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세때 미국 유학, 외국어ㆍ경력 밑천 삼아 '자동차 전문가' 입성

억대 연봉을 받는 직종 중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외국계 경영 컨설팅회사의 컨설턴트이다. 컨설턴트란 기업의 문제를 파악하고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해결책과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해주는 일종의 기업 의사들. 세계적인 컨설팅회사에서 근무하고 있는 컨설턴트들은 대부분 미국에서도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유수의 대학에서 경영학 석사(MBA)를 받은 엘리트들이다. A.T.커니의 컨설턴트로 활약하고 있는 손위용씨(38)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현재 억대 연봉을 보장받고 있는 손씨도 3년전에는 평범한 샐러리맨에 불과했다.손씨는 중앙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하고 86년에 기아자동차에 입사했다. 이후 10년간 대부분의 샐러리맨들과 마찬가지로 첫 직장에서 한눈팔지 않고 계속 근무했다. 『국내 자동차산업이 급성장하며 한국 자동차 역사상 중요한 변화들이 많이 일어났던 시기라 일하는 것이 즐거웠다』는 것이 손씨의 설명.손씨는 입사 후 5년간 공장에서 구매 담당자로 일했다. 이때 한국 자동차산업의 기반을 이루고 있는 부품 공급업체들과 접촉하며 자동차의 기본을 배웠다. 이후 기획 부문으로 자리를 옮겨 5년간 각종 신차 개발 프로젝트에 관여했다. 특히 기아자동차는 미국의 포드 및 일본의 마쓰다 등과 함께 진행하는 프로젝트가 많아 손씨는 기획 부문에서 미국과 일본의 자동차 전문가들과 자주 접할 수 있었다. 그가 미국으로 경영학 공부를 하러 떠나야겠다고 결심하게된 계기도 MBA 출신의 포드쪽 사람들의 노하우와 지식에 자극을 받아서였다. 기획부에서 인생의 전기를 마련한 것이다.◆ 외국어 실력 무기 ‘기획부’ 옮겨물론 그가 우연히 기업의 핵심 부문이라고 할 수 있는 기획부로 자리를 옮길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손씨 나름의 「무기」가 있었다. 바로 영어와 일본어 실력. 그는 『대학때 요트와 그룹 사운드 활동에 빠져 공부는 뒷전이었어도 6개 국어를 구사하는 큰 아버지를 보며 외국어는 잘 해야겠다는 생각을 늘 갖고 있었다』고 한다. 배워두면 언젠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으로 대학 때부터 영어와 일본어 실력을 닦았고 회사에서 외국어 실력을 인정받아 외국인과 접촉이 많은 기획 부문으로 자리를 옮길 수 있었다.손씨는 96년에 35살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또 당시에는 좋은 직장 중의 하나로 손꼽히던 대기업의 과장 자리도 박차고 미국 유학행을 선택했다. 그는 자동차회사에서 구매와 기획 부문을 거치며 다양한 경험을 쌓은데다 포드와 마쓰다 등 외국 기업과 함께 일했던 점도 좋은 평가를 받아 미국 명문 중의 하나인 미시건대학에서 공부할 수 있었다. 미시건대학에서 공부한 2년을 손씨는 『새로운 세상과 지식을 접한 시기』라고 말한다.1년을 마친 후 그는 A.T.커니의 싱가포르 지사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자동차회사를 주요 고객으로 확보하고 있는 A.T.커니로서는 한국 자동차산업에서 10년간 경험을 쌓은 손씨가 탐나는 인재였던 셈이다. A.T.커니와 일하는 기간동안 그는 실력을 인정받아 대학원 2년째는 A.T.커니의 재정 지원으로 학교를 다닐 수 있었다. 물론 졸업 후 A.T.커니에서 일한다는 조건이었고 약속대로 그는 98년 졸업과 함께 A.T.커니 한국 지사에 입사했다.손씨는 『운이 좋아 일이 잘 풀렸지만 공부를 해야겠다는 결심을 할 때는 나름대로 용기가 필요했다』고 밝힌다. 무엇보다도 나이가 걸렸다. 미시건대학 동기들 중에는 그보다 10살이나 어린 학생도 있었다. 지금 일하고 있는 직장에서도 같은 직급에서는 그가 제일 나이가 많다. 상사 중에도 그보다 나이가 어린 사람이 있는 것은 물론이다.손씨는 『직장에서 3년 정도 경력을 쌓은 후 MBA를 따러 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많이 늦게 출발한 셈』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늦게 돌아온 것이 그에게는 「행운」이었다. 명문 대학에서 MBA를 취득하고도 다시 평범한 샐러리맨으로 복귀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기업들은 MBA 자체도 중요시하지만 그보다는 어떤 산업에서 어떤 경력을 쌓으며 어떤 지식과 노하우를 가지고 있느냐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손씨는 『공부를 할 때도 또 현재 일을 할 때도 나이를 생각하지 않고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예의를 다하려고 노력한다』고 말한다. 또 『더 일찍 MBA를 취득했으면 하는 생각도 있지만 한편으론 기아자동차에서 일했던 10년이 없었다면 현재의 내가 존재할 수 없었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고 덧붙인다. 자동차에 관한한 한국에서 다섯 손가락안에 드는 전문가라는 것이 그의 자부심이다.손씨는 경북 문경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졸업 때까지 시골에서 자랐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흔히 말하는 엘리트 코스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그런 평범했던 그를 파워 샐러리맨으로 변신시킨 원동력은 바로 외부의 자극에 대한 적극적인 반응이었다. 외국어 잘하는 큰 아버지와 똑똑하게 보이는 포드 직원들을 예사롭게 보지 않고 「나도 저들처럼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실천에 옮겼다. 손씨는 『무엇이든 열심히 하면 된다고들 생각하는데 열심히 하는 것 이상으로 방향성이 중요하다』며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가 하는 목적만 정해지면 인생에 무엇을 시작하기에 늦은 때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을 맺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