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자동차업계의 맞춤마케팅은 초보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다. 맞춤마케팅이 제대로 이뤄지려면 고객이 원하는 사양(옵션)을 유연하게 대응해줄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어야 하나 국내 업체들은 그렇지 못하다. 사양 선택의 폭도 극히 제한적이다. 일부 차종은 사양 선택폭이 넓기도 하지만 대부분 차종은의 경우 고객들이 차 구매시 선택할 수 있는 사양은 에어컨, 에어백, ABS 등이 고작이다.맞춤마케팅이 이렇듯 초보적 수준인데는 업계 나름대로의 사정 때문이다. 고객들의 다양한 욕구를 반영하기 위해서는 소품종 소량생산체제가 바람직하다. 그러나 자동차산업이 그런 생산시스템을 갖추었다가는 채산성을 맞출 수 없는 어려움이 있다. 자동차업계가 맞춤마케팅의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도입을 주저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기아자동차 사례에서 국내 자동차업계의 이같은 마음을 잘 읽을 수 있다. 기아자동차가 고객들의 사양 선택폭을 획기적으로 넓힌 「프리옵션제」 도입을 결정한 것은 지난해 3월. 「프리 옵션제」는 엔진, 변속기, 보디컬러는 물론 에어컨, ABS, 선루프 등 모든 품목을 고객이 원하는 대로 생산, 판매하는 방식이다.소비자가 주로 선호하는 주요 사양을 조합해 생산·판매하는 것이 패키지 옵션제라면 프리옵션제는 거의 주문생산시스템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고객이 원하는 대로 제품을 생산, 판매하는만큼 매출이 증대하는 것은 당연하다. 기아차가 프리옵션제를 도입한 것도 이런 목적에서였다.프리옵션제 적용 차종은 크레도스, 포텐샤, 엔터프라이즈 등 중대형으로 한정했다. 소형차의 경우 고객이 많은 사양을 원치 않는데다 선택 사양이 추가될 수록 차가격이 올라가 오히려 판매가 감소할 가능성이 있어 제외했다.그러나 도입 초기부터 난관에 봉착했다. 프리옵션제는 최소한 월 판매량이 5백대 이상은 돼야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데 도입 당시인 지난해 3월 내수시장 상황은 말이 아니었다. IMF 한파가 본격적으로 일어 구매심리는 꽁꽁 얼어붙어 있었다. 이런 탓에 특단의 마케팅 기법인 프리옵션제를 내놓아도 구매심리는 살아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기아차 승용판촉팀 박지원과장은 『판매량이 많아야 프리옵션제에 따른 고객의 주문을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며 그러나 지난해 국내 내수시장은 그렇지를 못했다고 말했다.◆ 적정 판매량 유지돼야 효과 커프리옵션제 도입으로 인한 적정 재고관리 및 납기일 준수도 걸림돌로 작용했다. 특히 납기일이 문제였다. 기존 방식으로 고객으로부터 주문을 받아 차를 인도할 경우에는 1주일이면 족했으나 프리옵션제로는 15일 정도가 걸렸다.선진국 소비자처럼 원하는 차를 갖기 위해 기다려주면 좋으나 국내 소비자들은 사실 그렇지 못하다. 주문 자체를 취소하고 납기가 빠른 다른 회사 차를 구입하는 것이 일반적인 경향이다. 고객이 원하는 차를 팔려다 납기일 지연으로 오히려 판매를 못하는 우를 범할 가능성도 컸다. 그래서 기아차는 프리옵션제를 도입키로 발표만 했다 시행을 유보했다.기아차는 아직 프리옵션제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소비자들의 구매심리가 살아나면 재시행한다는 방침을 정하고 도상 훈련을 열심히 하고 있다. 프리옵션제가 갖고 있는 폭발력만큼은 크기 때문이다.