의 제품을 자유자재로 생산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말한다. 유연 생산 조직의 대표격으로 꼽히는 도요타자동차의 경우 생산 프로세스를 교체하는데 단 3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한 라인에서 서로 다른 제품을 경제적으로 생산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현재 도요타자동차는 일본 시장을 대상으로 주문받은 차를 5일 이내에 배달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물론 소비자의 요구대로 디자인한 맞춤 생산까지는 안되지만 생산 라인을 빠르게 교체할 수 있는 경쟁력을 바탕으로 주문 생산의 첫단계에 들어선 것이다.주문 생산뿐만이 아니라 맞춤 생산에도 성공한 대표적인 제조업체로는 델컴퓨터를 꼽을 수 있다. 델컴퓨터는 고객의 주문에 맞게 다양한 부품들을 조합, 주문 후 일주일 이내에 완성된 컴퓨터를 배달해준다. 말레이시아 서쪽의 페낭섬에 위치한 델컴퓨터 생산 라인에서는 콘베이어 벨트를 따라 부품이 차례로 조립되고 있는데 각 컴퓨터에는 주문서가 부착돼 있다. 델 직원들은 이 주문서를 보고 거기에 맞는 부품을 골라 순서대로 조립해간다.델컴퓨터가 관심을 끄는 이유는 주문 맞춤 생산에서는 필연적으로 올라갈 수밖에 없는 비용을 억제하면서 고객 요구에 맞는 다품종의 제품을 대량으로 생산해내고 있다는데 있다. 즉 매스 커스터마이제이션(Mass Customization: 대량 맞춤 생산)의 실현이다.대량 생산은 상품을 개발한 뒤 낮은 원가로 표준화된 상품을 대규모로 제조, 안정적인 수요가 확보된 동질화된 시장에다 판매하는 것이다. 그러나 대량 생산은 △일정한 양의 원자재를 투입해야 하는데 더이상 원자재를 마음껏 쏟아부을 수 있는 기업이 없으며 △인구 구성이 변함에 따라 소비자 요구가 변화하고 틈새시장이 늘어나고 있으며 △성숙기에 접어든 상품은 예외없이 시장 포화 상태에 직면해 있고 △경제 순환의 불확실성으로 인해 안정된 수요를 보장받을 수 없다는 등의 한계에 직면해 있다.◆ 생산 후 판매에서 판매 후 생산으로대량 맞춤 생산은 이런 대량 생산체제의 문제점을 완전히 해결해준다. 대량 맞춤 생산은 「생산 후 판매」하는 대량 생산과는 달리 「주문을 받아 일단 판매한 후에 생산」한다. 이런 역발상을 통해 시장 변화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으며 다양한 틈새 시장을 공략할 수가 있다.사실 대량 맞춤 생산이란 모순되는 말이다. 개별 고객의 요구대로 맞춤 생산을 하면서도 저렴한 가격에 대량으로 생산이 가능하다는 것은 이전에는 상상조차 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델컴퓨터나 리바이스처럼 소수의 기업을 중심으로 대량 맞춤 생산이 조금씩 적용되고 있으며 이들 기업은 예외없이 경쟁 우위 확보에 성공하고 있다.여기에서 한가지 근본적인 의문점이 생긴다. 어떻게 맞춤 생산을 하면서도 대량 생산이 가능하고 게다가 비용 상승까지 억제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다. 답은 범위의 경제다. 대량 생산에서는 규모의 경제로 경제성을 살린다. 맞춤 대량 생산에서는 범위의 경제로 경제성을 맞춘다. 범위의 경제란 중간 단위의 부품 또는 중간 구성 요소를 표준화해 대량으로 생산, 규모의 경제를 실현한 뒤 이 표준화된 중간 부품을 다양하게 조합해 여러 가지 최종 상품을 생산해내는 것을 의미한다.델컴퓨터와 마찬가지로 인터넷을 통해 소비자의 주문을 받아 맞춤 생산하는 리바이스의 피터 자코비 회장은 대량 맞춤 생산의 중요성과 이를 실현하기 위한 요소를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매스 커스터마이제이션은 21세기 기업 경영의 키워드다. 개별 소비자와 접촉, 주문을 받아내고 주문된 제품을 얼마나 빨리 생산할 수 있느냐에 따라 기업의 생사가 결정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소비자와 대화할 수 있는 최적의 인터넷 통신, 주문 제품을 빠르게 생산할 수 있는 컴퓨터 이용 디자인(CAD) 및 컴퓨터 이용 생산(CAM) 등의 시스템이 갖춰져야 한다.』결론적으로 대량 맞춤 생산은 범위의 경제를 실현하기 위한 중간 부품 표준화와 유연한 생산 라인, 고객의 요구를 제대로 수용할 수 있는 인터넷과 같은 통로, 고객에 대한 정보를 축적한 데이터베이스 등의 기반이 구축돼야만 완성될 수 있다. 특히 소비자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소비자들은 어떤 상품에 대해서는 일일이 지정해서 주문해야 하는 과정을 귀찮아할 수도 있다. 소비자가 어떤 상품에 대해 어느 정도나 자신의 의견을 반영할 수 있기를 원하는지를 파악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대량 맞춤 생산의 출발점이자 종착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